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 / 소설가 / 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 / 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동양일보)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을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마음이나 생각’ 또는 ‘얼’이나 ‘영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은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고 넋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구체적 외연(外延)으로 풀이하면 물질이나 육체에 대한 마음의 일컬음과 지성적 이성적 목적의식적 능력이 정신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형이상학(刑而上學)에서 헤겔이 말한 대로 ‘만물의 이성적 근원’이 정신일 수도 있다.

이만큼 ‘정신’은 중요해 우리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절대한 존재가치다.

그런데 이 절대한 존재가치를 지금 우리는 송두리째 잃어버린 채 신념(철학) 없는 망석중이로 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구려 때는 상무(尙武)정신이, 신라 때는 화랑(花郞)정신이, 조선조 때는 선비정신이 그렇게도 도도히 흘러 대하장강(大河長江)을 이루더니 이제는 참혹하게도 이기(利己)와 공리(功利)와 명리(名利)와 재리(財理)와 출세와 탐욕과 훼절과 실정(失貞)으로 탈바꿈해 요령과 아첨과 교언(巧言)과 영색(令色)에 탐닉하고 그래도 모자라 불법 탈법 위법 범법을 능사로 하는 찰나주의적(刹那主義的) 관능에 빠져 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상무정신의 그 당당한 기백과 화랑정신의 그 도연(陶然)한 기상과 선비정신의 그 대쪽 같은 올곧음은 다 어디로 갔는가. 찾아야 한다.

선비정신을 중히 여겨 자주(自主)의 것을 지키고 외래문화는 좋은 점만 받아들이는 자주채서적(自主採西的) 선비정신을 찾아야 한다.

보라! 아직도 미국은 개척정신이라 일컬어지는 ‘프런티어 스피릿’이 살아 있고 영국은 ‘페어플레이’ ‘기사도정신이, 그리고 젠틀맨 십이 맥맥이 흐르고 있다.

독일은 ’근검 절약정신‘이 생활철학으로 돼 있고 프랑스는 콧대 높은 국어 사랑을 파리장과 파리젠느의 가슴마다에 깊이 간직돼 있다.

뿐만이 아니다. 희랍은 여태도 ‘스파르타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이나 광야를 떠돌며 박해 받은 민족답게 잃어버린 고토(故土) 팔레스티나를 찾자는 시오니즘을 지금껏 국시(國是)처럼 내걸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은 어떤가?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 이후 일어나기 시작한 양무운동(洋務運動)을 반대하고 그 기운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 본래의 학문인 유학은 변함없이 숭상하되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근대의 서양문명을 크게 섭취 이용해야 한다며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을 부르짖었고, 일본은 ‘야마또다마시’라는 대화혼(大和魂)과 ‘일본혼(日本魂)’을 제일의(第一義)로 내걸고 여기에 또 매사에 힘쓰자는 ‘완장정신(頑張精神)’의 ‘간바레 정신’을 국시처럼 내걸고 있다.

그런데도 선비의 나라요 군자의 나라요 예의의 나라라는 우리는 상무정신도 화랑정신도 선비정신도 없어진 지 오래여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오합지중에 다름 아니다.

대개 한 사회의 정신은 한 나라의 정신이 되고 한나라의 정신은 한 민족의 정신이 된다.

때문에 한 사회와 한 나라가 어떤 정신을 가지느냐로 그 나라의 운명이 결정 지워진다. 왜냐하면 정신은 혼이요 얼이요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정신은 만물의 이성적 근원이다. 만일 인간에게 이런 ‘정신’이 없어보라. 그러면 이는 식충이요 무골충(無骨蟲)이다.

그래서 헤겔은 정신을 ‘만물의 이성적 근원’이라 했을 것이다.

문득 근세의 정치가요 종교가요 계몽가요 기독교 청년회장이요 신간회(新幹會) 초대회장이시던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선생이 사무치게 그립다.

왜 지금은 그분과 같이 기지와 풍자와 해학과 촌철살인으로 일본 관헌은 물론 친일파 고관의 간담을 서늘하게 꾸짖던 분이 단 한 분도 없는 세상인가.

그런 분이 몇 분만 있어 이 뒤죽박죽이 된 세상을 호통치고 풍자와 촌철살인으로 ‘정신’ 번쩍 들게 일갈하면 좋으련만, 좋으련만.

이 땅에 언제쯤 이런 분이 우리 앞에 나타나 대갈일성 호통 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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