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국

  복국 식당 앞에서는 가끔 복(卜)집, 점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용한 점집의 무당처럼 식당 안에 돗자리를 깐 복어가 사람들의 막히고 엉킨 속을 상담하고 있다. 신 내린 무당인양 제 살점을 휘휘 풀어 국탕 속에서 한바탕 살풀이굿을 하고 있다. 복국집 간판에 그려진 은밀복의 웃고 있는 표정이 문득 애기보살의 볼때기 같다는 문과적인 상상이 스친다.

 ‘복어 맑은탕’을 ‘복지리’ 또는 ‘복국’이라고 부른다. 복어로 만든 요리를 대하면 누구나 한 움큼의 긴장이 어리기 마련이다. 성냥개비 머리만한 미량에도 사람이 절명할 수도 있다는 풍문이 자꾸만 의식될 수밖에 없지만 이 야릇한 긴장이 도리어 맛을 깊게 각인시킨다. 국물 한 숟갈에도 온 미뢰를 집중하여 맛을 감별하게 만드는, 오묘한 집중을 낳는다.

특유의 담백한 맛은 독과 필시 연관이 있으리라. 풋매실이나 은행열매처럼 극미량의 독을 가진 것들은 알싸한 감칠맛을 내곤 한다. 열로서 열을 다스리는 이열치열의 원리처럼, 또 회초리로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는 것처럼 독한 것이 나쁜 성분을 다스리는 수가 있다. 복어도 그러한지 그 속의 영양분은 신체의 해독을 담당하는 간 기능을 북돋는데 특히 탁월하다.

 독성 있고 요리하기도 가탈스러운 복어가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는 건 담백한 살점 속에 아구찜 속 아귀나, 삭혀낸 홍어처럼 저만의 고유한 맛을 품고 있어서다. 버려지기는커녕 오히려 애지중지 환영받는 복어를 보면, 아무래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맛을 지니면 결코 버림받지 않고 되려 귀하게 대접받는 모양이다. 남들이 업수이 여길 수 없는 실력이나 결기, 그런 특징 있는 독기를 제 몸에 단도처럼 간직한 채 살라고 복어는 말한다.

  아버지는 유독 복국을 좋아하셨다. 술을 즐기는 성미가 아니시고 대취하는 경우가 드문데도 복국 집을 즐겨 찾곤 했다. 맑은 탕 한 그릇을 후룩후룩 비우면서 일자리의 상실과 그로인한 가족 간의 갈등까지, 응어리진 속사정을 남몰래 풀고 있었을 것이다. 혼자서 식당에 가기 무렴할 때는 종종 나를 대동했다. 어떤 때에는 어머니가 등을 떠밀며 ‘부자간에 간만에 외식이나 하고 오라’며 부추기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돌돌 엉킨 감정의 낚싯줄은 식당에서 마주한 때만큼은 뒷주머니에다 쟁여 둔다. 뜨거운 국을 사이에 두고 부자의 갈등이 살점과 야채처럼 함께 끓어 팔팔 우려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가 종종 나를 대동한 채 식당엘 가는 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모든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식당의 차림표를 펼치면 크고 투실하게 살이 오른 복어의 사진이 도드라지며 옆에는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 진다. 복어는 ‘복스러운 물고기’란 뜻으로 읽히지만 실은 ‘복부가 부풀어 오르는 물고기’란 뜻이다. 그러나 복어의 ‘복’자를 꼭 복부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복어는 과거에 강돼지라고도 불렸다. 돼지는 머리가 풍어제나 개업식 고사에도 사용되고, 편육과 수육은 잔칫날에 빠지지 않을 만큼 복스러운 동물이다.

  달마대사나 소크라테스처럼 대인군자의 모상은 대개 불룩하고 넉넉한 뱃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무릇 뱃심에서부터 인정과 배짱이 나오는 법이다. 복어는 넉넉하게 늘어진 배와 뚱뚱한 외관을 두르고 있으므로 복어의 ‘복’자가 꼭 포만이나 행복과 관련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재밌게도 바다 건너 일본에선 복어를 ‘행복’이라는 뜻의 ‘후쿠’라고 호명하기도 한다니, 복어의 심상은 퍽이나 흥미롭다.

  항아리나 복주머니, 쌀가마니가 둥글듯 곡선 완만한 것들은 정겹다. 복어는 배흘림기둥 닮은 불룩한 뱃살과 뚱뚱한 몸피를 갖고는,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귀염성이 있는 고기다.

  복어를 낚아다가 지상에다 부려 놓으면 뽀득뽀득 이를 간다. 홀로 독수하는 과부처럼, 꼭 살아남아 할 일이 있는 백절불굴의 전쟁 포로처럼 뽁쟁이는 제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참을 빠득거린다. 날카로운 이빨만 있으랴. 살점이 질긴 탓에 낚싯바늘이 박히면 쉬이 빠지지 않을 정도이고, 위험을 만나면 영판 딴 모습으로 몸을 부풀려 포식자를 놀래키기도 한다. 독과 이빨, 질긴 피부에다 부풀어 오르는 성미까지, 이리보고 저리 봐도 결코 허투루 볼 예사 고기가 아니다.

  커졌다 작아졌다, 능소능대의 처세술 덕에 복어는 바다에서 천적 없이 살아남는다. 유능한 생존의 대가요, 처세의 달인이다. 몸을 잔뜩 부풀리는 우스꽝스런 몸짓이 허장성세 같지만 이 수신호를 무시하고 복어를 삼키면 예외 없이 중독되어 삼킨 자나 먹힌 자나 둘 다 죽고 만다.공멸의 위기에서 상생의 방도를 일러주는 친절한 표지판이 복어의 부푸는 뱃살이고 보면, 이 세상의 불행한 것들, 치명적인 것들이 닥치기 전에 복어처럼 미리 신호를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가 과장된 손짓을 섞어가며 한참 재미난 이야기에 열을 올리실 때 마침 주문한 복국이 나온다. 미나리와 쑥갓, 콩나물을 가득 넣고 우려 낸 뽀얀 국물이 흡사 비눗물 같다. 이토록 맑기에 사람 속까지 칼칼하게 씻을 수 있는가 보다. 쫄깃하고 탄력 있는 살점 몇 덩이가 하얀 탕 속에 큼지막이 떠있다. 담박한 국물에다 매운 양념을 풀면 알알한 맛이 감돈다. 중화된 복어의 향이 밀물처럼 입속에 차오르고, 쫀득한 식감이 혀 위에서 들꿩처럼 튄다.

  흔하면 저렴하고 귀한 것은 비싼 게 세상이치이지만, 복어의 매력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별미를 접할 수 있는 데 있다. 낚시꾼이 낚고 나선 잡어 취급하며, ‘아무 짝에도 못 쓰는 고기’라며 갯바위로 던져버릴 때, 내동댕이쳐진 복어는 세상 향한 울분과 깊은 원한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한으로 주먹질하기보단 도리어 제 가치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투명한 국물을 우려내었다.

  “이것 봐, 세상에 울분 깊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런 버림받은 사람들의 응어리진 사연이 훨씬 더 감명 깊잖어.”라고 제 경우를 들어 항변한다.

  복국은 일반 가정집에서 탕탕 도마를 때리며 손질한 후 부추 넣고 미나리 넣고 뚝딱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닌데도, 이 국에서 서민의 정취를 느낀다. 아무래도 복어가 소외받고 도외시되는 약자의 고통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복어는 바다 밑을 헤엄치는 동안에 쉬지 않고 성게와 조개를 씹고 가재와 게를 씹어 삼켰다. 단단한 이빨로 족히 한 트럭 분량의 영양가 높은 바다 사료를 꾸덕꾸덕 소화 시킨 후에는 자기만의 고유한 풍미를 두르곤 도시의 밥상으로 튀어 올랐다. 맑은 지리 가득 자신의 살점과 영양까지 모두 우려내는 복어의 성미, 과거와 생명까지 다 쏟아낸 복어의 오롯한 자기 투신!

 “나를 봐, 나처럼 바닥까지, 껍질까지 아낌없이 다 한번 쏟아내어 봐, 지금껏 삼켰던 좋고 값진 것 모두를, 속에 것을 몽땅 다 뚝배기 그릇 속에 시원하게 토해 내어봐”라며 뭉텅뭉텅 썰린 복어 살점이 나에게 일갈한다.

 몸통이 나뉘어 요리된 마당에도 그릇 가득 묵직한 화두를 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복어는 전설 그대로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사랑받던 벗이요, 질긴 껍질 닮은 고집과 신념을 간직한 뼈대 있는 가문의 후예인가 보다. 깔끔한 복국의 뒷맛이 흡사 대가가 집필한 책 한권을 다 읽고 난 여운과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찬양이 될른지.


식당 여기 저기 놓인 식탁에서 묵묵히 복국을 뜨는 사람들은 다들 퍽이나 속이 풀리는지 연신 땀을 훔친다. 복국의 첫술을 뜨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시원하다’라는 감탄사, 이 첫키스와 같은 쾌감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복국 을 찾을 것이다. 무릇 인정받고 사랑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속을 뻥 뚫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타인을 자기에게 계속 이끌려면 엉킨 속을 휘휘 풀어줄 줄 알아야 한다고 복어가 말한다.

  복어가 펼쳐놓는 불립문자의 강론 가운데 묵묵히 수저를 놀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복국은 아무나 먹는 게 아니야, 사나이만 먹을 수 있는 거야.”하고 짐짓 너스레를 보이신다. 뜨거운 국물에 달아오른 아버지의 표정이 한결 푸근해 보이고 간간한 맛 덕분에 기분이 넉넉히 풀리신 듯하다. ‘어쩌면 내가 새긴 독과 응어리를 아버지는 복국으로 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하니, 복어가 나보다 더 효자 같아 슬며시 죄책감이 든다.



 
약력
허은규
1982년 울산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
복숭아문학상 대상
의정부전국문학공모 차상
광명신인문학상 장려상
 

 

허은규
허은규

 

당선소감

마음을 비우고 있었습니다. 응모를 했음에도 당선의 기대를 스스로 축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공부하며 읽었던 다른 분들의 글이 탁월했기 때문이고 또 좋은 글에 고정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응모도 했으니 아쉬움은 없다, 다시 열심히 써보자’라고 마음을 다독이던 찰나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겨울바람이 시리게 불어도 따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해가 지는데도 점점이 밝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쌀가마니 몇 부대를 쌓은 듯 든든했습니다.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그동안 써오던 글에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는 식어서 비가 되어 내릴 수도 있고, 얼어서 눈과 우박이 되어 내릴 수도 있습니다. 같은 수증기인데도 말입니다. 아무래도 수증기의 모습이란 자신이 간직한 고유성만큼이나 날씨와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도 큰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가 수상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분과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동양일보에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수필을 쓰고 공모를 준비하며 귀감이 되는 글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특색 있는 글을 쓰신 원작자분들이 다 저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저를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에게 고마움을 보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조성호
조성호

 

심사평

전국 각처에서 응모한 191편을 살펴보면 아직도 수필을 너무 쉽게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반적으로 문학성은 높아졌지만 그저 자신의 회상기나 가족의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 주변의 감상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필을 작품이라고 내놓기는 민망하다. 각 지역에서 수필이란 문학 수업을 받는 열성을 보이지만 남다른 소재와 주제 의식을 잘 소화하는 것이 문제다. 작품은 크든 적든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꾸밈새가 없이 자연스럽게 문장 수련을 쌓았으면 싶다.

이번에 뽑은 장원작 ‘복국(허은규)’은 많은 작품들을 읽는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훌륭한 수필을 만나는 기쁨은 글쓰는 사람의 행복이다. 중후한 수필이 자칫 딱딱하기 쉬운 분위기를 화려한 문장으로 다양한 식견으로 황홀하게 이끌어준다. 흔히 지나칠 법한 복어 요리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복집과 점집을 연상하여 살풀이라도 하듯 그리로 이끈다. ‘복국집 간판에 그려진 은밀복의 웃고 있는 표정이 문득 애기보살의 볼때기 같다’고 한다. 복어의 독성을 잘 활용한다. ‘남들이 업수이 여길 수 없는 실력이나 결기, 그런 특징 있는 독기를 제 몸에 단도처럼 간직한 채 살라고 복어는 말한다.’ 복어의 생존 전략을 상찬한다. ‘커졌다 작아졌다, 능수능대의 처세술 덕에 복어는 바다에서 천적 없이 살아남는다. 유능한 생존의 대가요, 처세의 달인이다. 몸을 잔뜩 부풀리는 우스꽝스런 몸짓이 허장성세 같지만 이 수신호를 무시하고 복어를 삼키면 예외 없이 중독되어 삼킨 자나 먹힌자나 둘 다 죽고 만다.’ 아버지와 함께 복국을 먹는 재미까지, 너무 많은 것을 나열한 흠이 있긴 하지만 가장 우수한 글임엔 틀림없다.

'흑립(홍성순)’은 집안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흑립을 발견하며 종갓집 장손으로서 전통적인 법도를 지키느라 시골집을 버리지 못하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회상을 자세히 쓴다. 자식들은 도시로 다 떠나갔지만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전통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자존심을 이해하지 못하다 아버지의 유물을 이제서야 상자 속에 가지런히 정리하여 잘 간직한다.

폐사지에서 버려진 삼층 석탑과 고향 어머니가 김을 매던 메밀밭의 감나무를 연상한 ‘성황리 삼층 석탑(김순경)’은 처연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런 감상만 나타낼 게 아니고 좀더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었던지 좀 더 구체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추억의 ‘흑백 사진’, 군대시절의 특별한 인연인 ‘달맞이꽃’도 그저 평범에 그친 점이 아쉽다.

심사위원: 조성호

 

소설부문 당선작과 심사평은 21일자 10면, 11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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