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동양일보) 이 세상에 양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임팩트(Impact)가 양심이다. 산다는 의미는 양심과의 투쟁일 수 있다. 세상사 무념무상이라는 말도 있고, 인생사 공수래공수거라는 말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주어진 삶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면 되지 무슨 하찮은 양심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양심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며 정보가 오픈되어 공유하는 세상은 더욱 더 그러하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처세술은 나름대로 필요한 세상이나 근본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허물없이 살 수 있을까? 황희 정승 같은 삶을 살고자 하나 무릇 서민의 보통 삶이 어찌 그리 되겠는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시쳇말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라며 평범하게 묻힌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매우 나쁜 사람은 털어서 먼지 안 나게 한다는 사람이다. 허물이 있는데 어찌 포장을 하여 거짓된 삶을 살겠다는 것인지 조사하면 다 나온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완전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완전한 것이다. 오늘은 후안무치의 삶을 지양(止揚)하며 양심 있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하여 논해 보자!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무엇인가? 뻔뻔스럽고 부끄러워움을 모르는 경우에 사용한다. 비슷한 말로 강안(强顔) 과렴선치(寡廉鮮恥) 면장우피(面張牛皮), 면피수(面皮厚) 박면피(剝面皮) 철면피(鐵面皮)가 있고 얼굴이 두껍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모든 곳에 예의가 없고 겸손하지 않은 후안무치의 인간은 존재하며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 라고 하는데 후안무치는 정말로 낯짝이 없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Conscience, 良心)은 무엇인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다. 우리말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도덕적인 책임을 생각하는 감정상의 느낌이 있다. 양심은 인간에게 부여된 고유한 불변의 것인지 아니면 진화에 의하여 생겨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양심 자체는 인간에게 불변하는 것으로 부여된 것도 진화에 의하여 생겨난 것도 아니다.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학교 혹은 가정교육을 통하여 형성된다. 양심은 의무와 연관되어 있고 의무를 수행할 때 양심은 맑아지고 거부할 때 번뇌한다. 양심은 개인의 도덕적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양심(Gewissen, 良心)은 Gewissen으로도 번역되는데 함께 안다는 의미로 ‘함께’라는 요소와 ‘안다’라는 요소가 병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인 의무에 적합한지를 스스로가 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다 보면 푼수도 늘고 낮도 두꺼워진다. 허나 중요한 것은 양심의 잣대로 후안무치를 억눌러야 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얼굴이 두꺼워지고 부끄러움은 덜 느낀다. 상당수의 중년이 20대의 눈으로 보기에는 낯 뜨거운 행동을 함부로 한다. 세월에 따른 후안무치를 피해가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억누르고 자중하여야 한다.. 어떤 성격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중년이 되었을 때의 얼굴의 두께도 다르다. 어린 시절 부끄러움이 보통이었던 사람은 진상으로 변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던 사람은 낯 두꺼운 사람이 되고 부끄러움이 많이 타던 소심한 사람은 보통사람의 삶을 산다. 중년의 연배가 되다보면 이전보다 변한 자신을 알고 낮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선다. 바깥세상과 쉽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친구관계도 세상의 시선도 여가영역도 넓어진다. 적당한 후안무치와 양심을 적절히 조합하면 된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어떤 연륜과도 바꿀 수 없는 넉살좋은 후안무치의 진실과 진리를 따르는 양심이 동급이 되어 현명한 인생을 산다면 매우 행복하고 어우러진 삶을 살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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