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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3회 노년철학회의’를 마치며
동양포럼 ‘3회 노년철학회의’를 마치며
  • 박장미
  • 승인 2018.12.23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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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골 산속에서의 사흘간의 감회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일본중앙학원대학(中央學院大學) 현대교양학부 조교
미네 마이코(峯眞依子)


3회 노년철학 국제회의가 보은속리산숲체험휴양마을에서 3일간에 걸쳐 방대한 에너지를 집결시킨 후 간신히 막을 내렸다. ‘간신히’라고 말한 이유는 이 동양포럼이 지금까지 내가 일본에서 경험한 어떤 대회나 심포지엄과 비교해 보아도 압도적으로 힘든 회의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시간의 점심 휴식을 두고 매일 계속됐다. 심지어 6시 반부터의 저녁 식사 중에도 논의가 계속될 때도 있었다. 솔직히 빨리 도쿄에 돌아가서 쉬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 돌아와 보니까 보은 산들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눈에 떠오르고, 난생 처음으로 체험한 온돌이 그리워서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도쿄에 있는 나를 사로잡는다.

이번 포럼을 마친 소감을 말하기에 즈음하여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은 이 글이 나의 메모와 스마트폰에 남겨진 기록들에 의거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각 발표자의 의견이 본인이 말한 취지와 약간 다를지도 모른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이 혹 위화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한 일본인 연구자의 주관적인 심상에 따라 동양포럼을 되돌아본 개인적, 주관적 감상문으로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11월 14일(전날)

11월 14일 저녁, 우리는 동양포럼의 개최지인 보은 숲체험 휴양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뷔페형식의 식당에 안내받았다.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한국 요리.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모두 이 고장에서 나온 유기농 야채라고 한다. 테이블 위에 삶은 돼지고기 옆에 놓인 새우젓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 13일 밤 우리가 함께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으면서 동양포럼 유성종(劉成鍾) 운영위원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돼지고기와 새우젓, 쇠고기와 배를 같이 먹으면 소화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머리는 시원하고 배는 따뜻하게 입는 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옷차림의 방식입니다.” 유 선생이 말씀하신 그대로 돼지고기 옆에 새우젓이 차려 있지 않는가! 현대 한국의 음식문화 및 생활양식에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방대한 선인들의 건강에 대한 지혜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식사 후 쉴 새도 없이 오후 7시부터 사전협의가 시작되었다. 모처럼 소화에 좋은 돼지고기와 새우젓을 곁들어 먹었는데도 식후 바로, 게다가 밤에 일을 시작하는 것은 소화에 나쁘지 않는지요? 하고 유성종 선생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한국에 일하러 왔지 놀러온 것이 아니다. 주최측(보은군 및 동양일보)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창밖은 캄캄하다. 벽 전체에 펼쳐진 큰 목제 창틀에 박힌 유리 창문에 회의실의 형광등 몇 개가 비치고 있었다. 마치 이제 밤바다에 나가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창밖에 여러 척 정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의실에서는 식사 때와 달리 바짝 긴장한 한국인과 일본인 연구자들 전원이 마주앉았다. 정면 중앙에는 동양포럼 주간의 김태창 선생이 앉았다. 김태창 선생은 전체를 바라보다가 마치 지휘자가 자기만 아는 타이밍으로 지휘봉을 음직이기 시작하듯 조용히 말씀을 시작했다. 그는 동양포럼이 제1회와 제2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요약 설명하고, 이번 제3회에서 ‘늙음의 의미와 가치’라는 주제를 설정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돌입했다. 한국은 거기에 맹속도로 들어가고 있고 곧 일본과 똑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고령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에게 부정적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사실 한일 양국 똑같은 현상이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노인충(老人蟲)’ 즉 노인 벌레라고 부르기까지 한단다.(일본에서도 노인을 욕하는 말은 많이 있지만 인간 이외의 생물, 게다가 포유류도 아닌 곤충에 비유한 말은 없다. 이것에는 매우 놀랐다).

늙는 것에 긍정적인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도대체 한국과 일본의 초고령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노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정과 긍정적 생산적 가치 정립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리고 만약 이 동양포럼에서 노년에 관한 철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두 나라의 미래가 바뀐다. 게다가 지금 한국과 일본이 노력해서 늙음의 의미와 가치를 논의하고 그 대답을 우리들이 찾을 수만 있다면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이제 막 고령화가 진행되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에 대해서도 유익한 공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태창 선생이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 여러분, 내일부터 함께 새로운 도전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 호소에 나도 모르게 감동했다. 그는 “함께”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는 85세의 노년학자이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연상인 고명한 학자가 그 자리에 모인 학자 모두와 대등하게 접해 주었다. 그리고 나 같은 일본에서 오고 처음 만나는 무명의 젊은 연구자까지 대등한 협력자로 간주하고 기대를 걸어주었다. 그것에 나는 감격했다.

 
●11월 15일(첫째 날)

드디어 이번 동양포럼이 개막했다. 정상혁 보은군수가 개회인사를 했다. 보은군은 노인 자살률이 한국 1위였지만 2010년에 정 군수가 취임하고 나서 불과 8년만에 한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낮은 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일본에서 일찍이 들을 바가 있었다. 정 군수에 대해서는 후일 인상적인 일이 있었으므로 뒤에 다시 말하고자 한다.

이어서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이 인사말을 했다. 인천공항에서 보은군까지 오면서 다른 일본인 참가자한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 동양일보라는 일간지에서는 문학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2면에는 매일 시가 실린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게 됨으로써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문학적 소양을 재고시키는 일조를 맡고 있는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의 신념을 한번 자세하게 들어 보고 싶었다.

시라고 하면 참가자들 가운데 시인이자 문학박사인 김영미 박사가 있었다. 그녀는 개회식의 자기소개에 즈음하여 보은에 품기는 국화 향기에 언급했다. 국화는 꽃 중에서 그다지 강한 향기를 내는 꽃이 아니다.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언어화하는 것을 보통 사람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후각이라고 하는 지극히 미세한 감각은 어렵다. 보은의 국화 향기를 순식간에 알아차린 것은 과연 시인이었다. 그녀가 그때 보은의 국화향기를 말해준 덕분으로 지금 겨울의 도쿄에 앉은 채로 국화향기가 품긴 보은의 산 단풍을 상기할 수 있다.


-발제 1

동아시아 사상사가 전문인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 선생이 선두타자를 맡았다. 그는 현재 77세. 소위 독거노인으로 날마다 노년기를 살면서 느낀 실감을 바탕으로 노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제 인상에 남은 것은 그가 자신의 학자 인생을 걸고 모으고 조사한 종이매체의 자료(서적도 포함)의 정리를 죽기 전에 다해야 된다고 주장한 점이었다. 과연 여기저기서 정년 후의 대학교수가 대량의 서적을 놓을 곳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요즘은 도서관도 공간에 한계가 있어서 아무데서도 떠맡아 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경우는 일반적인 서적이라기보다 1993년 8월부터 NGO(북한의 인권억압 반대와 강제수용소 근절을 목표로 한다)을 스스로 조직하고 활동해 왔기 때문에 공공성이 높은 그 활동 기록의 정리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년기가 되면 사실은 바빠진다. 자기의 진정한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나는 그가 자료 정리에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가와 선생의 경우는 손쉬운 해결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사로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올해 <노예의 문학지―소리와 문자의 상극을 더듬어가다>(靑弓社)라는 책을 썼을 때,(반갑게도 이 책은 얼마 전에 비교문명학회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미국 노예제도하에 놓였던 전 노예의 음성 증언이 활자화된 자료를 이용했다. 그 자료는 미국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90년대에 시티그룹의 지원에 의해 완전 디지털화가 이루어졌다. 어찌된 일인가. 나는 일본에 앉은 채로 미국의 남북전쟁 이전의 전 노예 2,000명 이상의 증언에 접근하는 은혜를 입은 셈이다. 물론 출자자의 문제는 남지만 오가와 선생이 제시한 문제, 곧 귀중한 종이자료의 보존과 후계자를 둘러싼 문제는 전자화에 의해 차세대에의 계승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오가와 선생의 이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년을 사는 데에 참고가 되는 ‘보본반시(報本反始)’라는 사상이었다. 이것은 18세기 일본의 사상가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園)이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서 따서 주장한 말이다.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지만 조상의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미우라 바이엔은 이 생각을 실천하고 하루에 세 번씩, 만년에는 하루에 두 번 성묘를 했다고 한다.

오가와 선생은 돌아가신 사모님의 성묘에 한 달에 한 번씩 감사의 뜻을 표하러 간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바이엔의 사상을 보다 현세적인 시간축(時間軸)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 그의 경우 ‘보본(報本)’의 ‘본’은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을 누린 시대와 국토,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마음을 소통하는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년이 되서야 비로소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기를 둘러싼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금할 수 없고, 또 그들의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 속으로 우러나오는 경지라고 말해야 될까.

김태창 선생의 지적에 따르면 실은 보은군에는 ‘보은반시(報恩反始)’와 비슷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농민의 정성이 이 말에 상징되고 있다고 한다. 그 순간 놀랍게도 일본의 미우라 바이엔의 사상과 한국의 보은군의 사상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접속되었다. 그리고 둘 다 케케묵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타자를 배려하기 전에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만 온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도록 강요당하는 경제적 신자유주의 풍조가 보호하는 현 상황에서는 오히려 신선하고 시대의 최전선을 가고 있다고까지 보였다.  


-발제 2

두 번째 발제는 문화인류학이 전문이신 강신표 선생이다. 강 선생의 저서를 일본에서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레비스트로스를 한국에 초빙한 분이라고는 들은 바 있었다. 그는 현재 83세이며 해방 후 한국의 70년간의 경제성장을 목도한 한 사람으로서 먼저 반은 자성(自省)의 뜻으로 한국사회의 걸음을 되돌아보았다.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오로지 힘차게 달려온 결과, 알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풍요롭게 되었지만 삶의 의미 자체에게 고뇌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성폭력, 존속살해, 유치원의 부정문제, 노인복지병원의 부족……은 이루 다 셀 수 없다.(이것들은 정신적인 향상을 일시 외면한 결과라고 하는 취지였다고 기억한다)

강신표 선생은 이어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한 사람이 없어지면 전 세계가 없어진다. 이것은 주관적인 진리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타자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기실은 각자가 자가에게 통하는 것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기 실존에서 자기로 생각하면 자가가 죽은 후에도 이 세계가 계속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고 자기가 죽으면 전 세계가 없어진다. 이와 동시에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기에게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외는 말할 수 없고, 타자와 엄밀한 의미에서 자타 융합할 수 없다고 하는 의미라고 이해했다. 무언가 후설의 현상학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과연 앞에서 오가와 선생이 말한 노년의 경지 ‘보은반시’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타자와 연결되는 사상이라고 한다면, 강 선생의 노년의 경지는 거의 정반대이었다. 즉 그는 노년기의 고독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유일무이인 자기세계를 완수한다. 거기에는 고독과 마주 대하는 강함이 있다. 또 그것은 강 선생이라는 한 문화인류학자가 반세기 이상 구도적(求道的)으로 학문과 마주 대해온 삶과 겹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노년기의 모습도 하나의 진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의견에 대해 대략 두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다. 먼저 일본 측의 쓰치다 다카시(槌田劭) 선생이 시대가 너무 크게 바뀌면서 노인과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세대간 단절의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것에 대해서 강 선생은 그가 연구한 아시아계 하와이 이민의 토착화 문제를 바탕으로 깔고 예를 들면 제1세대는 모국의 기억을 가지지만 제2세대에서 문화의 단절이 일어난다. 그러나 제3세대는 자기 뿌리를 자발적· 적극적으로 배우는 경향이 있고 그들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옛것을 찾는 반동을 통해 제3세대는 제1세대와 연결된다고 하는 하나의 회답을 냈다.(그렇다면 자기가 죽으면 주관적인 세계가 끝났다고 해도 역시 타자와의 회로가 열려서 남을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을까라고 개인적으로는 느꼈다.)

또 원혜영 선생이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원 선생은 강 선생이 인용한 한국 지하철에 붙여진 ‘노인의 지혜’라는 시에게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예컨대 그 시 안에 “돈은 죽으면 저승에 가져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은 죽을 때까지 돈을 꼭 잡고 있어야 된다. 돈이 있으니까 소중히 여겨준다.”라는 대목이 있다. 거기에는 지금의 노년세대는 그 위 세대부터 지혜와 재산을 마음껏 받아놓고, 아랫세대에는 자기들이 젊은 세대에 아낌없이 준다는 것은 명목뿐이라고 하는 이기적인 속내가 엿보이고, 바로 그것 때문에 젊은 세대가 빈곤화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강 선생 이외에도 다양한 분이 다방면에서 논의에 참여했지만 결정적인 답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대와 세대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요즘의 본질적인 난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원 선생의 발언은 뛰어난 것이었다.

  
-발제 3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두고 오후 세션이 시작되었다. 약간 지친 나는 제공된 고려인삼 젤리와 사탕을 먹으면서 논의에 참가했다. 엄청 맛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본 적도 없는 알로에 음료수도 마셨다. 그런데 세 번째는 우리가 애칭으로 ‘씃치’라고 부르고 있는 쓰치다 다카시(槌田劭) 선생. 앞의 두 분과 마찬가지로 노년기에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노년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학자라기보다 활동가이고, 활동가라기보다는 사상가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는 여든 살을 넘어서도 여전히 남을 위하여 세상의 부정의와 싸운다. 그러나 제발 근육질의 인물상을 이미지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는 유화 그 자체이며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지극히 소식(小食)한다. 자택에서 된장을 만들고 재활용을 추진시키는 활동을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다. 고지(古紙) 회수라는, 말하자면 사회적 저변의 일을 하면서 누구나 풍요로운 마음으로 함께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목표로 여러 가지 강연·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언행은 매우 겸손스럽다. 대지에 뿌리내리고 사는 어쩐지 러시아의 농촌에서 사는 문학자나 사상가와 같은 풍채를 지닌다.

교토대학(京都大學)이라는 노벨상 수상자를 일본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에서 과학자로서 살아왔다.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 한 원전에 관한 주민소송에 원고 주민 측으로 과학자라는 입장에서 증인을 맡았을 때에 과학기술의 범죄성을 인식하고, 그 다음해에 미련 없이 교토대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우익도 좌익도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무익(無翼)’ 즉 양쪽 날개를 없애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이렇게 씃치는 땅위에 살고 있다. 유기농업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일본어의 쓰치[흙]과 ‘씃치’는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 애칭이 되었다고 나는 남몰래 생각하고 있다)

그는 말했다. 옛날에는 “늙은이의 말은 잘 들어라. 헛되게 밥을 먹지 않았다.”라는 노인의 말투에 설득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사람이 일하는 때는 ‘일· 기능· 지혜’가 숙련으로 축적되고, 선대부터 차세대로 계승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 기술· 지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시스템의 톱니바퀴 같은 성질의 것으로 낡아지면 당장 교체되고 만다.(종래는 뒤에서 오는 젊은이에 의해. 하지만 앞으로는 AI에 의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늙음과 성숙의 가치가 상실되고 젊으면 젊을수록 좋다는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문제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만약에 씃치와 같은 의문을 품었다고 해도 아무도 그와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다. 씃치를 대신할 이는 없다. 오랜 세월을 거쳐서 누구와도 교체되지 않는 씃치가 된 것이다. 이런 노년기를 사는 씃치를 “장하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발제 4

우리가 숙박한 보은의 숲체험 휴양마을은 독립된 코티지가 몇 채나 있고 위쪽에는 양반의 저택을 본뜬 숙소. 아래쪽에는 농민의 집을 본뜬 숙소가 있고 영화의 세트장 같아서 흥미로웠다. 매일 아침 7시 50분에 노란 호랑이 모양의 전동퍼스가 각 코티지를 돌면서 한사람씩 실어 갔다. 그 전동차 안에서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내 번째 발표자인 김용환(金容煥) 선생이었다. 그는 연구 때문에 워싱턴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이번의 참석자는 모두 한국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라고 생각했지만 그도 그런 것 같다. 일본의 출석자들도 모두 엘리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10대 때 기독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고, 20대에 오디션으로 스카우트를 받아서 프로 가수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미 망한 레코드회사의 신인으로 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CD를 내고 여러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스페인까지도 라이브를 하러 갔다. 영국의 케이트 부시를 연상케 하는 엑센트릭(eccentric)함이라고 평가받고, 테크노와 클래식이 뒤섞인 음악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음악 활동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장사도 잘 안 되었으며, 30대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원에서 연구를 시작하고 박사 학위를 딴 것도 취직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면서 책을 지금까지 8권 썼고, 경쟁 속에서 필사적으로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비교적 좌절이 있는 인생이었기 때문에 김용환 선생과 같은 정통파의 엘리트와 만나면 바로 마음속으로부터 경의를 느낀다.

그의 발표는 충청도가 낳은 설리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사상에서 노년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고 시도한 갓이었다. 갑자기 한국 사극 ‘동이’의 세계가 나의 뇌리에 떠올랐다. 과연 송시열은 평생 동안 올곧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때 통역을 맡았던 야규 마코토(柳生眞) 선생이 송시열의 사람됨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고 설명해서 납득이 갔다.

그런데 그 다음 전개가 더 재미있었다. 그것은 김태창 선생의 질문이 계기가 되었다. 송시열은 만사에 ‘강직함(直)’을 중히 여겼다. 정치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때로는 특히 노년기에는 ‘완곡함(曲)’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이었다. 송시열은 올곧기만 하고 슬기롭게 굽힐 줄을 몰랐기 때문에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첨예한 대립을 가져왔으며, 급기야 귀양 가고 사약(賜藥)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다. 그는 옳게 살다가 옳게 죽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과연 그럴까? 다시 한 번 생각하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11월 16일(둘째 날)

-발제 5

아침 7시 50분에 어김없이 노란 호랑이 모양의 버스가 찾아왔다. 나는 불안을 하나 안은 채 마지못해 그것을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 불안에 대해서는 뒤에 말하고자 한다. 둘째 날 첫 발제는 오오하시 켄지(大橋健二) 선생이다. 도입 부분에서 심은경 주연의 한국영화 ‘수상한 그녀’에 언급했다. 한일에서 공통된 아주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그러나 회의장의 반응이 별로 없었던 것을 보니까 본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보은에 오기 전에 무언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미리 보고 왔다. 내용은 노인이 젊어지는 판타지로, 결코 젊은이가 늙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즉 젊음을 긍정한 것으로 이해되고, 발상의 새로움이라는 점에서는 이 노년철학 국제회의의 힌트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심은경의 연기에는 통곡했지만).

오오하시 선생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근대사회의 모순이나 폐해로 노인문제가 있다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그 돌파구를 전근대 일본의 사상가 구마자와 반잔(熊澤蕃山)에서 찾는다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일본 샐러리맨 남성의 고독한 실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들의 고독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정년퇴임 후의 일본인 남성이 들면 “오오하시 선생! 잘 대변해 주셨습니다!”라고 감격해서 달려가 껴안고 그를 헹가래 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친 우치다테 마키코(內館牧子)의 소설 <끝난 사람>을 들어서 정년퇴임 후의 남성 샐러리맨이 갈 곳이 없는 ‘사회적 사망자’라고 정의했다. 일본의 샐러리맨은 회사라는 세로사회에 소속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신입사원부터 사장까지 서열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수평의 관계성을 가지지 않는다. 즉 회사밖에 가로의 관계(커뮤니티)가 없다. 그래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면 금방 비참하게 된다.

그의 시각은 지당하지만 지금 일본 여성고령자의 경우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성립(1985년 -옮긴이) 이전에 사회에 나간 연대이므로 결혼하거나 출산하게 되면 곧 퇴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분명 그녀들은 젊어서 ‘사회적 사망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은 나름대로 지역 커뮤니티나 PTA활동을 통해 수평적 관계성을 구축해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남성 샐러리맨이 퇴직해서 고독해졌다고 불편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느끼는 것이 않을까? 결국 퇴직한 뒤는 이미 늦었다. 오히려 누구나 젊은 시절부터 수직적 관계와 동시에 수평적 관계도 구축해야 한다. 세로와 가로의 삶을 혼재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 나는 그런 발언을 했다.

 
-발제 6

원혜영 선생은 불교의 시각에서 늙음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붓다는 여든 살 나이로 노고(老苦)를 무릅쓰고 여행으로 떠났다고 한다. 인간 붓다 최 만년의 여행이다. 왜 붓다는 80세라는 나이로 여행해야만 했던 것일까? 나는 의문스러웠다. 원혜영 선생은 이 여행이 출가하고 나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여행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기 고향이 있는 방향으로 걸을 때마다 자기 삶을 응축시키고 순화시키는 여행이었던 것이라고 뒤에서 생각했다. 열반하기 전에 인간 붓다는 늙음과 병과 같은 몸의 변화에 망설이면서도 풍경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사로잡혔다고 한다. 원혜영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약 2500년 전 인도의 널찍한 푸른 하늘 아래를 붓다가 고요히 걷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김태창 선생이 원혜영 선생의 발표를 이끌어서 늙음의 미학이라는 과거의 회의에서도 논의된 중요한 주제를 재확인시켰다. 즉 붓다조차도 죽음 앞에서 흔들렸다. 결국 늙음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사람은 동요한다. 흔들린다. 올곧은 삶을 살다가도 막상 스스로의 죽음 앞에서 마음의 동요를 느끼는 것이 사람 삶의 솔직한 모습이 아닐까? 올곧은 도덕적 인간도 좋지만 연약한 인간적 진실의 미학도 있는 것이 아닐까?

과학적 사고는 빛과 그림자를 나눈다. 그러나 철학(노년철학)은 빛과 그림자의 상호연동에 주목하고, 거기서 한 차원 높고 깊은 곳을 탐색한다. 김태창 선생은 젊은 시절의 냉철한 분별 사고가 노년기에는 온화한 연동사고로 성숙된다는 자기 체험을 나누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의 태두 에릭 에릭슨의 딸과 하바드대학에서 열렸던 교토포럼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딸은 김태창 선생에게 “우리 아버지를 존경합니까?”라고 물었다. 김태창 선생은 고명한 학자의 친족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의미도 있어 “존경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딸은 나는 우리 아버지를 절대로 존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중도의 신체장애인 아이가 있었는데(그녀에게는 누나 혹은 형) 그 아이를 시설에게 맡기고 그 존재마저도 평생 동안 숨기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바깥에 내세운 훌륭한 사상과, 자기 자식에게 한 짓 사이에 있는 기만과 위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 시오자와 미도리(鹽澤みどり)라는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의 딸이 중도의 장애아였다. 시설에 맡기자고 남편은 말했지만 그녀는 일본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산속에 들어갔다. 남편도 이에 따랐다. 그리고 딸을 위해 집을 짓고 깊은 산을 개간하고 전답을 만들어서 40년이 지난 지금은 풍요로운 수확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땅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삶에 공명하여 찾아오게 되었다. 그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이었을 것이다.

시오자와씨의 경우는 장애가 있는 딸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에서도 노인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비생산적인 약자라 하더라도. 빛과 그림자를 차별하지 않고, 그림자 부분까지도 함께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노년철학이 수립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렇게 김태창 선생은 말했다. 시오자와씨의 장애를 가진 따님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처음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 때, 김태창 선생은 할 말을 잃었다. 오직 눈물만이 나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눈을 감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한 여성이 병든 딸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키워냄으로써 이루어낸 기적이 국경을 넘어 감동의 파장을 일으킨 사연이 깊은 뜻을 곰곰이 새겨보았다.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그 딸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의 모든 것을 바쳐서 살려온 그녀의 삶에서 모든 것을 감싸서 살리는 따뜻한 여성적 영성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살리는, 그래서 육체적으로 쇠퇴하고 정신적으로 침체한 노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젊은 세대와 중년세대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활로개래(活老開來)’의 노년철학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제 7

2일째 오후의 선두타자는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사 사장의 프레젠테이션이었는데, 그 때의 나는 무척 피곤해서 그의 이야기를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전날에 김태창 선생부터 의뢰를 받아서 야마모토 씨의 발제 전에 갑자기 노래를 부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밴드도 피아노도 없이 노래를 불러야 된다. 게다가 부탁받은 노래가 ‘넬라 판타지아’라는 일찍이 부른 적이 없는 곡이었다. 더 한 곡은 일본의 노래를 불러달라는 주문이었으므로 오키나와의 전통 민요를 택했다. 일본에서도 오키나와는 특히 장수를 자랑하는 땅이다. 그 섬의 ‘틴사구누 하나(봉선화의 꽃)’라는 노래는 부모의 가르침을 어린이가 생각나는 내용이며 노년철학의 주제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전날 밤중에 유튜브를 반복해서 보면서 이탈리아어의 ‘넬라 판타지아’를 가능한 한 외웠다. 나의 음역은 아주 넓기 때문에 남성의 키도 여성의 키도 낼 수 있지만 어쨌든 벼락치기 공부해야 되었다. 다음 아침, 노란 호랑이 버스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조성환 선생이 “노래 연습은 했습니까? 어젯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요.”라고 유창한 일본어로 말해왔다. 그렇다. 그와 야규 선생의 숙소는 나의 숙소 옆방이었으므로 그런 농담이 나올 법도 한 한 것이다. 오늘 아침 내가 불안했던 이유는 실은 그런 큰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iPad의 스피커에서 유튜브에서 찾은 ‘넬라 판타지아’의 반주를 야규 선생이 마이크로 잘 증폭해 주었으므로 그것에 맞추어 육성으로 불렀다. 프로의 가수로서는 별로였던 것이 틀림없다. 반응은 애매했다. 두 번째 노래인 ‘틴사구누 하나’는 화이트보드에 가사를 쓰고 회의장 전원으로 함께 부르게 했다. 가사 카드를 인쇄해서 나누어 주든가 하면 모두 다 오키나와말의 의미를 좀 더 알아서 노래할 수 있었을 터였다.(오키나와가 옛 사투리는 일본어 화자話者에게도 상당히 어렵다). 이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이었다. 후회가 있어도 끙끙 앓지 않기로 하자.

노래가 끝나자 먼저 유 선생이 “잘 해 주셨습니다.”라고 칭찬해주었다. 또 김태창 선생이 아주 맛있는 초콜릿을 주었다. 두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한국의 교양인들은 속이 깊다고 느꼈다. 일본에서 나 같은 인간은 규격 외로 아마 냉소를 당할 뿐이다. 그러나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교양에는 학문뿐만 아니라 음악도 들어 있었다는 것을. 내가 막연하게 느꼈던 것, 그것은 연구냐 음악이냐라는 양자선택을 하지 않고, 모두 다 하고 언젠가 큰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기 방향성이 운명지어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자기가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보은에 와서 다행이었다.


-발제 8  

조추용 선생은 복지 관련의 전문가로서 한국 고령자의 현상을 분석했다. 특히 치매증의 이야기가 인상에 남았다. 75만 명의 치매환자가 있다고 하는 지금의 한국. 잘 알다시피 치매증은 완전한 치료법이 없는 진행성의 질환이다. 한국에서 한 가정에 한 명씩 치매 노인이 있으면 그 가족은 붕괴될 경우가 대부분이고, 거꾸로 결속력이 발휘될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부언하면 일본의 경우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2012년 시점의 통계이지만, 전국에 있는 치매 환자가 462만 명이나 된다.

그의 발표를 들으면서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2014년의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Alive Inside’가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치매 환자가 500만 명 이상 있다고 하여 일본과 마찬가지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노인들은 기억도 잃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을 들으면(옛날에 좋아했던 곡 등) 번개를 맞듯 잃어버린 자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눈물을 떨어뜨린다. 그 기적의 순간을 몇 번 포착한 영화다. 1000달러의 약보다 한 곡의 음악. “음악이야말로 치매증에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설이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 설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치매증의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얼마나 음악의 힘은 대단한 것인가!

이 영화 이후 실제로 현장에서 음악에 의한 치매증 대책의 시도가 얼마나 확산되어 있는지 불분명하다. 제약회사의 힘이 큰 것도 이유일지도 모르나 문제는 좀 더 단순하고 무슨 일이든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조 선생도 “말하는 것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 형제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즉각 그물을 버리고 따라갔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바뀌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원조 빨리빨리 정신의 소유자였다. 한국은 준비하면 늦지 않다. 노년철학회의의 논의가 널리 발신되고 순식간에 한국사회에 환원되기를 기원한다.


●11월 17일(셋째 날)

-발제 9  

마지막 날이다. 오늘 아침도 노란 호랑이의 버스가 찾아오는 줄로 알았지만, 오늘 아침은 평창올림픽의 마스코트 백호 버스였다. 몇 사람이 백호 버스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회의실에서는 엄한 표정이던 사람들이 백호에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따뜻한 기분이 되었다. 백호도 노란 호랑이도 전기자동차다. 왜냐하면 배기가스 규제가 있기 때문에 허가를 받은 자동차 이외는 산 속으로 못 들어오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과연 공기는 맑고 머나먼 산들까지 잘 보였다. 회의장으로 가자 첫날 만나 뵌 보은군수가 갓 만든 떡을 우리들에게 손수 나누어 주었다. 아직 따뜻하여 꿀꺽 먹어보면 이 땅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첫 발제는 생명사(生命史)와 지질환경학(地質環境學)에 정통한 지질학자인 하라다 켄이치(原田憲一) 선생이다. 발표 후에 한국 측 참가자부터 감명을 받았다는 코멘트도 나왔다. 부분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의 발표에는 난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연계의 생물 전반의 늙음과 죽음과, 인간의 죽음과 늙음의 의미를 비교했다. 자연계는 약육강식이라고 말해지고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물은 동족을 늘린 후에 죽을 때에 반드시 다른 생물(이족異族)의 먹이가 되어서 죽는다. 동족만을 늘리면 자손들의 먹이가 부족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죽어서 스스로 다른 종족의 먹이가 됨으로써 다른 종족을 늘려서 생태계를 안정시킨다고 한다.

한편 인간은 죽음으로써 다른 종족을 늘리지는 않는다.(예외적으로 조장鳥葬, 수장水葬은 다른 종족의 번영에 기여한다) 그러나 자기 죽음에 의해 동족(인류)에게 삶의 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손은 뭔가를 배우고 먹을거리를 얻을 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실은 동족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을 내보낸 실감에 근거한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그가 “인간은 생명의 역사상 처음으로 동족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생물이 되었다.” 라고 한 말이다. 즉 “다른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죽음”이라는 생각을 제시한 점이다. 그것은 지극히 위태로운 생각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아마 보도되었을 테지만 2016년에 일본에서 사가미하라(相模原) 장애인시설 살상사건이 일어났다. 입소자 19명이 찔려죽고 입소자·직원 총 26명에 중경상을 입힌 대량 학살이었다. 그 범인은 당시 26세였던 전 직원의 남성으로 그는 중도 장애인과 같은 의사소통할 수 없는 사람은 안락사(安樂死)시켜야 한다고 세계의 행복과 평화를 진지하게 바라면서 살인을 범했다고 한다. 만약 자기가 그들을 죽이면 그들의 가족도 편해지고 자기를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도 자기 행위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일본의 비교적 새로운 논의에 ‘여사론(與死論)’이 있다. 치매 등으로 의사소통이 못하게 된 사람들을 죽게 하는(죽음을 주는) 것으로 죽음이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전문가들에게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들에 공통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죽는 것으로 사회의 도움이 되게 하자는 발상으로 일종의 우생사상이다. 하라다 선생은 문화와 문명의 전수라는 문맥으로 인간은 “동족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생물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자기 삶을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그를 옹호하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족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생물사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인류사에서는 아주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명기해 두고 싶다.


-발제 10

김자옥 선생은 먼저 자기를 사랑해 준 세 명의 노인들, 특히 할머니의 추억담으로부터 시작했다. 노년철학을 개인사부터 시작하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전개시키는 시도이었다. 지금까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발표 구성에 매료되었다. 그것에 대해 김태창 선생은 근거에 기초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번 주제의 경우 개인으로부터 사회로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렇다.

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그녀가 할머니부터 받은 무상의 사랑,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사회적 정의라고 한 말이다. 예를 들면 눈앞에 모르는 노인이 있다고 하자. 그 노인을 통해 그녀가 할머니로부터 받은 무상의 사랑이 되살아난다. 그녀가 그 사랑을 눈앞에 있는 모르는 노인에게 베풀어준다. 그 결과 사랑은 널러 퍼져가게 된다. 즉 할머니가 안 계시는 지금도 그녀의 사랑, 혹은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 있던 사랑이 끊임없이 확대되어 간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시점이다. 그런데 그녀와 할머니의 관계는 강신표 선생이 아시아계 하와이 이민의 제1세대와 제3세대의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같은 주제가 여기서 다시 부상했다.

질의응답은 대단히 고조되었다. 그 중에서도 보은군수가 열띠게 말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마도 정치적인 이야기로 통역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듣고 싶어서 통역자의 야규 선생에게 달려가서 이야기의 내용을 살짝 전해 들었다. 요약을 듣고 나는 감동했다. 세대 사이와 계급 차이, 빈곤함과 불안, 가진 자가 안 가진 자를 속이는 세상. 겨울에는 고립되는 500명의 보은 산중의 민중을 위해 몇 번이나 나라에 진정(陳情)하러 갔다가 무시당하는 나날, 그 한스러움, 민중을 생각하면서도 힘이 모자라는 군수의 분노, 그의 진심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보게 된 것만으로도 여기에 온 보람이 있었다. 덧붙이자면, 다음날 일본 팀이 귀국할 때 그는 이른 아침부터 식당에서 우리들을 기다려 주셨고, 손수 한 명씩 된장국을 퍼 주셨다. 이리하여 나는 보은과 보은군수의 팬이 되었다.


-발제 11

나의 발표는 동양일보 11월 9일자에 게재된 내용과 거의 똑같으므로 홈페이지 등으로 과거의 신문을 검색해서 읽어 주면 한다. 다만 새로운 내용으로 강신표, 김자옥 두 분 선생의 발표와도 관련되는데, 노인과 어린이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양자의 관계에는 뭔가 노년철학의 핵심이 있지 않을까라고 문제제기했다. 덧붙이자면 ‘이웃집 도토로’의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은 ‘벼랑 위의 포효’에서 노인복지시설과 보육원이 인접한 시설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나의 발표 때 통역은 이선영 선생이 맡아 주었다. 상당히 정성스럽게 번역해 주셨다고 추측한다. 삼가 감사를 표한다.


-발제 12  

마지막의 황진수 선생은 KBS에 나와서 노년연금에 대해 제언할 정도로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이다. 데이터를 중시한 그 발제 내용에서 한국의 연금의 실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또 연금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도 (비스마르크가 창시했다는 것은 몰랐다) 공부했다. 그런데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효자봉양법(孝子奉養法), 효자송금법(孝子送金法), 불효자식방지법(不孝子息防止法)이라는 법제(法制)가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모두 처음 들은 이야기로 참으로 놀랐다. 그것들은 법이나 국가가 어디까지 부모와 자식이나 가족에게 관여할 수 있는가라는 국가와 개인의 문제도 포함되고 있지만, 다 늙은 부모를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치매증 부모의 재산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성년후견인(成年後見人) 제도가 있다. 치매증 부모의 재산 관리를 자식에게 허가하는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자식이 자신이 상속할 재산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자식을 지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황 선생의 발표 뒤에 최종적으로 김태창 선생이 총괄하였다. 먼저 다음 동양포럼으로 이어지는 주제를 제시하셨다. 다음을 즐겁게 기다려주시기 바란다. 이어서 우리 언어의 정의가 애매하다는 점을 비판했다. 과연 지당한 지적으로 솔직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다음을 위한 조정도 겸해서 한 명씩 노년의 정의를 말하도록 하였다. 참가자들은 그 자리에서, 게다가 한마디로 정리해야 되었다. 그때 발표자뿐만 아니라 사흘 동안 회의의 통역을 맡아준 이선영, 조성환, 야규 마코토 세 분 선생도 한마디로 요약적으로 말했다. 그들은 통역자로서 대단한 역량이라고 느꼈지만 그들 자신의 연구도 들어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느꼈다.

이젠 밤이 되었다. 눈에 익은 노란 호랑이 버스가 회의장 앞에 마중 나오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타고 회의실을 올려보면 컴컴한 보은 산속에 두둥실 우주선과 같이 회의실이 환하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나는 우연적으로 발표자로 뽑혔다. 대선배인 아베 주리(阿部珠理) 선생(일본에서의 아메리카원주민 연구의 제1인자)이 못 오게 되어 대신 내가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인연을 소중히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나를 보냈다. 다시 회의실을 돌아다보니 창문 안에서 몇 명 스텝들이 계속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선배님의 말을 상기했다. 스텝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면서 노란 호랑이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식당에서는 유성종 포럼운영위원장 주최의 만찬회가 열렸다. 그는 88세라는 최고령이면서도 우리들에게 좌석을 돌면서 음료를 따라주었다. 영접에서 전송에까지 5일 동안의 일정에 유 선생은 찰찰히도 우리들을 살펴주었다. 그는 식후에 식혜를 마시면 소화에 좋다고 권하면서 갖다 주기도 하였다. 곧 조성환 선생이 그것을 대신하려 하자 손으로 말리면서 앉아서 말씀을 나누라고 했다. 김태창 선생이라는 희대의 석학과 유성종 선생이라는 고결한 인격자와 만나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보은의 마지막 밤, 두 분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 11월 열린 3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지난 11월 열린 3회 노년철학 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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