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술도가의 비밀 속으로, 풍경과 풍류와 풍미 깊은 곳

용몽리 농요의 한 장면
덕산양조장 전경

(동양일보) 여행을 떠날 땐 언제나 혼자였다. 숲길, 들길, 물길을 따라 자연 속으로 걸어갈 때도, 도시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그 속살을 훔칠 때도,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갈 때도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삶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의 존재에 의구심을 던질 때,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알 수 없을 때, 말 많은 세상 전쟁같은 현실에 현기증이 날 때, 앞만 보고 달리는데도 여기가 어디인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홀로의 외로움에 치를 떨다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왔다.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나만의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 속으로 새로운 향기가 나고 결이 생겼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살지에 대한 방향과 더 큰 돋음을 허락했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앙가슴 뛰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한다. 떠날 땐 언제나 혼자였지만 돌아올 땐 혼자가 아니다. 또 다른 나와 함께 손잡고 온다.



진천지역을 여행할 때는 여권부터 챙겨야 한다. 진천군이 제작한 여권에는 진천의 다채로운 역사, 문화, 관광자원이 소개돼 있다. 발 닿는 곳마다 여권에 도장을 찍어라. 진천중앙시장 문화축제의 장에서 각종 할인 혜택이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여권부터 챙겼다. 그리고 덕산으로 달려갔다.

시골의 면소재지가 번잡스럽다. 인근에 혁신도시와 산업단지가 많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식당, 다방, 여관 등이 즐비하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덕산양조장이다. 1930년에 문을 열었으니 9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양조장 건물은 그간의 영광과 상처를 웅변이라도 하듯 짙은 갈색의 옷을 입고 나그네를 반겼다.

이곳은 충북의 양조장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백두산 전나무와 삼나무로 만들었다. 흙벽과 나무판 사이에 두꺼운 왕겨를 깔았다. 술맛을 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온도와 습도이기 때문에 한 여름에도 시원하고 오래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계절에 관계없이 발효실 온도를 27℃로 유지할 수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서 ‘할아버지 금고편’의 배경으로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촬영하기도 했다.

양조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상처 깊은 풍경과 오래된 술 내음이 심드렁한 몸과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술을 빚는 옹기에서부터 술 찌꺼기를 걸러내는 체와 손으로 쓴 빛바랜 장부와 흑백사진과 깔때기와 술통 등 발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양조장의 애틋한 사연으로 가득했다. 90년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다. 지금도 출납대장을 손으로 쓴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곳에서는 인공지능 시대라고 해도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만 기계가 할 뿐이다. 술 빚는 마음만은 그 어떤 인공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새틈틈 술 향기가 끼쳐온다.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니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었다. 햇살과 바람이 머물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생명력이 깃들면서 술이 익어간다. 어디선가 미세한 숨소리가 들린다. 술독에서 날숨 들숨을 하며 저들끼리 합궁을 한다. 수많은 미생물이 탄생하는 즐거운 비명 소리다. 미생물이 살아있는 생막걸리는 뿌리 깊은 술도가의 자긍심이다. 약주와 탁주의 전통주는 물론이고 쌀로 빚은 와인 등 새로운 도전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따로 없다.

90년을 달려오면서 시련과 아픔이 왜 없었을까. 경영난으로 여러 해 문을 닫기도 했고, 부도를 맞아 줄행랑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덕산양조장의 명맥을 잇는 것을 운명이라고 여긴 송향주 씨(53)의 집념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송 씨는 30여 년 전, 덕산양조장 며느리로 시집왔다. 기쁨과 영광도 잠시, 시련이 닥쳐왔다.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지금은 아들까지 양조장 일을 거들고 있다.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도록 고맙다.



생거진천이라고 했다. 풍요의 땅이기 때문이다. 덕산양조장이 견뎌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인근 용몽리를 잠시 들렀다. 술 향에 취했으니 풍류에 취하고 싶어서다. 용몽리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농요의 마을이다. 대월들, 목골들, 옥골들 등 이 일대에서 논농사를 하며 전해져 온 농요를 잘 보존하고 있다. 충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농요전수관이 있다. 모를 찌고, 심고, 벼를 수확하는 모든 일손에는 이들만의 춤과 노래와 정겨움이 가득했다. 문득 문화의 어원이 ‘경작’ 또는 ‘재배’를 뜻하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유래했음을 상기한다. 오늘은 진천 덕산에서 우리 고유의 삶과 멋에 경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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