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 지난 7월 초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청주 중앙공원에 세웠던 ‘동시비’를 기억하시지요?”

순간 스크린을 훑듯 기억이 과거 저편으로 흘러갔다.

1983년의 일이니 그새 35년 전이다. 당시 청주JC 회장을 맡고 있던 분으로부터 한 제안을 받았다.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동시비를 세우려 하는데, 동시를 써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주는 글이라는 생각에 망설이지 않고 선뜻 대답을 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짧은 글을 써서 건넸다.

그 글은 한 석재회사의 원석 기증과 재능기부를 한 서예가의 글씨와 대학교수의 조각으로 멋진 동시비로 태어났다. 비를 세우는데 든 1천여만 원이 넘는 경비는 청주JC가 부담했다. 그러니까 그 동시비는 글을 쓴 필자나, 글씨로 옮긴 서예가나, 조각가나, 원석을 제공한 석재회사나, 무엇보다 이 일을 기획하고 시행한 청주JC 회장 등 모두가 어린이들을 위한다는 생각에 한 마음이 돼 즐겁고 기쁘게 재능기부로 마련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좌대 높이 1m, 본체 높이 2m 등 3m에 이르는 동시비는 청주 중앙공원 내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 세워졌다. 놀이터에 놀러나온 아이들은 놀다가 올려다보고 가족끼리 사진을 찍는 등 동시비는 점차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비로 자리매김 되었다. 최근엔 잊고 살았지만, 그런 것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공원을 찾아가 비를 본 적도 있었다.

전화는 그 동시비가 사라졌는데 혹시 알고 있느냐는 전화였다.

비가 사라지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손으로 들 수 있는 작은 물건도 아니고, 돌을 팔아서 돈이 될 것도 아닐텐 데,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원에 있던 비가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탐문을 해보니 2년 전까지는 비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이 됐고, 지난해 중앙공원 조경공사 후 사라진 것으로 추측이 됐다.

결국 비를 세웠던 사람들에게 비가 사라진 것이 다 알려졌고,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사실이 청주시장에게까지 보고되면서, 청주시는 예술적·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라 18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처음 세웠던 것과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동시비를 다시 제작했다. 다행히 설계한 도면을 조각가가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고, 서예가가 다시 글씨를 재능기부하여 새로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12월18일, 새롭게 제작된 동시비는 장소를 옮겨 청주랜드 우암어린이회관 생태관 앞마당에 세워졌다. 비록 훼손 망실이라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자 마음을 모았던 어른들의 기대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세모, 햇살이 따뜻한 오후에 우암어린이회관을 찾아 동시비 앞에 섰다.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린 듯 단정하게 조각된 비의 앞면에는 태양의 빛이 새겨져 있고, 동시가 또박 또박 쓰여져 있다.

천천히 음미하듯 시를 읽어 본다.

‘나는 / 작은 바람개비 / 날개마다 / 가득 바람을 품고 /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 하늘로 하늘로 / 오르는 불꽃’.

비의 뒷면에는 ‘땅을 딛고 / 세상을 품고 / 하늘을 보자’가 음각돼 있다.

아, 다행이다. 사라졌던 동시비가 이렇게 다시 세워졌으니. 처음 비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쿵 하고 내려앉았던 가슴이 이제는 평온하다.

동시비를 처음 제안한 김현배 전 청주JC 회장, 멋진 조각을 맡아준 김수현 전 충북대교수, 두 번씩이나 글씨를 재능기부한 김동연 서예가, 원석을 기증했던 평곡석재, 그리고 비를 새로 세워준 한범덕 청주시장까지,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과 이런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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