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 송년모임이 봇물을 이루는 시기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빤한 날이 없다. 행사가 겹칠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모임인데”, “직전 임원인데 얼굴이라도 비쳐야지”, 참석해야 하는 명분도 많다.

“선약이 있어서.”, “집안행사가 겹쳐서”,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도 많다.

연말연시만 되면 통과의례처럼 맞게 되는 ‘모임 몸살’을 감내해야 한다.

‘모임’이란 말은 본래 수학용어라고 한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모임 또는 클래스(class)는 특정한 성질을 만족하는 집합을 모은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학사전에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는 일”이라고 모임의 기본의미를 밝히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은 사회적관계가 이뤄지는 가장 민주적이고 기초적인 단계다.

거기에 ‘어떤 목적을 위해’가 붙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임’의 틀이 만들어지고 사회활동의 필연적 행위로 존재하게 된다.

요지는 모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확실한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인연으로 두루뭉술하게 등 떠밀려 발을 들여 놓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자연히 모임이 늘어나게 되고, 잦은 모임에 매번 참석하는 일이 어렵게 된다.

회원확보와 참석률을 임원진의 능력과 동일시하는 왜곡된 인식도 모임의 당초 목적이나 행사의 내용마저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노쇼(no-show)'문제다. 우리말로는 ‘예약부도’라 하여 좌석(참석)을 예약한 사람이 아무런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다.

축사할 사람을 기다리느라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무례한 노쇼도 있다.

참석인원이 너무 적어 행사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도 넓게 보면 ‘노쇼’의 폐해다.

참석여부를 묻는 메시지에 ‘답글’은커녕 예고 없이 뒤늦게 나타나 판을 깨는 소위 ‘애프터 쇼(after-show)’까지 있다.

‘노쇼’가 빈자리의 음식 값까지 물어야 하는 경제적 손실도 문제지만, 구성원의 신뢰와 인화를 깨뜨림으로서 모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죄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첫 번째 의무요, 참석여부를 통지하는 것이 주최 측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요 예의다.

‘노쇼’와 마찬가지로 ‘노룩(no look)'도 모임문화를 뒷걸음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노룩’은 농구경기의 ‘노룩패스(no look pass)’란 용어에서 비롯됐다. 상대 수비선수를 속이기 위해 시선을 다른데 두고 자기 팀의 선수를 보지 않은 채로 공을 패스하는 기술을 말한다. 모 정치인이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입국장에서 수행비서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던지듯 캐리어를 밀어 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한동안 ‘노룩패스’가 패러디되기도 했다.

농구경기에서 ‘노룩패스’가 잘 짜진 팀워크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고도의 기술을 일컫는다면, 모임에서의 ‘노룩현상’은 모임자체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정적의미로 쓰이지만, 행사취지와 무관한 주장으로 본질을 흐리게 하는 행위, 일부 부류의 입맛대로 회의를 끌고 가는 사례, 식사에 정신이 쏠려 회의는 뒷전이거나, 마지못해 먼산바라기만 하다 돌아오는 사례도 모두 피해야 할 ‘노룩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나타나지 않는 ‘노쇼(no show)'나 무관심한 ’노룩(no look)'이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달라져야 한다. “반가워야 모임이고, 즐거워야 행사다.” 언제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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