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원 청주시율량사천동 주무관

정예원 <청주시율량사천동 주무관>

(동양일보) 2018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한창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에는 12월 31이나 1월 1일이나 별 다른 것 없이 똑같은 하루처럼 느껴졌다. 텔레비전의 연말 시상식이니, 송년이니 해맞이니 하는 것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똑같은 겨울의 하루하루일 뿐인데, 굳이 구분하여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굳이 하려는 걸까, 싶기도 했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비슷했다. 모든 것이 새로 해 보는 일 뿐이었기 때문에 밀린 일들을 처리하는데도 빠듯했고, 신정 휴일 또한 밀린 일을 처리하는 데 오롯이 쓰이곤 했다. 그러나 신규임용되어 율량사천동 주민센터에 처음 들어온 후 지금까지 3년 반이 지나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일들을 이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어린 시절에는 12월 25일이 되면 내가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가 알 수 있었다. 동생 안 괴롭히고 잘 돌보고, 거짓말 안 하고, 장난감 사 달라고 떼쓰지 않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간,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좀 받아보겠다고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그에 대한 보상은 꼭 그 날이면 주어지곤 했다. 철석같이 산타를 믿었던 유치원생에게는 성탄절이야말로 진정한 송구영신의 하루였던 셈이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그때그때의 성적표가 나의 삶을 평가해주었다. 시험성적만이 그 시절을 평가할 눈에 보이는 잣대였다고 생각하면 서글프기 그지없지만 그 시절엔 그래도 그런 것으로나마 작은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졸업 후에는 취직이, 취직 후에는 또 다른 사회적 잣대가, 칭찬과 격려의 조건이 정해져있어 그것들이 나의 삶을 평가해주곤 한다.

사회적 잣대로 정해져있는 칭찬과 격려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며 산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지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이렇게 다 같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에 칭찬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율량사천동에서의 지난 3년 반 동안, 남녀노소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인격적인 삶을 사는 데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칭찬과 격려라는 것이다.

아이와 빈자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단어들이 있다. ‘지식인’과 ‘지혜로운 사람’, ‘부자’와 ‘교양 있는 사람’ 같은 것들 말이다. 창구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고 있으면 이는 정말 쉽게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이들을 이해해보려 부단히도 노력하였다. 결국 이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들을 이해하겠는가 말이다. 그저 그들이 사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한테는 사랑, 관심, 칭찬, 격려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번아웃에 시달리던 나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연말연시는 우리 모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칭찬과 격려를 나눌 수 있는 일종의 ‘명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일 년을 정리하며, 우리 모두가 지난 일 년 잘 버티었다. 여러분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잘 버텨보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날 만큼은 칭찬과 격려에 인색했던 나 자신을 접어두고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운 한 마디,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어 보는 것이다. 난무하는 단체문자들 사이로 쑥스러움을 숨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산타가 찾아오지 않게 된 어른들에게는 이 연말연시야말로 떠나간 사람들을 마음으로 보내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저 이렇게 다 같이 함께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성탄과도 같은 날들임을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올해부터라도 내 곁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마디 건네는 연말연시를 보내고 싶다. 연말연시가 아니더라도 칭찬과 격려를 보내는 데에 쑥스러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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