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동양일보) 얼마 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회사 직원을 폭행하고 수련회 등에서 엽기 행각을 벌려 국민적 공분을 샀다. 최근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 방정오 <티브이조선> 대표이사 전무가 초등학생 딸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발언이 문제가 되어 사과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는 ‘갑질 논란’이 연일 화재다.

‘갑질’은 힘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행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키는 신조어이다. 상대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약자를 호령하여 자기만족을 얻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갑질’은 직위, 재산, 연령, 성별 등에서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착취하고 차별하는 것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개념이다. 가진 자에 의한 못 가진 자의 착취는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사의 큰 줄기에서 보았을 때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갑질’이 줄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갑질’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인터넷에서 검색어로 ‘갑질’을 치면 뜨는 자료가 대부분 2010년 이후이다. ‘갑질’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용어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갑질’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뜨는 자료도 ‘땅콩회항 사건’과 같은 재벌 3세의 일탈부터 운전사나 경비원에 대한 폭언, 교수의 직위를 이용한 제자와 여학생 성추행, 군 공관병에 대한 폭언·가혹행위, 하도급 업체에게 터무니없는 단가 책정과 부당반품 요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힘의 우위를 보여주는 기준은 압도적으로 돈이다. 재벌 폭행의 대표격은 뭐니 뭐니 해도 지난 1994년 신년에 벌어진 이른바 ‘건방지게 프라이드’ 사건일 것이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모 재벌그룹의 외아들이 ‘건방지게 프라이드가 끼어들어 흘겨본다’는 이유로 프라이드 운전자와 동승자를 벽돌과 깨진 화분 등으로 내리쳤다. 2007년 3월에는 국내 재벌그룹의 회장이 자신의 차남을 때린 서울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을 응징하기 위해 직접 야구 방망이를 들었다. 그리고 그 정점은 2014년 12월 미국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를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객실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아 항공기를 램프 유턴 시킨 사건일 것이다. 이 외에도 재력가에 의한 ‘갑질’은 물류업체 M&M 대표, 미스터 피자 회장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최근에는 돈을 매개로 한 ‘갑질’이 소수 갑부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시민도 가세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건이 항공기 내에서 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공기 승무원을 때려 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라면상무 사건이다. 얼마 전에는 울산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이 아파트입주자 대표회의 간부에게 ‘내 죽음에 답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맥도날드 매장 직원에게 음식물을 던진 진상 손님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 동안 재력가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갑질’의 가해자가 평범한 주부, 직장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에는 재력가들의 ‘갑질’에 분노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나보다 약한 사람을 상대로 ‘갑질’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몇 년 전 출시되어 히트를 쳤던 영화 <베테랑>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 속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은 악인의 화신처럼 보인다. 남의 팔에 그저 장난으로 담뱃불을 꺼 생체기를 남기고, 여배우들의 원피스 안에 얼음을 부어버리거나 얼굴에 케이크를 발라버리기도 한다. 체불한 임금을 달라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하청업체 사장과 싸우게 하고, “아빠, 저렇게 힘들게 돈 보는 거 너도 알아야지” 하면서 아들이 아버지의 처참한 꼴을 보도록 턱을 잡는다. 그런데 정작 조태오 본인은 자신의 악행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 마치 자기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태오와 같이 극단적이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조태오와 같은 마음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상대적으로 덜 갖았거나 덜 배운 사람을 낮게 보려는 우월감, 그리고 남보다 튀어보려고 하는 열등감 말이다. 나는 이것이 ‘갑질’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래서 ‘갑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우리나라 특유의 유교문화와 독제정권의 유산 그리고 금권만능주의가 관련이 있지만, ‘갑질’의 원인을 여기에서만 찾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오히려 돈을 둘러싼 합리적 차별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인 ‘갑질’ 청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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