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정 청주시서원구세무과 주무관

한연정 청주시서원구세무과 주무관

(동양일보) 눈 내린 아침, 차창 밖으로 공원의 나무들이 흰옷을 곱게 차려입은 채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내 안의 감성을 두드리는 건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으며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는 나무들이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

햇살 좋은 봄날 나뭇가지 사이에서 살포시 나온 맑은 연둣빛 어린 싹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치 신생아의 손과 발처럼 야들야들하다. 여름철 무성하고 짙푸른 녹색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는 계곡물 못지않게 시원함을 주기도 한다.

진초록 잎들이 가을날에 붉게 물들어가는 건 마술처럼 반전을 이루며 하늘의 석양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 불꽃놀이처럼 짧고 화려했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다다르면 수분이 빠져나간 나뭇잎 맥들이 실핏줄처럼 드러나고 퇴색된다. 마침내 차디찬 바람 앞에 미련 없이 고개를 떨군다. 형형색색 찬란했던 계절과 이별 후 맞이한 외롭고 고독한 계절에도 순백의 눈꽃을 피우며 겨울 햇살에 화답하는 나무들!

옛 성인군자는 독야청청한 소나무와 곧은 절개의 대나무를 칭송했지만, 이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칭송받을 만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 가까이서 늘 그 자리에 말없이 서있는 나무들을 보라. 매연 가득한 도심의 가로수부터 삭막한 아파트와 빌딩 사이에 자리한 공원의 나무들과 멀리 숲속의 나무들까지 미세먼지가 갈수록 짙어지는 요즘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난 가을 15년 전에 살던 동네를 지나다가 나무들로 우거진 아파트 단지와 도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당시엔 어렸던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게 자라서 아름드리 아치를 이루며 가로수 터널을 이루고, 저마다 단풍을 뽐내며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문득 예전에 어떤 탈북민이 한국에 처음 와서 놀란 두 가지를 말했던 게 생각난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자동차를 보고 놀랐다는 건 이미 예상한 바지만, 산과 들 어디에나 나무들이 무성한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인데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 무슨 놀랄 일인가 그때는 의아스러웠다.

이제 보니 산업화시기에 공장과 자동차만 늘어났던 게 아니었다. 지금은 낯선 단어이지만 민둥산에 심었던 나무들이 소리 없이 자라나 지금껏 우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또한 도심 속 가로수는 사시사철 탁한 매연 속에서도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초봄 어린 새싹부터 늦가을 마른 낙엽까지 나뭇잎들을 보고 있자면 삶 속에서 소망과 비움의 조율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감사하게도 늘 가까운 곳에 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살 뿐이다. 미세먼지 가득한 요즘 나무들도 예전보다 힘겨운 호흡을 하며 우리에게 산소를 뿜어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무들이 아닌가! 아파트 실내 화분에서 1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식구들과 호흡을 나눠 온 반려 식물이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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