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아기를 재우려고 누운 어머니가 아기보다 먼저 잠이 들었을 때, 아기는 제 엄마 품을 벗어나 엉금엉금 가지 심어놓은 밭까지 기어가서 매달린 가지를 따고 있었단다. 그렇도록 애 엄마는 물론 아무도 이를 몰랐다는 얘기인데, 하여 이에서, ‘자던 아이 가지 따러 갔다.’ 라는 말이 나왔다. 이런 일은 옛날 시골에선 흔히 있던 일이다. 해서 오래된 일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은 저절로 흐지부지해 진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맹물에 조약돌 삶은 맛처럼 아무 재미도 없이 시금털털한 이 맹문이의 일은 오늘날 같은 대명천지에도 뇌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세상만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 해에 사내애가 넷이나 태어났으니 동네경사다. “셋 날 때꺼정두 참 희한한 일이라구 좋은 일이라구 동네잔치라두 벌이자구 했는데 이번에두 사내라니, 이거 면에서 면장 이름으루 축하장이래두 보내야 하는 거 아녀?” “왜, 군수 축하장은 마댜!” “그러다 도지사까지 들먹이겄네. 여하튼 올해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이장 안 그려?”

이랬는데 제일 끝으로 태어난 놈이 문제다. 자라가면서 다른 세 애들과는 다르다. 제 집에서는 다섯 번째로 얻은 첫아들이라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위하는 아이 눈이 먼다고 했던가, 무슨 일에나 너무 많이 기대를 걸면 도리어 안 되는 것인지 나이가 열 살이 넘고 장성해 가는데도 사물에 어두워 아는 것이 없고 똑똑하지를 못하다. “그 자식 그놈, 외양은 멀쩡하데 좀 모자라는 놈 같어.” “그려, 뭐든지 손에 쥐어주어야 되는 놈여.” “맞어, 제 집에서도 무슨 일 좀 시킬려면 일의 대강의 방법을 일러주고 그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해 줘야 한 대.” “그러니께 통 맹문을 모르는 놈여” “그려, 그려, 일의 옳고 그름이나 경위를 모르는 놈이제.” “그러니께 한마디로 ‘맹문이’ 아닌가!” “그려, 근데 그 맹문이 말여, 그렇게 합당하지 않은 말을 되는 대로 지껄여도 남에게는 절대로 해되는 일은 아니잖여.” “사람이야 고진이지. 고진이 남 괴롭히는 거 봤는가.” “여하튼간에 남을 헐뜯어 이간 붙이는 짓은 몰라서도 못햐.” “그러니께 그놈을 없인 여겨 해코지 하는 사람은 없잖여. 안됐어 하며 돌보는 사람은 있어도.”

그런 그 맹문이가, 인공난리 때 보도연맹에 연루됐다고 읍내 지서에 붙들려 있게 됐다. 동네사람들이 거의 다 도장을 찍었다고 얼른 찍으라는 바람에 멋도 모르고 도장을 찍은 게 화근이었다. 그런데 읍내사람 동네사람들로 꽉 차 있는 지서유치장에 대고 맹문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들을 감시하는 순경이었다. “너 가서 담배 한 갑 사가지고 와!” 그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맹문이에게 답배심부름을 시키는 거였다. 그 순경은 동네사람은 아니지만 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뭘 모르는 맹문인 시키는 대로 지서 문을 나섰다. 다른 이들이 그러는 그를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 살 돈을 안 주었으니 그는 담배 살 돈을 달래려고 또 담배 파는 데를 물으려고 아버지가 있는 동네를 부리나케 들어서는데 날망집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니 우쩐 일여 니가?” 할아버진 의아하다는 듯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아침 일찍 지서로 끌려가던 놈 아닌가. “읍내 순경이 담배를 사오라고 했는데 담배 값도 없고 파는 데를 알아야지유. 빨리 돈 좀 줘유 그리구 어디유 파는 데가?” 할아버진 그 말을 듣자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내 금방 읍내 담뱃가게 갔다 왔는디 웂댜. 좀 이따가 배급차가 온댜. 그동안 내 일 좀 도와줘 그래야 돈을 주지!” 할아버진 그를 집으로 끌고 가더니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 거였다. 한참을 거들던 그는 “인제 담배 왔을 것 같은 디 가봐야겄어유.” 하자. 할아버진, “아직 안 왔을껴. 쪼끔만 더 도와줘.” 하더니 다시 한참 만에, “고맙다 자 이건 담뱃값여. 그리구 인제 왔을라 가봐!” 그리고는 할아버진, 급히 뛰어가는 그의 뒤에 대고, “지서에 사람들 없으믄 얼른 집으루 와!” 하고 외치는 거였다.

그는 담배 한 갑을 사서 손에 움켜쥐고 지서로 내달았다, 그런데 어, 그 순경도 그 많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어, 너 왜 왔어 얼른 가 이놈아!” 혼자 있던 다른 순경이 호통 치는 바람에 그는 머쓱히 돌아섰다.

이래서 맹문인 장가들어 80이 넘도록 살았다. 같은 해에 태어났던 그 멀쩡한 친구들의 후일담은 하나도 전해오는 게 없으나 이 맹문이의 이야기는 그가 간지 꽤 오래된 지금까지도 인근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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