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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 가족사진
2018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 가족사진
  • 박장미
  • 승인 2018.12.19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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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부지런한 새들은 벌써 창가로 와서 재잘댄다. 햇빛 한 줄기가 거실 안으로 들어와 환하다.

“승아야! 이리와 머리 묶자.”

“아아, 아냐 엄마. 내가 묶을 수 있다니까. 엄마는 옷 입어.”

“아…냐! 이리 와. 엄마가 예쁜 핀 사왔단 말이야.”

“아이참, 엄마 때문에 못살아. 여기….”

아침마다 옥신각신 즐겁다. 나는 가방을 메고 거울 앞에 섰다. 새로 사준 핀을 쓰다듬고 웃었다. 거울 속에 나도 웃고 있다. 엄마는 신발 하나 신는데도 더디기만 하다. 나는 일찌감치 신발을 신고 기다린다. 신발 뒤축에 꽂은 구두주걱이 뒤틀린 엄마 손 때문에 자꾸 엇나간다. 그러나 나는 엄마를 재촉하지 않는다.

아파트 정문 앞길에는 등교하는 애들이 바쁘게 지나갔다. 나와 엄마는 매일 정문을 나와 왼쪽 모퉁이를 돌아 언덕위로 오른다. 정문으로 곧장 가면 학교는 가깝다. 하지만 돌아가는 언덕 위 골목길은 지나는 사람이 뜸하다. 엄마 몸이 지나는 사람과 부딪칠까 봐 사람이 덜 지나는 곳으로 피해간다. 옆을 자꾸 보며 걷던 나는,

“엄마, 천천히 가. 그래도 나 학교 안 늦는다고.”

“에고, 승아 너나 앞보고 걸어.”

“나 앞 봐. 엄마가 내 앞이잖아. 히히히!”

“웃기는……순 엉터리. 정말 엉터리야. 호호호!”

“다섯 시간 동안 엄마 못 볼 거니까 봐 둬야 해, 뭐.”

교문으로 들어가는 나를 향해 엄마는 손을 쉴 새 없이 흔들었다. 나는 엄마를 향해 주먹을 쥐고 입모양으로 ‘파이팅’하고 말했다. 엄마도 눈을 찡끗하며 나를 따라했다. 곁을 지나는 아이들이 나와 엄마를 흘깃흘깃 곁눈질을 하며 봤다.

나는 이제 3학년이다. 이 학교로 전학 와서 하는 첫 등교다. 나는 친할아버지네 근처로 얼마 전 이사 왔다. 친할아버지는 반대하는 대도 결혼을 끝끝내 한 아빠를 보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후 일 년에 한 번 정도 나를 보러 오기 시작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한 일 년 뒤 아빠가 군대에 가고 할아버지는 더 자주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근처에 집을 구해 놨다. 그리로 들어와 살 거라.” 그 말만 남기고 휑하니 가버렸다. 우리는 친할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이사를 한 것이다. 친할아버지는 엄마나 나를 보고 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친할아버지가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친할아버지가 간 후 보면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씩이 꼭 놓여있었다. 거실 탁자 밑에 과자 한 보따리, 현관에 새 운동화, 내 방 침대 위에 곰 인형을 보면 알 수 있다.



3학년이 되니 수업시간이 좀 길어졌다. 웃으면서 엄마와 헤어지긴 했지만 나나 엄마나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일 거다. ‘엄마가 집까지 잘 돌아갈까? 학교에서 잘 지낼까?’

드디어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났다. 교문 앞을 막 나서는데 길 건너편에 엄마가 보였다. 쉴 새 없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입이 ‘헤’하고 벌어졌다.

“야, 저 아줌마 봐봐.”

“우아, 대박! 웃는 거야, 우는 거야? 하하하!”

“전자마트 풍선 같이 춤춘다.” 그 순간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엄마!”하고 불렀다.

“엄마래. 야, 쟤네 엄만가 봐.” 찔끔 놀란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길 건너자마자 엄마 손을 잡았다. 손은 제 마음대로 이리저리 휘젓고, 다리는 안으로 모아져 금방이라도 무릎이 꺾일 듯 걷던 엄마가 불쑥,

“승아야! 내일부터 엄마 나오지 말까?”

“왜? 엄마 힘들어? 그렇구나?”

“아니, 그…게 아……니고. 네가 엄마 때문에 창피하잖아.”

“엄마 힘들면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얼마 후, 선생님은 공개수업에 부모님이 참여할 건지 표시해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통신문을 주지 않았다. 공개수업 하는 날 아침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교했다.

어느 덧 교실 뒤편에는 반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가 빼곡하게 서 있다. 몇 번 돌아보는데 쓰러질 듯 들어오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가 들어서자 몸을 뒤로 빼고, 어떤 엄마는 옆 사람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또 어떤 아빠는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안 봐야 할 광경을 본 것처럼 얼른 뒤돌아버렸다.

“오늘 오신 부모님들께 감사드리고, 수업하는 모습 잘 봐 주시기 바랍니다.”

수업이 한창일 쯤, 뒤쪽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머, 이게 웬일이야?” 뒤가 술렁였다. 모두들 한곳을 둘러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일어나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엄마!…… 만지지 마요.” 나는 다들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엄마가 몸을 틀다 자칫 부딪칠 만한 물건부터 치웠다.

“아니, 몸이 저러면서 공개수업은 뭐 하러 왔대?”



“야, 승아엄마 죽었나 봐!”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선생님은 침착하게 “애들아! 수학 익힘 25쪽 문제 풀고 있어요. 현우 어머니! 저 좀 잠깐 뵐까요?”선생님이 현우엄마에게 귓속말을 했다. 잠시 후, 현우엄마는 보건선생님을 불러왔다. 바로 그때 엄마가 눈을 떴다. 보건선생님은 엄마를 보건실로 데리고 갔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보건실로 달려가

“엄마! 괜찮아?”

“……응, 엄마 갈게. 집에서 보자.”

엄마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 바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엄마와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엄마가 간 후, 보건선생님이

“승아야, 물건 치우는 것은 누가 가르쳐 주셨니?”

“아빠가 부딪힐 수 있는 물건은 모두 치우랬어요. 만지지 말고 기다리면 엄마가 자고 일어날 거라고….”

“승아가 잘해줘서 엄마가 잘 주무시고 일어나셨구나. 아빠는 오늘 못 오셨니?”

“아빠는 부대에 있어요.”

“아빠가 군인이시구나? 멋지시다.”

“……아니, 우리 아빠는….”

보건선생님은 나를 칭찬했지만 나는 아무 할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지금 군대에 있다. 나 때문에 군대 가는 걸 미루고 미루다 남들보다 늦게 갔다고 했다. 지연이 오빠도 지금 군대 갔다는데 그에 비하면 아빠는 아주 늦게 간 거란다. 군대 가기 전에 엄마랑 나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했다. 편의점, 피자배달과 일요일에는 전통결혼식에 가마꾼 일까지 했다.



“야, 승아엄마 걷는 거 봤어? 완전 술 마신 사람 같지?”

“아니, 전자마트에 서 있는 풍선인형 같대도. 하하하!”

“야, 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병 옮는다고 가까이 가지 말랬어.”

“아냐, 우리 엄마 병 옮기지 않거든. 우리 엄마는 머리가 아파서 그래. 술 안 마셨다고!”

나는 메고 있던 가방으로 아이들을 차례로 때려줬다. 두 번째 아이를 때리려는데 선생님이 들어오면서 “승아야! 안 돼.”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 졌다.

“승아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신 거야. 남의 약점을 가지고 놀리고 막말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창피한 일이야. 명구, 규석이, 효빈은 승아에게 사과해. 그리고 승아도 누굴 때리는 것 또한 잘 한 행동이 아니야. 승아도 명구에게 사과 하도록 해.”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두 주먹을 쥐고 씩씩거렸다. 얼떨결에 맞아 얼굴이 벌겋게 된 명구는 소리 없이 울었다. 세 아이들은 돌아가며 모기만한 소리로 “미안해!” 하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두 눈에는 굵은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선생님은 수업이 다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빈 교실에 나를 남게 했다. 선생님은 고개 숙이고 있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안아주었다. 내 눈물은 선생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승아야, 선생님은 승아가 아주 대견하단다.” 나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를 한참동안 안고 말없이 등만 토닥여주었다.

“선생님, 저는 정말 나쁜 애예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아니야. 승아야.”

“아녜요. 흑흑흑!”

“승아야! 왜 그러니?”

“선생님, 엄마한테 공개수업 얘기를 안 했는데 엄마가 오셨어요.”

“그랬구나, 근데 엄마가 오셔서 놀랐겠구나?”

“네, 그런데다 엄마가 쓰러지기까지…….”

“승아야! 선생님 같아도 네 마음 같았을 걸.”

“네? 선생님…….”

“선생님이 솔직히 말해 볼까? 선생님 엄마는 소아마비셨어. 목발을 짚고 다니셨지. 거기다 아주 작으셨어. 어느 날 하루는 내가 잊은 준비물을 가지고 오신 적이 있었어. 그런데 나는 엄마가 앞에 있는데도 엄마가 아니라고 했어. 그때 엄마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단다. 딸 반을 잘못 알았다고 얼른 뒤돌아 가셨어. 선생님은 그렇게 나쁜 딸이었단다. 선생님 엄마는 그 후로도 내게 서운한 말을 하지 않았지.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고 말한 나쁜 딸에게 더 잘해줬어. 그리고 매일 내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지. 아마도 승아엄마도 선생님 엄마 마음이실 걸?”

“선생님!” 나는 더 큰 울음이 터져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명구 때린 것은 사과할 거지? 그렇지만 승아야, 엄마와 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 엄마한테 사과는 더뎌도 돼. 너무 너를 재촉하지 마. 사과를 꼭 해야 하는 건 승아가 알고 있겠지만.”

선생님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는데 집안은 떡볶이 냄새로 가득했다. 떡볶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엄마가 제일 잘하는 간식이다.



“승아야! 어서 와. 때맞춰 아주 잘 왔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엌으로도 들어가지 못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어 식탁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먼저 말을 꺼냈다.

“승아야, 아까는 놀랬지? 엄마가 가지말 걸 그랬어. 엄마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네가 학교 간 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는데, 그곳에서 302호 준우엄마를 만났어. 준우엄마 하는 말이 오늘 공개수업에 같이 가자는 거야. 그리고 가족사진이 준비물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겠니? 그래서 네가 태어났을 때 찍은 사진을 부랴부랴 찾아 갔던 게 그만……, 승아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나는 떡볶이만 자꾸 입에 넣었다. 입안에 떡볶이가 있는 대도 또 넣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씹을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떡볶이를 찍어 입에 넣었다.

“승아야, 엄마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엄마, 공개수업 있는 거 말 안 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승아야, 보건선생님한테 다 들었어. 네가 엄마 다치지 않게 위험한 물건 치웠다고, 그리고 엄마 못 만지게 했다는 것도. 사람들은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네가 그렇게 해 줘서 엄마가 하나도 안 다쳤어.”

“근데 엄마! 우리도 가족사진이 있었어?”

“네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기념해야 한다고 사진관에 가서 찍었어. 엄마가 몸을 가만히 못 있어 사진 찍기 싫어했는데, 우리 승아 낳고 없던 용기가 생겼나 봐. 아빠가 사진 찍을 때 너를 무릎에 앉히고, 엄마를 팔로 꼭 끌어안아줬어. 엄마 팔과 몸이 움직이지 않게 말이야. 사진이…어디 있더라. 아, 여기 있다.”

엄마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은 오래된 사진처럼 낡아 있었다. 사진 안에는 웃고 있는 얼굴, 셋이 있었다. 다른 친구의 사진들과 다를 게 없었다. 아빠는 엄마의 어깨보다 팔을 감싸 안고 있었고, 한 손은 무릎에 앉힌 나를 잡고 있었다. 아빠의 팔은 고리처럼 나를 아빠와 잇고, 아빠와 엄마를 이어놓고 있었다.##

 
김영주
김영주

 

 

약력
김영주
논산출생.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등단. 동시 동아리 ‘동시랑’ 회원.
전북작가회 회원.


당선소감

지난 3월, 운동하러 가다 우연히 한 모녀를 만났다. 엄마는 뇌성마비였고, 딸은 초등 1학년쯤으로 보였다. 불편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표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깔끔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어 야무져 보이는 아이는 마냥 웃으며 옆으로 걸었다. 엄마의 장애를 아직 못 느끼는 걸까, 아니면 보이는 그대로 행복한 걸까? 편견으로 보는 내 눈이 문제였을까! 그 후로도 세 차례 마주쳤지만 변함없이 엄마를 보며 옆으로 걷는 아이가 행복해 보였다.

그 모녀를 소재로 동시를 써서 몇 번의 퇴고를 거듭했지만 만족한 작품을 얻지 못했다. 이 소재로 무엇인가 쓰고 싶어 놓지 못했다. 그러다 동화‘가족사진’을 쓰게 되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장애를 가진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한 주인공 소녀에게 화해와 행복을 안겨주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는 ‘오카 슈조’이다. 특수학교 교사로 아픈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소재로 쓴 작품이 많은 일본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주 중증 장애를 가진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시각으로 재밌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특징이 있다. 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닮고 싶다.

올 한 해 아이들과 글 창작수업을 하며 바쁘게 다녔다. 글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기발한 표현력에 많이 설렌 시간을 살았다. 그리고 틈틈이 글을 썼다. 작년에는 군에 간 아들이 갑자기 아파 힘든 시간을 지냈다. 그 이야기를 글로 털어놓았다. 글을 쓰는 사이 스스로 힘을 얻었다. 글로 치유되었던 시간이었다. 그 글이 등단작은 아니지만 함께 쓴 수필로 등단을 했다.

첫 독자들이 되어준 캐나다에 있는 친구 은정, 대학원 동생 지연, 우리 두 아들, 동생 영아, 다 고생 많았다. 가르쳐 주신 교수님들, 동시랑 회원들 모두 감사하다. 그리고 기회
 

유영선
유영선

 

심사평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감동을 전하는 작품”

응모작품을 대할 때는 스스로 경건해진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작품 속 주인공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며, 한 편 한 편 숙독했다. 선자에게 들어온 작품은 모두 43편.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결심에 오를 작품을 손에 쥐었다. 마지막까지 손에 남은 작품은 ‘비갠 날에 생긴 일’(대전:이시형), ‘카스테라’(경기구리:김영인), ‘내 이름은 보리’(충북충주:이의민), ‘고물자전거’(부산:이윤정), ‘강뉴의 목걸이’(전남광양:조연화), ‘가족사진’(전북전주:김영주) 등 6 작품이었다. 6편의 작품들은 나름대로 소재와 표현에서 개성이 있고 동심이 살아있어서 선작에 고심을 했다. 동화는 이야기글이기 때문에 감동과 따뜻함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

‘비갠 날에 생긴 일’은 아픈 아이가 비를 맞고 날지 못하는 새 한 마리를 보고 집으로 데려갔으나 결국 죽게 되자 풀숲에 묻어준 뒤 하늘로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아픔을 떨치고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섬세한 심리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카스테라’는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친 주인공이 수술을 한 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할아버지 환자와 티격태격하면서 케미를 보이는 동심이 살아있는 동화였다. ‘내 이름은 보리’는 강아지 진돗개가 입양돼 ‘보리’라는 이름을 얻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동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주인과 강아지의 사랑을 따뜻하게 그렸다. ‘고물자전거’는 자전거를 갖고 싶은 주인공에게 할아버지가 고물자전거를 선물했지만, 창고에 처박아두고 타지 않다가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한 뒤 할아버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고물자전거를 꺼내서 탄다는 이야기이고, ‘강뉴의 목걸이’는 에티오피아 출신의 할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던 강뉴가 한국전참전 기념관을 가본 뒤 할아버지가 강뉴부대 출신으로 6.25때 한국을 위해 싸운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할아버지를 좋아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2편의 작품은 손자와 할아버지의 관계를 잘 묘사했다.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은 몸을 가누기 힘든 뇌전증 환자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였는데 가슴이 아리면서도 밝게 묘사해 읽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공개수업을 숨겼음에도 엄마가 교실에 나타나 쓰러졌고, 상황을 처리하는 성숙한 딸의 모습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동화였다.

6편 모두 나름대로 특색이 있지만 동심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로, 감동을 전하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결정으로 당선작으로 ‘가족사진’을 선택했다.

‘가족사진’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대화 위주로, 타 작품들이 보여준 문장력과 비교되는 점은 있었지만, 미소를 짓게 하는 표현과 주제를 끌어나가는 솜씨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아쉽게 선외가 된 분들에게도 격려의 마음을 보내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유영선 동화작가


소설부문 당선작과 심사평은 21일자 10면, 11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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