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청주시투자유치과 주무관

정원영 청주시투자유치과 주무관

(동양일보)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찾은 고향집. 약주 한 잔에 아버지 현역 시절 이야기가 역시 단골 안주로 올랐다. 가업을 이어받아 공무원이 된 후 매해 명절마다 꼬박꼬박 들려주시면서 늘 새로운 이야기처럼 꺼내 놓으시는 이야기인데 듣는 입장에서도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아빠가 읍 산업계장으로 근무를 했을 적에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추석을 딱 삼 일 앞둔 어느 날 지역 건설업자가 집으로 수박 한 덩이와 봉투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 시절 딸 여섯 키우느라 빠듯한 살림살이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건설업자에게 돈을 송금하셨다 한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읍장과 직원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그중 한 명은 결국 파면까지 당하게 됐다. 아버지는 그때 행여나 그릇된 마음을 먹었다면 딸 여섯을 어찌 공부시켰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하셨다.

“그래도 나는 사십 년 가까이 공직생활하면서 검은 돈에 눈길 한 번 안 주고 봉급만 가지고도 너희들 공부 다 시키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민들한테 보답하며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부면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여든을 넘긴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인감증명을 발급받으러 오신 사연으로 이어진다.

고된 농사로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가 할아버지 인감도장과 신분증을 집에 두고 오셨다 한다. 직원도 난처한 상황이지만 재산권이 오락가락하는 인감인지라 도무지 그냥 발급해드릴 수 없었고, 버스를 기다리고 타는 시간을 합치면 반나절은 거뜬히 넘길 시골 교통 형편 탓에 할머니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 됐다고 한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담당 직원과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 댁으로 가서 할아버지의 우무인(右拇印)을 받고 인감증명을 발급해드렸는데 그해 추석 참기름 한 병이 아버지의 차 앞에 놓여 있었다 한다.

“그 참기름은 내가 집에 와서 묵었다. 참 꼬습고 맛나더라.”

나의 신입시절이 떠올랐다. 오창이 읍 승격을 앞두고 있었고 쌍춘년, 황금돼지해가 이어지며 전입에서 결혼·출생까지 민원이 폭주하는 곳에서 하루 종일 엉덩이 뗄 틈 없이 민원을 처리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아들을 대신해 인감증명을 발급하러 오신 할머니께서 신청서 작성이 힘들다 하셔 곁에서 상세히 작성을 도와드렸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신분증을 두고 오셨다는 할머니께 법령을 설명드리며 신분증 없이 인감 증명 발급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방금 전까지 고마움을 표시하시던 할머니께서 깐깐하게 군다며 태도가 돌변하셨다. 나로서는 참 억울하다 싶어 눈물이 쏙 나왔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친절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말투와 행동에 ‘친절’을 담으려고 했지만, 그때 내겐 ‘공감’이 빠져 있었다. 법에 정해진 테두리를 지키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고집스럽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이다. 법의 테두리는 벗어날 수 없으나 공감은 그 테두리 밖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으며, 민원이 진정으로 받고 싶었던 것은 기계 같은 친절한 답변이 아닌 따뜻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새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 화두가 ‘공감과 소통’이라는데 아버지의 길을 뒤이어 걸은 지 15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 나의 화두는 ‘공감과 청렴’으로 정해 볼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구두를 떠올려 본다. 박봉을 쪼개 여덟 식구 살림을 꾸려 가시느라 구두 한 켤레 본인을 위해 장만하시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늘 뒤 굽이 닳을 대로 닳아 ‘따각 따각’ 징 소리가 울리는 구두를 신으셨다. 나 정원영은 그 낡은 구두 소리를 공무원으로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잊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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