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ESI 교장

(동양일보) 역사의 발전이 갖는 성격에 관하여 크게 세 가지의 시각이 있다. 발전사관(發展史觀), 정체(停滯) 및 순환사관(循環史觀), 퇴보사관(退步史觀)이 그것들이다. 발전사관론자들은 말 그대로 역사는 진보 내지는 진화한다는 의견을 갖는다. 이들에 의하면 인간은 지금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발전해 왔고 또 앞으로도 발전할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체사관 내지 순환사관에서 보면 인간의 역사는 발전과 거리가 멀다. 옛 시대의 삶이나 현재의 삶이 다른 것은 물리적 개념에서만 관찰될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적어도 동시대의 그것이 이전 시대보다 내용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더 성숙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역사는 퇴보한다는 생각은 물질적 발전이 인간의 발전인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물질이 주는 효용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육체적 편리성을 역사의 발달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오인하는 경향을 가진다. 역사를 그 본질에서 보면 물질의 변화는 정신의 변화와 오히려 반대의 방향을 가진다. 그러므로 물질의 발전은 역사의 퇴보와 동의어이다.

이 세 종류의 주장은 역사 흐름의 방향을 서로 달리 가지고 있으므로 섞이거나 서로를 보완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역사를 이루는 내용이라는 본원적 객체에 대해 서로 다른 설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발전사관에서의 논리를 보자. 고대, 중세, 그리고 근현대를 물질적 시각으로 보면 분명 발전은 있어왔다. 그리고 물질문명의 발전은 정신문명의 발전 없이 독립적 행보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정신적 진화를 해왔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의 진화를 역사의 흐름에서 배제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정체 및 순환사관에서 보는 정신과 물질의 관계는 사뭇 다르다. 세밀함과 정교함이 물질세계의 발전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일 수는 있어도 이것이 정신세계의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 정교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발전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보다 더 순수할 것이다. 따라서 물질의 발전과 철학의 진화는 서로 관련이 없다. 인간을 물리적 존재보다 정신적 가치로 파악해야 한다면 분명히 역사는 정체되어 있거나 순환할 뿐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가서 육체적 분주함이 생각의 자유를 배려하지 못한다고 인식할 수 있다. 즉, 오감으로 인식되는 세상의 발달이 물질적 감각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정신과 추상의 세계로부터 인간을 오히려 멀어지게 한다. 역사의 퇴보를 주장하는 시각에서 보면 물질의 발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신보다는 육체에 가까운 세상에 관심을 집중하게 함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다른 동물과의 차별성을 버리고 더욱 비인간적으로 치닫게 한다. 따라서 물질적 발전은 정신적 빈곤을 동반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퇴보인 것이다.

교육은 모든 사회적 존재형태의 인프라이며 동시에 수렴(收斂)이다. 전후(戰後)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다. 그 원인으로 교육을 으뜸으로 놓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적어도 동시대에서 우리나라 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이 결론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동인(動因)은 교육이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세계최고인데 우리나라 교육은 ‘세계최고일 수 없다’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같은 역사의 흐름을 보고도 이것이 발전인가, 정체인가, 아니면 퇴보인가의 서로 다른 주장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역사를 판단하는 근거 중 어느 것에 자신의 의견을 설정했는가 하는가 하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시각을 논리적으로 확장하여 체계화 한 것이 역사관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 역사관 자체에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교육을 정치경제적 사회의 기계적 구성요소로 인간을 파악하면 인문학적 시각에서의 인격은 사라진다. 이 문제에서 보면 우리의 교육은 비인격적이다. 우리는 지금 이를 물리적 제도개혁으로 밀어붙여서 개선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에 대해 느끼고 고민할 기회를 인정해야 지식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의 바탕에서 교육은 가치적 체계를 갖는다. 우리는 지금이 진정 이를 고민할 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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