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판 명심보감

(동양일보 한종수 기자) 최근 개관한 청주시기록관이 청주가 교육의 도시라 불리게 된 근거로 알려진 '청주판 명심보감' 등 청주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을 전시한다.

중국 명나라의 범립본(范立本)은 중국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과 명구를 뽑아 1393년 명심보감을 편저했다.

명심보감 원전이 나온 지 61년 후인 1454년 충청도 관찰사 민건, 청주목사 황보공, 청주목 판관 구인문, 청주 유학교수관 유득화 등이 목판으로 '청주판 명심보감'(신간대자명심보감·新刊大子明心寶鑑)을 간행했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1453·단종 원년) 관련해 인륜을 바로잡기 위해 일종의 윤리 교과서인 명심보감을 인쇄해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명확치 않으나 청주판 명심보감은 유구한 역사로 전해져 온 '교육의 도시'로 불리게 된 근거로 추청된다.

지역 학계는 청주도심 한복판에 있는 국보 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의 명문도 청주가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했다는 증거로 제시한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세워진 철당간 명문에 교육 관련 관직명인 '학원경(學院卿)'과 '학원낭중(學院郞中)'이란 단어가 나온다.

또 근현대 청주의 인구 수준을 볼 때 학생 등 교육계 종사자와 교육시설이 상대적으로 많아 지리학적으로 교육도시로 분류됐다는 주장도 있다.

1980년 초중반 청주의 인구는 20만 명대에 불과했지만 당시 대학만 해도 충북대, 청주대, 청주사대(현 서원대), 청주교대, 한국교원대, 간호전문대(현 교통대 증평캠퍼스), 충청대 등 비슷한 규모의 도시보다 많았다.

교육계 종사자들은 "청주가 교육도시의 명성을 잇기 위해서는 타 지자체와 차별화된 경쟁력 있는 교육정책을 과감하게 펼쳐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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