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덕 공주교육장

 
유영덕  공주교육장
유영덕 공주교육장

 

(동양일보) 보통사람이 대통령을 만나는 일은 복권당첨과도 같이 어렵고도 기쁜 일일 것이다. 복권 당첨에 예고가 없듯, 나의 대통령 면담도 뜻밖이었다. 1994년 발명의 날에 김영삼 대통령이 관련 유공자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셨다. 교사 시절 발명유공자로 특허청장의 표창을 받게 됐고, 그들을 대통령께서 격려하신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후로는 설렘에 잠도 설치게 되고, 누가 나의 행적을 물어봐 주지 않음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접견 당일! 청와대로 갈 사람들이 대절 버스에 올랐다. 한결같이 환한 표정으로 각 잡아 빼입은 정장들은 오히려 어색하다. 삼삼오오 모여 안부를 묻기도 하고, 발명에 관한 무용담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도 있다. 청와대행 버스는 고속도로를 스치고, 묘한 긴장 속에서 예약에 없던 전화를 걸어 본인의 행적을 알리는 사람이 있다. 아까 그 무용담의 주인공이다. “어, 나 지금 대통령 접견 차 청와대에 들어가는 길인데 다녀와서 이야기 하지 뭐”, 또 다시 전화를 걸어 “응, 나 지금 대통령께서 보자고 하셔서 영빈관으로 가는 중이야. 다녀와서 다시 통화하자구.” 웃음이 나왔지만 입을 가렸다.

영빈관으로 들어서기 전 청와대 입구쯤에 그렇게 넓은 장소가 있었던가? 이만 저만한 관련자들이 100여명은 족히 모였다. 암튼 우리는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을 갖게 되는데, 검은 옷을 입고 덩치가 큰 이들의 안내를 받았다. 그들의 넓은 가슴에 위태롭게 매달린 명찰마저도 위엄이 넘쳐 쳐다보았어도 관등성명은 기억에 없다.

먼저, 감기에 걸린 사람 눈병이나 피부병이 있는 사람 등을 조사하였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접견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수근 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기라도 했던지? 이내 답이 들린다. “못 들어가신다는 게 아니고 당부드릴 사항이 있어서 그러니 꼭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긴 충분히 이해가 간다. 365일 국정을 살피는 막중한 임무 앞에 작은 위험에서도 지켜져야 하겠지... 하지만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붉은 양탄자 위를 걸으며 대통령의 영접을 받으며 걷는 뉴스 속의 한 장면을 그리기도 했었다.

그들의 요구에는 거침이 없다. “편지나 물건 등 대통령께 전하려고 가지고 오신 물건이 있으시면 내 놓으세요. 저희가 정선하여 전달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에 다른 분들이 현장 신문고를 얼마나 연출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의 사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께 질의하실 분들은 이미 주의사항 잘 들으셨지요? 그 이외의 분들은 엉뚱한 말씀을 막 하시면 안 됩니다. 꼭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우리 진행요원에게 미리 말씀을 해 주셔야 됩니다. 시간 운영관계로 말씀 드리니 잘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철저한 당부를 듣고 난 후에야 대통령 내외분을 만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하고 호쾌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난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부인께서도 자애로운 미소와 악수로 맞아주셨다. 손이 참 작으셨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영광의 시간은 잠깐이었다.

우리는 대통령과 멀찌감치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발명의 중요성과 그 역할의 중심에 여러분들이 있다”는 치사를 들었다. 참! 또 있다. ‘청와대에 오시면 으레 칼국수를 드시고 가시는 것으로 아시는데 오늘은 없다’는 조크를 날리셨다. ‘대통령 유머집’에서 본 듯한 멘트지만 우리는 짧은 동시 웃음으로 그의 유머감각에 경의를 표했다.

자리를 채워야하는 소품과도 같은? 접견을 마치고 귀향길에 들어서자 또 그이의 전화가 시작되었다. “응... 지금 막 대통령과 면담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인데 말이야...” 그나 나나 대통령과의 면담은 악수가 다였건만...

상담 용어 중에 ‘동일시’라는 것이 떠올라 ‘풋’하는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가 밉지 않은 것은 나도 전화를 걸어, 상대가 전혀 궁금하지 않을 대통령과의 만남을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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