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철용 씨는 빚이 한 푼도 없다. 빚이라면 넌더리라 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빚에 갇혀 그 창살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허우적댔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두 살 아래의 우이동생과 단 남매를 둔 엄마아버진 늘 농사일에 얽매여 일만 했다. 그런데도 늘 보리밥이고 죽이었다. 그래서 그게 으레 우리 집의 때를 잇는 음식으로 여겼다. 그게 집이 가난해서 그랬다는 걸 어렴풋이 안 것은 찔꺽눈이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듣고서였다. “이보게, 자네 식구들 때마다 깡 보리밥이나 피라미 헤엄쳐 다니는 멀건 죽사발 면하려면 그 생멧소부터 얼른 해결하게 그게 탈여 그게.” 그리곤 찔꺽눈이 할아버진 어린 철용이 남매를 데려다 밥을 먹였는데 그게 쌀밥이었다. 그때가 철용이 중학교에 들어간 해로 그간 쌀밥은 근처에도 못 갔던, 남의 집 일로만 여겼던 때이다. 그걸 먹으면서 철용인 물었다. “할아버지, 생멧소가 뭐여유?” “그거 빚이다 빚, 생멧소가 무엇이냐 하면, 소 한 마리의 값을 빌려서 쓰고 갚을 때까지 도조를 그 이자로 무는 것이야.” “그럼 ‘도조’ 라는 게 뭐예요?” “응 그거, 남의 논이나 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세로 해마다 무는 벼야.” “그러면 도조를 생멧소의 이자로 물으면 그 도조를 준 집엔 무엇으로 도조를 물어요?” “그놈 참 똑똑하다. 그런 걸 묻는 걸 보면, 그래서 말이다. 생멧소를 준 집에서 자기의 논밭을 부치게 해서 거기서 나온 세로 생멧소의 이자로 물게 한 거야.” “그럼, 도조로 무는 세는 그대로 남는 거구요?” “그런데 말이다. 그게 아냐. 도조는 안 받는 거야. 물론 그 집의 땅이 아니라 남의 땅을 부치면 생멧소의 이자는 이자대로 내고 땅 빌린 집의 도조는 또 내야 하지만.” “그럼 생멧소를 준 집은 왜 그래요?” “네 아버지한테 생멧소를 준 집은 동네서 젤 잘 사는 이 생원 댁이다. 그 이생원이 그 이자를 또박또박 잘 받을려고 그 이자가 될 만큼의 땅을 도조로 주는 것이지.” “그럼 혜택을 많이 주는 거네유.” “얼핏 생각하면 그렇지. 하지만 도조 부치는 땅에서 생멧소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라야 니네 집 식구들 보리밥에 죽 먹을 양식밖에는 안 되지. 생멧소 원금은 장 그대로 있으면서 말이다.” “그럼 봐주는 게 아니라 옭아매는 거구만유.” “그렇지만 어떡하냐 워낙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래도 니 아버지나 하니까 먼젓번에 얻은 생멧소를 겨우 갚았는데 이번에 또 얻지 않았느냐. 그게 내 생각엔 너 공부시킬려고 그런 것 같어. 그걸루 네 중학교입학금 내고 월싸금 낼려고 말이지. 그러자니 니 아버진 빚더미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게야. 내가 봐도 참 딱한 일이다. 니 아버지한텐 하도 답답하고 딱해서 생멧소를 빨리 해결하라고 했다만 그게 쉬운 일이냐. 어떻게든지 네가 공부 열심히 하고 얼른 커서 해결할 수밖에.” 그리곤 찔꺽눈이 할아버진 그 찔꺽눈을 또 손등으로 비비는 거였다. 눈가가 늘 진물진물한 눈이어서 그렇다.

아버진 이 생원을 향해 한 번도 욕된 말을 한 적이 없다. 남들은 그를 손가락질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이익이 될 만하건 다 하는 짠돌이라고, 제 배가 부르니 종의 배고픈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저 보기만 하면 돈 갚으라고 이자 내라고 깐깐하게 다그친다고, 자도 돈 걱정 먹어도 돈 걱정만 하는 위인이라고. 하지만 아버진, “우리 이 생원 네 아니면 당장 굶게 되고 니네들 학교도 갈 수 없어. 그러니 얼마나 우리에겐 은인이냐. 그러니 당최 그 집을 나무래선 안 되어.” 그러면서 실제로 그 집일이라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고 그의 말이라면 어김없이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다 그 생멧소를 얻으려고, 도조를 얻으려고 그리고 자신의 두 남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보내려고 한 저의였던 것임을 안 것은 철용이가 취직을 해서 사회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때 아버진 그에게 이렇게 일렀다. “너를 공부시켜 성공하게 할려고 이 생원 네 생멧소를 얻어 썼다. 그 빚이 아직도 있어. 이제 네가 갚어라. 그리고 너는 한 푼도 빚지지 마라. 빚 없으면 다리 뻗고 잘 수 있고 남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어.”

그 후 그는 자신을 위한 생멧소의 빚을 다 갚고 그제서야 지금의 아내를 맞았다. 어머니 아버진 그러는 걸 다 보셨다. 그러면서 아버진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찔꺽눈이 할아버지와 이 생원 양반의 은공을 잊지 말아라!” 라고.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