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신성대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 사회복지과 교수

(동양일보) 오래 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대중에게 회자된 만큼이나 내게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고 ‘자유롭게 어딘가로 훌쩍 떠나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모든 직장인이 갖는 로망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필자 역시 똑같은 마음으로 현업에 충실하였지만 실제 부담을 느끼지 않고 홀연히 여행을 떠난 적은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운 것 같다.

역마살이 낀 사람에게 떠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개인에게 실제 그런 운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모든 사람에게는 다 역마살이 있다고 본다. 한 곳에 정착해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면 질서와 안정 속에서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민족은 기마민족의 후예가 아닌가. DNA는 세대를 이어가며 유지 발전된다고 본다.

인간은 떠나는 존재이다. 우리는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지구로 왔지만 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또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한다. 그곳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녀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간혹 그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잘 들어보면 거짓부렁에 가깝다. 화자 역시 그 세계를 두려워하고 이 세상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의 삶을 통해 알 수 있다. 굳이 그런 모습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종교지도자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만들었고 종교를 믿지만 결국은 본인이 깨우쳐서 풀어나가야 한다.

떠나라는 문구에 대해 최근 무시무시한 문장을 보았다. ‘자신이 없으면 떠나라’가 그것이다. 저자는 일할 자신이 없으면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현장에서 빨리 떠나라고 하였다.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관행과 안일만 추구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주는 저주에 가까운 경고였다. 일할 자신이 없으니까 남 탓을 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동료를 힘들게 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말고 어서 사회복지계를 떠나라는 것이다. 그래야 새 판도 짜고 의미있는 시도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에 대한 능력도 모자라면서 배울 생각도 안하고 버티기만 하는 직원이 있다면 관리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힘들게 된다. 더구나 요즘 같이 권리가 강조되어서 함부로 해고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직장생활은 모두에게 고역일 것이다.

그런데 시야를 한번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얼마 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갑질문제를 보면 사태는 심각하다. 갑질을 하는 당사자에게 을들이 소리 높여 ‘갑질하려면 떠나라’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갑들이 보면 가소로운 일일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너 네가 뭔데 헛소리냐’라며 비웃을 것이다. ‘너 아녀도 올 사람 많다’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이다. 고용관계라는 구조적인 문제와 그렇게 성장해온 한국적 풍토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와 행태를 가지고는 이제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정보통신기기가 발달하고 언론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상황에서 갑질사태가 제대로 보도되면 그 기업은 단번에 아니면 서서히 몰락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지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떠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나쁜 일이기도 하다. 어딘가 자유를 찾아서 또는 보다 나은 곳으로 떠난다면 분명 축하해주고 부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을 떠나야 한다든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나 주변사람에게 슬픈 일이다. 위로받아야 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올해도 우리는 어김없이 시간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 한다. 시간여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떠나야 할 곳을 정하고 속도도 조절해야 하겠지만 누군가로부터 떠나라는 소리는 듣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고 주변도 살피며 살아야 한다. 자, 이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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