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9-02-18 09:11 (월)
풍향계/아침 해가 돋을 때
풍향계/아침 해가 돋을 때
  • 동양일보
  • 승인 2019.01.01 2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주 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 서울로 온 집 안이 이사를 한 때는 한 겨울이었다. 열 살 무렵 처음 만난 서울은 집이 추웠다. 아랫목은 촌집보다 뜨거웠지만 벽에는 서리가 맺힐 만큼 냉골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아버지가 순진하게 구해놓은 집은 겉만 빨간 벽돌로 그럴 듯 했다. 뜯어진 벽지 벽돌 사이로 바깥이 내다보일 만치 엉터리였다. 다니러 온 어른들이 집장사가 지은 날림집이라고 했다. 촌에는 없는 단어들이었다. 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는 수도는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방 아랫목은 장판이 타고, 윗목에는 물이 얼었다. 이모는 촌에서 올라온 날 방 안으로 스며든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다. 아이고 정애야 너 안 깨나면 어쩌냐고 엄마는 울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동치미 국물을 이모 입에 흘려넣었다. 한 참 뒤 깨어나 아무 일 없는 듯 이모는 며칠을 놀다 내려갔다. 촌에서 올라 오는 어떤 손님은 연탄가스를 마셨고, 어떤 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첫 해 겨울 그 집에서 아침에 우리는 동치미 국물을 자주 마셨다.

그래도 이사는 이년 쯤 지나 했을까, 서울로 온 국민이 몰려드는 것처럼 집이 부족하던 그 시절, 사남매나 되는 우리는 그냥저냥 고물고물 잘 자랐다. 언니는 헝겊 인형을 만들고, 엄마 어깨 너머로 뜨개질을 배우기도 하면서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촌에는 없는 만화책과 동화책에 재미를 붙이고, 문방구 불량식품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기도 하고. 5학년 때 선생님은 편애가 심했다. 육성회비를 책정하러 가정방문 하던 시절, 엄마는 촌에서처럼 중간 액수로만 낼 거라고 선생님께 우겼다. 선생님을 곤경에 빠뜨렸기 때문에 그런가보다고 여겼다.

위안은 교문 옆의 교회, 아아 교회는 어쩌면 그렇게도 다정하던지, 부모나 선생님과는 다른 격려와 위안이 있었다. 교회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강 같은 평화처럼 남용됐다. 그 넘침이 촌에서 올라간 어린 시절에 따뜻했다. 교회는 늘 무언가를 주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것도 상도 자꾸 주었다. 성경 퀴즈대회나 암송대회 같은 것들이 열리면 신나는 긴장으로 마음은 벅찼다. 부상으로 주는 연필이나 공책을 집에 가져가면서 으쓱하기도 했다. 교회 덕택에 서울의 낯선 추위에도 주눅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참 좋았다.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과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이, 또.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날 때에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중학교 때였을까, 언니는 이 찬송이 좋다고 했다. 공부 잘하고 차림도 단정한 언니는 세월 허송 않고 어둔 세상의 햇빛으로 살 것같아 좋았다. 어른들 시선 직접 받지 않는 거리를 편하게 여기는 내게 언니는 중간지대 같았을지, 같은 자식 서열이 아니라 이모 서열같이 친근하면서 안전한 우산같은.

이 노래는 언니가 먼저 좋아한 찬송이므로 나는 좀 덜 좋아해야 할 것 같은 의리 정의 사랑을 모두 포괄할 이상한 거리가 생겨났다. 예배시간이나 혼자 흥얼거릴 때면 교회 가는 길이 즐겁고 기대되던 어린 날이 겹쳐졌다. 가당치도 않게 한 생을 온통 빛의 세계로 살 수 있는 일들, 세월을 허송하지 않는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런데.

“… 오늘이라는 새 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 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하고 이해인 시인이 말씀한다. 이제 새 옷같이 신선한 오늘도 떨어진 단추를 다는 것처럼 평범하고 지루하고 시시한 일들 연속하는 중요를 배우는 시절에 당도해 있다. 지루와 고귀의 양면을 지니는 일상, 우리 삶의 진실을 들이미는 말씀을 보고 있다. 결국 일의 새로움을 넘어 자세를 새롭도록 다듬어야 하는 모양, 그러니 나이 든 시인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 듯/ 제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네” 말씀하시나보다. 새 일을 맡을 기회야 제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고 보면, 시간을 신선하게 살아내는 비의는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의지, 노력, 성실 같은 오래된 미덕들이라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