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베트남 축구에 한국인도 열광했다. 축구를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은 민족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나라 축구도 아닌 베트남 축구에 저렇게 신나 응원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것도 우리보다 한수 아래인 동남아 축구를 보고 말이다.

시청률은 이를 말해 준다. 주말 황금시간대 드라마 대신 박항서 축구를 긴급 편성한 SBS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대박이었다. 시청률 전문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9시8분부터 11시21분까지 스즈키 결승전 2차전 시청률은 18.1%(수도권은 19.0%)였다. SBS스포츠 시청률 3.8%를 합하면 21.9%다. 같은 시간대 타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을 압도한 경이적이 기록이다.

이런 시청률은 월드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기록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대 독일전(2대0)때 최고 시청률을 보인 KBS가 15.8%였던 점을 고려하면 18.1%는 더욱 빛난다.

역시 박항서의 힘, 박항서 신드롬을 증명했다.

한국 사람이 왜 박항서에, 베트남 축구에 저렇게 열광할까. 저변엔 중년남성의 대리만족과 베트남에 빚졌다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다.

빡빡 대머리인 박항서는 히딩크 감독 시절 수석코치로 얼굴이 알려졌다. 이후 부산아시안게임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다가 4개월만에 경질됐고 포항스릴러스 수석코치, 경남FC·전남드래곤즈·상주상무피닉스·창원FC 감독을 거쳐 작년 9월부터 베트남 축구를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 지도자로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그는 선수생활도 미드필더로 국가대표 경기에 단 한차례 나갔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축구인으로서 성공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였다.

그런데 약체인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올해 AFC U-23 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 진출시켜 파란을 일으켰다. 비록 결승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져 준우승에 그쳤지만 베트남 국민들사이에 ‘베트남의 히딩크’로 떠올랐다. 이어 아시안게임에서 56년 만에 4강 진출, 국민적 영웅이 됐고 마침내 스즈키컵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박항서 매직’을 그려냈다.

박항서는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그를 베트남 명예대사로 임명하자는 청원이 올라왔을 정도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별로였던 그가 한국과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순히 우승했다는 것에서 벗어나 양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 그는 1959년 생으로 내년이면 환갑이다. 그 나이에 외국으로 건너가 베트남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으니 국부 대접 받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국내에선 박항서 연령대 감독들이 명퇴할 나이인데 필드에서의 활약은 박항서 개인에게도 제2의 인생이 되고 있다. 특히 퇴직을 앞두거나 퇴직한 50~60대 한국 중년남성들에겐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안겨줬다. 아니 뒷방으로 물러난 줄 알았던 자신들에게 ‘부활’을 꿈꾸게 하는 큰 선물을 준 박항서였다.

TV를 통해 베트남 거리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본 한국인들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죽고 죽이는 전쟁까지 치른 국가였던 과거를 떠올리며 민망과 감사가 교차한 국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요청으로 전투병력을 파견한 건 1964년부터 1974년까지였으니 지금 60대 후반~70대의 어른들이 대상이다. 한국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4만8000명을 보냈고 8여년동안 연인원 34만 명이 참전, 5000여명이 전사하고 1만6000여명이 부상당했다.

파병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됐다. 군인들은 봉급을 가족에게 보내 외화 벌이를 했고 기업들은 수출과 군납 등 베트남 특수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은 양국 관계에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는다. 6.25전쟁때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피해를 입은 한국의 군인들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2001년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지난 3월 베트남을 공식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 표명까지 해야 했다.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국이고 베트남 입장에서는 한국이 두 번째 교역국이다.

박항서가 한국과 베트남의 공동 번영과 협력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는 스포츠 외교대사가 됐다면 우리는 베트남을 이해하고 가슴으로 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베트남에는 전쟁때 태어난 ‘라이 따이한(한국인 아버지와 월남 여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이 5000~1만명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튀기, 적대국 군인의 자식이라는 사회적 억압때문에 신분노출을 기피한 사람을 합치면 한인2세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스즈키컵 결승전을 보면서 베트남을 열렬히 응원한 데는 이런 마음의 빚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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