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 정부는 국가의 융성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갖가지 정책을 산출한다. 정치, 행정, 산업 등을 비롯, 모든 분야에 걸쳐 정부의 행동노선(a cource of action)으로서의 정책을 결정하여 발표한다. 체제, 이념, 법, 제도, 조직 등의 변화 및 내용의 전환, 산업, 공간, 교통, 환경 등의 개선을 위한 새로운 계획, 목표, 슬로건 등이 제시된다. 이들 정책들은 국가과제 및 시대정신과 환경변화 등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한다.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근대화 전략, 정신(의식)개조로서의 도덕 재무장, 정의로운 국가형성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 법치사회 건설을 위한 제2건국, 국민 참여 국가체제 수립, 국민이 행복한 나라 등의 슬로건을 걸고 제 분야들에서 정책을 기획하고 관리해 왔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뭐니 뭐니 해도 모니(money:돈)’가 뒷받침 되어야 안녕과 안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득최고의 인식이 뿌리를 내리면서 정책은 이념이나 정신 및 규범 등보다는 경제가 최우선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정책용어도 녹색성장, 창조경제, 소득주도성장 등으로 바뀌었고 소득주도성장은 다시 포용성장으로 개명되었다. 이렇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용어가 다르게 표현되었다. 내용은 유사한데 포장이 달라진 것이다. 이들 정책들은 하나같이 정책용어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적합성, 객관성, 과학성 등에 맞지 않거니와 정책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계속성 일관성 등을 유지하지 못하였고 중복성 반복성 또한 탈피하지 못하였다. 개념이 모호하고 국민이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자연적으로 국민의 협조나 성원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정책과 민의가 따로따로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국력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책의 정체성(identity)이 불분명하다. 경제라는 용어는 원래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이라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줄여 소득 대신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농업이나 제조업 등과 같은 산업이 아니고 국정철학 및 기조의 영역이다. 단지 오랫동안 소득대신으로 사용하다보니 산업 중의 하나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최근에 만병통치약 및 여의주로 등장한 혁신성장, 창조경제, 포용성장 등도 경제라는 용어의 동의이어(同意異語)에 불과하다. 브랜드를 그럴싸하게 붙이고 장식을 화려하게 하면 상품(경제)이 잘 팔릴 수 있다는 상술적 개념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전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하는 성장이란 용어는 양적인 증가를, 발전은 양적 및 질적인 향상을 모두 포괄하는 것을 가리킨다. ‘숫자로 나타내는 경제성장’, ‘산업환경 및 경기호전 등을 뜻하는 경제발전’ 등의 용어가 이를 잘 대변한다. 본무에 맞게 제 갈 길을 제대로 가면 될 것을 무엇을 어떻게 혁신한다는 것인지, 지금까지의 성장 정책이나 전략은 퇴치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무엇을 했고,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고쳐 나갈 것인지 등에 대한 평가와 소명이 수반되지 않은 채 정체불명의 정책을 내 놓고 선전 및 광고에 급급해 하는 모양새이다. 창조경제 또한 마찬 가지다. 창조는 발견이 아니라 발명을 본질로 하는 용어이다. 벤처산업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제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발명품보다 현재보다 나은 내용으로의 변화 및 개선을 도모하고 산업동력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에 강조점이 주어져야 하는 재정활동이다. 경제이든 그 밖의 모든 국가 활동 등은 크고 작든 새로운 모색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모든 것이 창조의 색채를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그냥 경제라고 표현하면 된다. 포용성장(포용적 성장이라는 용어는 더구나 부적절)은 또 무엇인가. 포용은 사전적 의미로 남을 아량 있고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인격이나 대인관계 및 리더십 이론에 적용되는 용어이다. 국정이나 경제정책에 사용될 용어는 아닌 것이다. 종합, 균형, 형평성장 및 발전 등 국정적합성 용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렇듯 부적절한 정책용어를 등장 시키는 소이가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지난 2018년 12월 29일, KTV가 연말특집으로 방영한 토론회에서도 토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포용국가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빈곤층에 복지를 확대하고 약한 중소기업들을 적극 지원하여 용기를 주는 따뜻한 성장 및 경제를 도모한다는 의미라는 말로 포용성장이라는 정책용어를 옹호하는 주장들을 펴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책은 용어가 분명하여야 한다. 적합성, 객관성, 과학성 등을 구비하여야 한다. 정부의 고급관료들이 정책의 본질과 용어의 조건을 구별하지 못할 리가 없다. 체제분석적 접근을 통한 용어를 찾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정책의 본질과 조건에 맞는 정책용어를 발굴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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