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고백했다. 속도조절에 들어간 정부도 1988년 최저임금제도 시행 후 31년 만에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4개 틀로 바꾸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를 요약하면 올해부터 최저임금은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상·하한선을 정하면 노동자, 사용자, 공익위원들이 그 안에서 인상수준을 정하는 식으로 변경된다. 최저임금 결정에는 노동자 생계비뿐 만 아니라 고용수준과 경제상황도 반영된다. 정부가 그동안 독점해 왔던 공익위원 추천권은 국회나 노사 양측에도 몫이 돌아간다.

이런 개편안에 대해 여당과 보수야당들은 긍정적 반응이다. 그러나 정의당과 양대 노총은 노동자 의견을 배제하고 노사 자율성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최종안으로 확정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지만 일단은 정부가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해 (최저임금)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솔직히 말해 돈 많이 준다는데 받는 거 싫어 할 사람 아무도 없다.

문제는 돈 줄 사람의 형편이다. 최저임금이 2년 새 29%나 올랐으니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서 아우성치는 것은 당연하다.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자꾸 큰 구멍을 파라고 하니 알바생과 종업원 줄여 급한 불부터 끄려 하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보니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가 막막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최저임금 후폭풍의 악순환은 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동반 하락으로 연결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후 70%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 후반대로 급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취임 초 신선한 행보에 한반도 평화바람까지 불어 잘 나가던 문 대통령 국정 수행이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벽에 가로막힌 꼴이 됐다. 당장의 먹고 사는 생계 앞에 남북평화는 사치품 쯤으로 인식됐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엔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제목도 한 몫한다. 언론에서 어렵다, 어렵다고만 하니 소비심리만 위축시켜 돈 있는 사람들이 돈 쓰는 것을 막는 꼴이 되고 있다.

경제라는 게 빵 구워 내듯 하루 아침에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모든 경제 현상엔 작용과 반작용이 있고 다면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1년후 경제 효과가 있을 수 있고 역효과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만큼 보도에 신중해야 하는데 경제기사 제목만 보면 금방 죽을 것처럼 난리다. 경제문제를 정파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겨울방학을 맞아 여권을 발급받으려는 민원인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충북도청의 경우 하루에 300~400명이 몰리고 이중 가족 단위 여권신청만 5~10가족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매일 보는 한 직원은 “정말 경제가 어려운거냐”고 되묻는다.

어디 이뿐인가. 해외여행을 하려는 사람들로 공항은 늘 북적이고 손에 골프백이 들려 있는 것은 일상쯤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베트남엔 작년 한해동안 한국인 331만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된다. 하루에 1만여명이 찾는다는 얘기다. 말이 1만명이지 총 경비를 1인당 150만원으로 계산하면 어림잡아 하루에 150억원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안에선 경제가 어렵다고 돈 틀어막고 밖으로 나가선 외화를 펑펑 쓰는 이중적 행태. 어쩌다 가는 해외여행이야 머리도 식힐 겸 견문을 넗힐 수 있어 장려라도 해야 하지만 골프 치러 가는 모습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국내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이쯤해서 지난 3일 그랜드프라자청주호텔에서 열린 청주상의 주최 신년교례회에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한 건배사가 새삼 와 닿는다. 건배사는 내수촉진을 위해 기업(인)들이 솔선해서 돈을 풀어야 한다는 거로 요약된다. 그런 차원에서 셀트리온그룹은 전 직원들에게 120만원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 오신 기업인들도 직원들에게 20만~30만원씩을 더 주면 지역경제가 잘 돌아갈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순간 장내는 숙연했다.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핑계로 돈을 움켜쥐고만 있지 말고 직원들에게 과감하게 풀면 그 돈이 결국은 지역경제를 꿈틀거리게 할 것이라는 고언이었다. 이어 서 회장은 새해 덕담으로 복 많이 받을 생각보다 먼저 ‘복 받을 짓’을 하자고 제안했다. 경기침체로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그의 건배사는 참석자 모두에게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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