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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한국인의 정(情)
동양칼럼/ 한국인의 정(情)
  • 동양일보
  • 승인 2018.12.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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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동양일보)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은 ‘정(情)’이 아닐까 한다. 한국 사람은 ‘정에 울고 정에 죽는다’고까지 하지 않나. 친밀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감정을 일컫는 정은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모정’,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부정’, 남녀 사이에 ‘애정’, 친구 사이에 ‘우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폭 넓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과 정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타인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측면에서 사랑과 정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정’을 어머니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정은 사랑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플러스알파가 있는 것 같다.



‘그 놈의 정 때문에’라는 말에서 정(情)의 진정한 의미를 엿 볼 수 있다. 이성은 갈라서라고 하는데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하지 않나. 정은 좋은 감정이 쌓여 생기는 ‘고운 정’도 있지만, 나쁜 감정에서 생기는 ‘미운 정’도 있다. 사람들이 태어나고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교감상태에서 정은 싹이 튼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오랜 세월 동안 부대끼는 관계 속에서 생긴 그냥 마음에서 뭔가 해주고 싶은 감정, 그것이 바로 정이다.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은 할 수 있으나, 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치 때문이다.



정(情)은 그 대상은 동물이나 사물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같이 살던 개와 떨어져야 할 때 느끼는 서운함이나, 책장과 장롱 속에 쌓인 오래된 책들과 옷가지를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 놈의 정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고향산천이 그렇게 그리운 것도 정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동물이나 생명 없는 사물에게까지 정이 가는 것을 보면 정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주는 감정이다. ‘정을 쌓다’, ‘정을 주다’, ‘정을 나누다’는 자연스럽지만, ‘정을 받다’라는 표현이 아무래도 어색한 것은 정의 이러한 주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정(情)’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오랫동안 쌓은 감정적 공유의식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오랜만에 보면 반갑고, 잘못을 이해해 주고, 흉허물을 감싸주는 마음들 말이다. 그래서 정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고 개인에게 소속감을 주어 심리적 안정을 갖게 해준다. 일정 부분 사회 안전보장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넓게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국민 모두가 함께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기쁨과 안타까움을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촛불 시위 때 그 많은 사람이 거리시위를 하면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 한국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렇듯 정(情)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하지만 간혹 곤혹스럽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은 기본적으로 동류에 대한 호의적 배려를 그 실체로 한다.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 있으며 식구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라는 공동체가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소수 폐쇄집단 내에서 운영될 때 그 폐해가 켰다. ‘우리’이기에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고, ‘우리’이기에 먼저 챙겨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요즘 정(情)은 청산되어야 할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는다. 정을 몰아내고, 현대 사회에서 미덕으로 생각하는 합리성, 공정성, 투명성,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만이 판을 친다. 정은 버려야 할 대상, 저급 문화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동시에 감정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정만으로 살 수도 없지만 이성만으로 살 수도 없다. 유구한 세월 쌓아 온 한국인의 특유의 정(情) 문화는 우리의 심리적 자산이다.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양자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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