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간

지금은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되겠다고 다 되는 직업이 아니었으므로 지금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한번씩, 그림을 왜 그만두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 어쩌다가 그랬지? 왜 그런 결심을 했더라?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뿐이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은 매번 같은데 해주와 함께 레지던시 생활을 했던 여름, 그 여름의 오후가 떠오른다. 그러나 왜 하필 그때일까.

그해 여름, 해주와 나는 커피 회사가 주관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우리는 상암동에 위치한 스튜디오에 입주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여름이 끝나면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아르바이트는 레지던시 건물 옆에 있는 전시관의 안내데스크에서 오디오를 대여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입주 작가 모두가 투입되었던 일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돈이 필요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일은 단순했다. 로비에 있는 데스크에서 오디오를 대여하고 반납받는 일이었다. 주말엔 관람객이 몰려 힘들었지만 한가한 날엔 책도 읽고 작업 노트도 끼적일 수 있었다. 해주는 손님이 없는 한가한 오전 시간을 두고 ‘빛의 시간’이라 불렀다. 빛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시간으로 뭔가가 어긋나면서 생겨난 우연의 순간을 말했다.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는 순간 지나가고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부질없지만 그 순간에 운명이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뭐가 바뀌는데? 내가 물었을 때, 해주는 뭐가 바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순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로비를 지나던 염 큐레이터가 내게 아는 척을 했다. 공모전 합격 작가 중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게 되었을 때 해주를 뽑은 여자였다. 2차 합격 작가들을 놓고 논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결국 제비뽑기를 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주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했었다.

“오늘 좀 한산하죠?”

“네, 그런 편이네요.”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 기다렸다. 물어보겠지, 작업은 잘 되냐고. 도록에 실을 사진은 올렸냐고. 독일로 보낼 작가 노트와 비평문은 쓰고 있냐고. 염큐는 내가 우물쭈물 대답하는 모습을 즐기며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걸 넌지시 확인시켜 주고 싶었을 것이다. 철두철미한 성격이니까. 그런데 그때 오디오를 반납하려는 관람객이 다가왔다.

“아까는 널 못 본 것 같은데 언제 왔어?”

오디오에서 이어폰을 분리하던 여자는 날 보고 대뜸 그렇게 물었다.

“아깐 여기 없었지?”

나를 잘 아는 듯 다정한 말투였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디오를 받았다. 예쁜 얼굴이었지만 모르는 여자였다. 여자는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염큐가 눈인사를 하고 로비를 빠져나갈 때까지. 염큐가 나가자마자 여자는 웃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만 얘기하면 단박에 자길 알아보리라 확신하는 말투였다.

“나 나영이야! 한나영”

나영. 나영이라. 모르는 여자였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나영을 모르는 사람으로 결론짓고 싶지 않았다. 나영은 예뻤고 예쁜 여자와 잠깐 말을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우연을 비집고 나온 빛의 시간일지 모르니까.

“너 아직 그림 그려? 상수동 살지?”

나영은 마치 나를 잘 아는 사람처럼 말을 시켰다. 나는 애매하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작업실은 뺐지만 집은 거기 있다고 대답했다. 나영은 “그래?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우리 사이에 굉장히 어색한 침묵이 흘렀는데 그때 나영은 불쑥 “그런데 정연이가 너 때문에 죽었어?”라는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정연이가 너랑 왔어? 하고 묻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였다. 그게 다였다. 뭐? 누구? 라고 되묻는 내게 처음으로 심란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아냐. 아닌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인사도 없이 미술관을 나가버렸다. 정연이가 죽었냐니. 그것도 나 때문에. 정연이가 누구길래. 그런데 정연이가 진짜로 죽었다면 그런 질문은 할 수 없지 않았을까.

나영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염큐가 다시 들어왔다. 염큐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내게 오더니 해주의 작품이 판매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염큐의 표현처럼 ‘기쁜 소식’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나영이 누구더라? 정연인? 하는 생각뿐이었고 작업실에 돌아가서도 그 생각을 멈추지 못해 해주와 다투기까지 했다.

“왜 사람을 잘못 봤다고 딱 자르지 못해?”

해주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모르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자체였다. 해주는 길쭉한 나사를 구멍 뚫린 나무상자에 돌려 넣다가 내려놓았다.

“그럴 때가 있다며.”

나도 드릴을 내려놓았다.

“의지가 개입할 틈도 없는 짧은 순간. 네가 작가 노트에 여러 번 쓴 말이잖아.”

내 말에 해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딴 여자랑 얘기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넌 기쁘지도 않아? 우리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얇은 피복 전선을 만지작거렸다. 해주의 작품에 조그만 조명을 연결하느라 며칠째 끙끙거리던 것들이었다. 나무로 만든 서른 개 남짓한 집들에 전선을 연결하고 전구를 다는 작업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손이 많이 간 건 사실이지만 엄격히 말해 ‘우리의 작품’은 아니었다. 해주가 생각하고 설계한 해주의 작업이었고 나는 그저 어시스트일 뿐이었다.

“이것 좀 잡아줘.”

잠시 후 해주가 네모 모양의 집을 들어 올렸다. 나는 다시 조명을 달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집들’이란 제목의 설치 작품은 지난주에 있었던 오픈 스튜디오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3차원 공간밖에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4차원 공간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2차원인 세계도 그렇고요.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는 진짜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과거나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총체적 세계에선 무의미할 수 있어요. 저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을 한 곳에 표현함으로써 예전에 놓쳐버린 어떤 것, 빛의 시간이나 만질 수 없는 공간을 집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나로선 전혀 흥미가 돋지 않았던 해주의 설명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큐레이터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반응이 좋았고 다른 작가들도 재미있는 작업이라며 해주를 격려했다. 게다가 오늘은 그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났으니 나무로 만들어진 모형 집은 존재가치가 확고해진 셈이었다.

“칠을 한 번 더 해야겠어. 1번 집이 2번 집보다 연해 보이지 않아?”

해주가 물었다. 내 눈엔 거의 같아 보였다. 그래도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고 해주는 물감을 사러 간다며 앞치마를 벗고 나갈 준비를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옆에서 자고 있던 뮤(해주가 키우는 고양이였다)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갈 거지?”

해주가 물었지만 나는 그냥 있겠다고 했다.

“그림 좀 그려야지.”

내 말투 때문인지 해주도 더 조르지 않았다.

그림 앞에 앉고 보니 오랫동안 작업을 못한 사실이 실감 났다. 색감이나 구도는 괜찮지만 그림에 힘이 전혀 없다고, 힘이 없는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연히 들은 방문객의 거친 평가에 나는 단단히 옭매어 있었다. 그런 말은 신경 쓰지 마. 넌 형태 감각도 있고 묘사도 훌륭하니까. 차라리 인물을 그리는 건 어때? 진짜처럼. 해주의 말처럼 인물을 그리는 작업이 내 재능을 부각할 수 있는 분야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땀구멍을 파는 것보다 좀 더 근사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 소용돌이든 고요함이든, 특정한 분위기를 오롯이 담아 절제된 색감으로 힘 있게 표현하는 것. 현란한 기교마저 한발 물러나 보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색의 조화…….

그러나 색을 어떻게 섞어보아도 원하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름 모를 방문객의 목소리는 자꾸만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그림 앞에 앉으면 이런 말만 튀어나왔다. 젠장. 어쩌라고.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말하기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슬픔과 짜증과 노여움이 한 곳에 뒤섞여 날뛰다가 결국엔 비참해지는 기분. 그러면 나는 붓을 내려놓고 해주의 소파로 가서 쉬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이것저것, 이를테면 자투리 나무 조각이나 나사, 점토 같은 걸 가지고 심심풀이로 장식을 만들곤 했다. 나중에 해주가 돌아와, 오 이런 것도 만들었네 하며 제대로 배치하기도 하고 이건 좀 아니다 하며 떼어내기도 했던 것들. 그야말로 재미 삼아 만들어진, 해주조차도 이걸 작품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던 작업이 어떻게…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었다. 불현듯 해주가 만든 집을 걷어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만약 뮤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주먹을 내리칠 수도 있었을까. 뮤는 호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내 쪽으로 걸어왔다. 매일 졸고 있던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는 게 섬뜩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뮤가 온 것은 다행이었다. 뮤는 내 발에 딱 붙어 앉았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철저하게 해주만 따르던 녀석. 심지어 나에겐 적대적인 포즈를 취할 때가 많아 우리는 서로 경계하는 사이였는데, 그런 뮤가 말을 걸듯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게 해주가 말한 뮤의 말하기 방식인가?

뮤가 말을 해. 소리가 나는 건 아니야. 눈으로 하거든. 해주는 뮤의 등을 쓰다듬으며 내게 얘기해 보라고 권하곤 했다. 쉽다고. 그냥 눈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뮤는 내가 다가가면 멀쩡히 놀다가도 엎드려서 눈을 감았고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은 등을 쓸어주려는데 앙! 소리를 내며 신경질을 부리더니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올라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웬일로? 나는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고양이의 표정까지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순간 뜻밖의 이름이 머리를 스쳤다.

정연.

그런 이름을 가진 애가 있었구나 하면서 처음 든 생각은 나영은 누굴까 하는 것이었다. 정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나영도 기억날까 했지만 정연과 나는 추억을 갖고 말고 할 사이가 아니었다. 정연이 전학을 오고 한 달 정도 짝을 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 애는 전학을 오자마자 다시 전학을 갔다. 무슨 전학을 밥 먹듯이 다니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나는 아니었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 기억해낸 것도 정연이 아니라 그 애의 고양이니까.

정연은 뮤와 비슷한 회색 고양이를 키웠다. 조그만 고양이를 매우 용의주도하게 교실에서 키웠다. 고양이도 주인만큼이나 조심스러워 교실에서 고양이의 존재를 알아챈 사람은 짝인 나뿐이었다. 나조차도 딱 한 번, 시계를 잘못 보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했던 날 살짝 본 것이 전부였다. 고양이는 가방이나 책상 서랍 안에 숨어 지내는 것 같았는데 신기한 것은 수업 시간 내내 낑 소리 한번 내지 않고 견뎠다는 것이다. 나는 정연에게 고양이에 관해 몇 번이나 물었는데 그때마다 정연은 무슨 고양이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런 태도는 내 의구심을 키웠다. 기필코 확인을 해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나는 일부러 연필 한 자루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줍는 척하며 몰래 서랍 안을 들여다보았다. 서랍은 텅 비어 있었다. 고양이 따윈 없었다. 당황한 나는-그럴 것까진 없었는데-그 애를 밀쳤고 격렬하게 서랍을 뒤졌고 뒤지다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반 아이들이 일제히 내 쪽을 돌아보았다. 선생님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보았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면서 교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창틀에 놓여있던 정연의 책가방에서 기어 나왔다. 고양이는 창틀 위를 살금살금 걸어가다가 그대로 떨어졌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뮤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는데 좀 전의 견고함은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상대를 공격할 것 같은 사나움이 담겨 있었다. 나는 기분 나쁜 표정이라고 생각하다가 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담배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미지근한 여름 공기가 안으로 훅 들어왔다. 나는 해주의 소파에 앉아 천천히 담배를 피웠고 담배를 피우면서 나영을 생각했다. 나영은 누구더라…? 뮤는 그런 내 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동 작업실에 그날따라 나 혼자뿐이었다.



뮤가 없어진 것은 이튿날이었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해주와 조금 어색했는데 어쩌면 그건 순전히 내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행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해주의 상황이 좋아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돌연 뮤가 사라지면서 해주의 기쁨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작업이고 여행이고, 뮤를 찾아다니기 바빴고 나는 그런 해주를 달래느라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크게 나쁘지 않았는데, 그게 두근거린다고 해야 할지 울렁거린다고 해야 할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묘한 기분은 의외로 기분을 전환 시키는 힘이 있어서 전보다 기꺼운 마음으로 해주를 돕게 했다. 해주대신 미술관 일을 하고 작품 마무리도 하고 나중에는 해주의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과 직접 통화해 가격도 조정했다. 해주는 아무것도 못하고 뮤만 찾아다녔다. 가족보다 소중히 여기던 뮤가 없어졌으니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옆자리를 쓰는 동양화 작가가 해주에게 말을 걸었다.

“고양이가 안 보이네?”

동양화 작가는 작업실에 자주 오지도 않으면서 뮤가 없는 건 단번에 알아차렸다.

“어디 갔어? 예쁘게 생긴 놈이던데.”

인사치레로 하는 말에 해주가 난데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또 시작이구나. 나는 조금 피곤해졌다. 나와 달리 동양화 작가는 해주를 자기 자리로 데려가 조곤조곤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운다는 동양화 작가는 2층이라도 창문을 열어두면 안 된다고 충고하며 도움이 될 만한 고양이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해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요즘 밖이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둔 적도 없는데 너무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날 해주는 밤새도록 고양이 탐정 사이트를 뒤졌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밤새도록 그림을 그린 건 오랜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싫다는 해주를 억지로 끌고 나와 아침을 먹으러 갔다. 해주는 밥에 손도 안 대고 휴대전화만 보더니 퉁퉁 부은 얼굴로 고양이를 찾아준다는 탐정 얘기를 했다.

“작품은 어쩌려고 그것만 보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수색해야 가능성이 있다는데 연락이 되는 사람이 없어.”

“지금 그게 중요해? 네 작품, 오늘 가서 설치하기로 했잖아.”

내 말에 해주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야말로 지금 해주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가 어디라고 했지? 성북동? 카페라고 했지?”

내 말에 해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식은 밥을 앞에 놓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작업실로 돌아왔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해주의 작품을 포장했고 해주는 드디어 고양이 탐정과 통화가 되었다며 울먹거렸다.

“너는 아무렇지가 않구나.”

전화를 끊고 해주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해주의 작품을 챙겼고, 네가 걱정된다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중요한 시기를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고작 잃어버린 고양이 때문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남는 건 후회뿐일 테니까.

“별것이 아니라고?”

해주가 되물었다.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뮤가 사라졌는데, 너한테는 이 상황이 별 게 아니란 말이야?”

해주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뮤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야. 더 중요한 일이 줄줄이 있다는 거지.”

“더 중요한 일? 뮤보다 중요한 게 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해주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도 내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랬지 뮤가. 우리가 함께 키우려고 주워 온 고양이긴 했었지. 털이 축축하게 젖은 작은 고양이가 위험한 도로에서 덜덜 떠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기란 쉬운 것이지만 그 고양이를 덥석 안아서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 년 전, 나는 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고 해주는 고양이를 덥석 안아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일은 해주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지금은 네 작업을 배달하는 게 중요해.”

나는 성북동까지 택시를 타고 갈지, 버스를 타고 갈지 물었고 해주는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카페는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동네는 깨끗했지만, 인적이 드물어 장사가 잘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염큐가 준 약도를 확인하며 복잡한 길을 오르내렸다. 땀을 줄줄 흘리며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걷고 있자니 마치 해주가 말한 공간과 공간, 그 사이에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가상의 공간에 온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목조건물과 파스텔톤 색깔을 가진 귀여운 지붕은 해주가 만든 집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카페도 그런 집 중 하나였다. 미색 페인트가 깔끔하게 칠해져 있는데도 어딘지 낡은 느낌이 드는 건물은 카페라기 보단 오래된 가정집 같았다. 나는 동그란 금속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테이블은 제멋대로 놓여 있었고 의자는 뒤집힌 채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었고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누구세요?”

안쪽 바(bar)에 있던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자가 고개를 쏙 빼고 물었다. 여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지 한 손에 커다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자주색 무선 전화기였다.

“잠깐 기다려도 괜찮죠?”

여자가 그렇게 물어서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아무 테이블에나 앉아도 된다고 말하고 얼음물 한 잔을 바 앞으로 밀어주었다. 나지막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곡인지 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익숙한 선율의 피아노곡이었다. 모차르트인가? 슈베르트?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물을 마셨다.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여러 번 나눠 마셨다. 물을 다 마신 후에는 얼음을 한 알씩 씹어 먹었다. 얼음이 잘 깨지는 데다 깨질 때마다 바드득 소리가 나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마지막 얼음까지 부숴 먹고 남은 물을 쭉 들이마셨다. 그러다가 얼룩을 발견했다. 유리잔에 묻어 있는 지저분한 손자국. 유난히 겹쳐있는 손자국들은 나 하나의 것이 아니었다. 지문의 크기도 서로 달랐을뿐더러 많게는 네다섯 겹까지 겹쳐 보였다. 더럽다거나 지저분하다거나 하는 생각보다는 오래전 해주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차분한 얼굴로 조곤조곤 말하던 시간에 관한 이야기.

그때 해주는 공모전에서 낙방하고 상심에 잠겨 있었다. 기회는 또 있으니까, 네 작업 점점 좋아지고 있어, 작품이 중요하지, 그런 말을 한 사람도 해주였다. 나는 해주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다가 우연히 커피잔이 더럽다는 것을 발견하고 버럭 짜증을 냈다. “이게 다 뭐야? 여긴 컵도 안 닦나?” 유리잔에는 손자국과 립스틱 자국이 연하게 묻어 있었다. 나는 당장 따질 기세로 컵을 들고 일어났는데 해주가 그런 나를 붙들었다. 잠깐 잠깐. 해주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런 흔적은…과거하고 미래를…하고 자주 하던 말을 했다. 지금은 하도 들어서 지겨운 얘기지만 한때는 나도 그런 말을 좋아했었다.

여기에는 백 개도 넘는 컵이 있잖아. 이 컵들은 사람들의 손을 돌고 돌아. 종업원은 그 흔적을 열심히 지우고 없애지. 그런데 과연 그걸 완전히 지우는 게 가능할까? 흔적을 지운다고 해도 그 순간에 존재했던 시간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존재하고 있는 지나간 순간, 지나갔지만 존재하고 있는 순간. 이런 걸 보면 그런 게 생각나. 흔적이 지워진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순간은 아무 때고 튀어나와 현실에 개입한다, 뭐 그런 거. 그러니까 그냥 마시자.

며칠 후에 해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추가 합격이었다. 운이 좋았대. 나는 그렇게 말하는 해주를 꼭 안아주었다.

“설치가 복잡해요?”

내가 집을 조립하는 동안 여자는 홀을 청소했다. 빗자루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테이블 앞으로 걸어와 작품이 흥미로운 듯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왜 이렇게 오래된 나무집을 만든 거래요?”

“이걸 벽에다가 박는다는 말이죠?”

“지붕 색은 좀 유치한 거 아닌가요?”

여자가 불만에 가까운 말을 툭툭 내던질 때마다 나는 어깨만 으쓱거렸다.

설치가 끝날 무렵 청소도 대충 마무리되었다. 여자가 음료 두 잔을 만들어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그때야 나는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내가 자기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자 여자는 웃으면서 “왜요?” 하고 되물었다. 예쁘장한 얼굴이 어딘지 낯이 익어서 이름을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집이요, 여기 주인이 좋아하게 생겼어요.”

여자가 음료를 마시면서 말했다.

“주인이 따로 있나 보죠?”

“주인은 여기 잘 안 와요. 근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한 시간이면 끝날 거라고 했는데.”

“다른 건 다 끝났는데, 한 집에 불이 안 들어와서.”

“불? 불이요?”

여자는 셔츠의 앞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불이야 붙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쉬운 말이었다.

“그럼 되는데…잠깐 이것 좀 들어주실래요?”

나는 여자에게 1번 집의 바닥이 될 네모 모양의 강철판을 들도록 했다.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그걸 두 손으로 받아들더니 “생각보다 무겁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몸을 숙이고 바닥에 연결해 놓은 전선을 꼼꼼하게 살폈다. 1번 집에 불이 들어오면 도미노가 넘어가듯 저절로 해결될 문제인데……. 그러나 잘못된 지점을 찾을 길이 없었다. 끙끙거리고 있을 때 해주한테 전화가 왔다. 여자는 판을 내려놓고 담배를 마저 피우더니 카페의 문을 활짝 열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데도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가게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소나기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설치가 다 끝났냐고 묻는 해주의 말에 나는 아직 아니라고 대답했다. 해주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뮤를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지? 믿을 수가 없어.”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상수동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같이 가보자고 했다. 상수동은 우리가 뮤를 처음 발견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불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젠장. 어쩌라고.”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애인이죠?”

여자가 웃으면서 물었다.

“지금 가야 하죠?”

여자가 다시 물었고 나는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가 봐요. 설치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그냥 가보겠다고 해도 그만이었는데 나는 여자가 가져다 준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전선의 연결 상태를 다시 살폈다.

“어차피 장사도 안 되니까 아무 때나 와서 하세요. 가게를 정리하라는데 주인이 말을 안 들어요.”

여자가 말했다.

“장사는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원래 그런 거잖아요.”

나는 장사를 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원래 그런 거라…….”

여자는 중얼거리며 아까와 같은 동작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원래 그렇다…….”

여자는 잔에 있던 음료를 단숨에 마셨다. 나 역시 그 음료를 다 마셨는데 다 마시고 나자 긴장이 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잔 더 줄까요?”

여자가 물었고 나는 들고 있던 전선을 내려놓고 여자를 따라 바의 스툴에 가 앉았다.

여자는 칵테일을 만들었다. 칵테일이라고 해봤자 보드카에 난도질한 레몬조각을 섞는 게 전부였지만 신기하게도 몇 잔 마시자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는 자주 웃었고 나는 더 많이 웃었다. 웃을 때마다 여자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처음엔 여자가 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취한 사람은 나였다.

“너 정연이지?”

그런 어이없는 질문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했으니까.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을 내려가는 동안 소나기가 지나갔다. 나는 비를 맞고 걸었다. 해주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여름밤인데도 암흑처럼 깜깜했다. 불을 켜둔 집이 하나도 없었고 그 흔한 가로등도 없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온 것은 정신없이 걸어서 큰 도로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뒤를 돌아보니 웬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체구가 작은 남자아이는 교복 차림이었고 어딘지 낯이 익었다.

왜 버리고 가요?

그 애는 품에 안고 있던 뭔가를 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뭐?

왜 버리고 가냐고요.

아이가 내민 것은 고양이였다.

내가? 아닌데?

아이의 품에 있는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렸잖아요.

아니라니까.

사실을 말하는데도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것이 이상했다.

버린 건 맞잖아요.

아니라니까! 그건 내 고양이도 아니야!

진짜 아니에요?

아이는 내게 고양이를 자세히 보여주려는 듯 품에 있던 고양이를 고쳐 안았다. 묵직하고 딱딱해 보이는 게 꼭 죽은 것 같았다. 나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려는 아이를 밀치고 언덕을 뛰어 내려왔다. 아이가 쫓아오더라도 무시하고 택시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아이는 따라오지 않았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잡혔고 택시 안에서 언덕을 보았을 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

여름 끝에 해주와 나는 헤어졌다. 작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했던 해주는 움직이는 집을 시리즈로 만들어 두 차례나 공모전에 입상했고 나는 입주 작가 중 유일하게 전시를 펑크 낸 사람으로 소문을 탔다. 그룹 전시였으므로 갤러리나 작가들이 피해를 본 것도 아니었는데 입방아가 길었다. 구설수에 휘둘리며 긴 여름을 보내자 가을과 겨울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 후로 지금까지 네 번의 여름이 지났고 그림은 작년 여름에 그만두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해 여름이 생각나는 걸까. 비슷한 집들이 붙어 있던 가파른 언덕과 더운 날씨, 제구실을 못 하던 피복전선과 진한 담배연기 같은 것이. 홀리듯 나타났던 나영과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던 아이. 그리고 죽은 것처럼 꿈쩍 않던 고양이. 해주는 결국 뮤를 찾았다. 다행히 카페 주인이 잘 보살피고 있었다고 했다. 멀리도 갔네. 돌아온 뮤를 보고 내가 한 말이었다.

뮤는 알았을까. 내가 오랫동안 그해 여름에서 놓여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아무 때고 불쑥 말을 걸어오는 어린 소년의 눈빛 때문에 과거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되리라는 걸. 심지어 이렇게 사소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조차 횡설수설하리라는 걸. 알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고양이를 밖으로 내던진 것에 대해. 그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연이라면 좋겠다고. 그러나 정연인 죽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은 여전히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약력
김만희
1983년 전주 출생
세종대학교 회화과 졸업

 

 

 

 

당선소감

전화를 받기 전날 영화를 보았습니다. 버스 기사가 주인공인 잔잔한 영화였습니다.

미국 뉴저지, 패터슨이란 곳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평범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금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에밀리 디킨슨를 좋아하는 버스기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를 씁니다. 성냥, 담배, 맥주, 신발 상자. 그가 쓰는 시는 그가 보는 모든 것들로부터 시작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그에겐 다른 풍경으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그는 식탁에 놓인 조그만 성냥갑에 든 평범한 성냥에서 ‘거친 포도색 모자’를 쓴 ‘소나무 막대’를 발견합니다. 포도색 모자가 불꽃으로 타오르는 순간을 상상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은 늘 아름다운 시가 됩니다. 그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보고 듣고 시를 짓습니다. 그래서 모든 풍경이 재미있고 흥미롭고 소중합니다. 이것은 그가 시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가 일상을 시처럼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것들을 달리 보도록 하는 미묘함. 저는 그것이 문학이 가진 비밀스러운 특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밀스러운 특기는 도처에 널려있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책이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에게는 소설이 그런 힘이 되었습니다. 일상을 달리 보는 사람, 그런 비밀스러운 특기를 즐기는 독자이자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늘 객관적이고 냉철한 태도로 저를 지지해주신 삼창 감정의 구 지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를 믿고 지켜보며 응원해 주시는 강 선생님, 늘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선생님의 위트가 제겐 너무 딱 맞아요. 웃음 가득 오 마이 서민향 고마워. 너랑 맥주 마시는 시간이 영감의 시간이야. 100세 파이, 곧 다시 만나길. 언제나 내 편에서 나를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프로이트 송, 고마워.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당선작 ‘빛의 시간’ - 인간 행태의 미세한 관찰.

 

 

예심을 통과한 작품 15편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5편의 전반적인 수준이 거의 비슷한 상황이므로, 당선작 선정에는 기성작가와 다른 새로운 시각,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화법을 발굴해 내는, 이른바 참신성에 중점을 두었다.

‘박곡지 물안개’(정형석)는 저수지의 낚시꾼 익사사건 해결과정에서 드러난, 고교동기생 3인의 각기 다른 성격과 일상의 행동을 통해, 선의의 허울을 쓴 인간의 비열한 내면을 폭로한 작품이다. 인물들의 성격과 사건설정에 상호 관련성이 확보 되고, 소설 전체의 흐름도 원만하나, 소재나 주제가 흔하고, 독자가 판단할만한 상황제시 보다 설명위주의 전개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대화나 지문도 지루한 감이 있으므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메지구름’(이영희)은 남편의 수술결과를 지켜보는 아내의 절박한 심정과 의료진의 처치에 대한 의구심, 그로 인한 갈등 해소과정도 비교적 세밀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문장도 상황전달에 무리가 없을 만큼 단련 된 편이다.

그러나 서술의 주체인 화자(話者)의 정체가 모호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1인칭화자임은 파악 되지만, 어디에도 그걸 명확히 짚어 준 곳이 없다. 몇 곳에 화자의 신분을 의도적으로 노출, 강조한 것은 의료진을 압박하려는 불필요한 신분과시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나는?’(김만성)은 ‘인간은 다면체동물’이라는 금언(?)을 코믹하게 다룬 작품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화장실 풍경의 단면을 통해, 일상의 모습과 다른 인간의 이면을 드러내면서 그 속에 자신까지 포함 시키고 있다. 자조적(自嘲的)이면서도 폭로성 짙은, 특이한 발상의 작품이다. 주제도 분명하다. 다만 세상을 너무 장난스럽게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 때문에 작품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걱정 마세요’(이현신)는 수술이 시급한 자신의 신체 이상을 알면서도 환자치료 때문에 결단을 미룰 만큼, 사명감 투철한 외과의사와 미래를 약속한 동료 여의사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소재나 주제는 상식적인 것이지만, 작품전체의 구성에 빈틈이 없고, 가독성 높고 속도감 있는 문장도 탄탄하다. 독자들의 눈에는, 작가가 전문 의료인이 아닐까 짐작할 만큼 수술이나 그 전후과정의 서술도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기성작가를 능가할 만한 작품으로, 당선작으로 밀어도 손색이 없지만, 앞에 쓴 대로 소재나 주제의 참신성이 당선작에 비해 다소 희박하다는 점에서 아쉽게 내려놓았다. 작자의 능력에 기대가 가는 작품이다.

<빛의 시간>(김만희)은 화가가 되고자했던 화자가, 고양이 세 마리와 얽힌 사소한 사건 때문에 운명이 바뀌게 됐다는 얘기다. 어쩌면 황당한 이야기요, 성립 불가능한 논리인 듯하다.

그러나 작자는, 화자가 기억 속에 깊이 묻혀있던 사건들과 함께, 의식 하지 못하는 사이에 쌓여 온 죄의식으로 인해 무기력해져가는 과정과, 과거의 실수를 고백할 대상조차 사라져 비참해진 심리상태를 차분히 그려냄으로써, 황당한 논리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인간의 사소 한 행태에 확대경을 대고 미세한 관찰을 시도,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결코 거대한 사건만이 아니라는, 인간탐구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되어 당선작으로 올렸다.

모든 응모자들이 그간에 바친 노고에 격려와 감사를 드리고, 당선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안수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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