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바람은 지방청 승격입니다"
우정(郵政)위해 소통과 열정으로 일궈낸 40년
퇴임 앞둔 '성공맨' 비결 묻자 "공부"
고가 우체국 시설 국산화 이끄는 등
'해결사'로 활약… 국가 표창 '다수'
"도민 뜻으로 지방청 승격 이뤄내길"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느덧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불과 5개월여 뒤면 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신념 하나로 올곧게 생활해왔지만 그동안 더 열심히 일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함께 부족한 저를 묵묵히 잘 따라준 후배들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정통체신부 출신인 이상명(60·사진·서기관·청주시 청원구 1순환로 70·☏043-711-0700) 청주우체국장은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청주고와 청주대, 동대학원(행정학 석사)을 졸업했다.

1979년 1월 9급 공채로 임용된 이 국장은 음성우체국에서 첫 발을 내디딘 뒤 같은 해 3월부터 청주우체국에서 5년간 근무했다. 이후 충청체신청 천안우체국 영업과장, 정보통신부 기획관리실 재무총괄담당관실·기획예산담당관실, 우정사업본부 경영기획실 경영총괄과·금융리스크관리팀·투자기획팀을 거쳐 서기관으로 승진했으며 창원우체국장, 서청주우체국장 등을 지냈다.

걸어온 길이 말해 주듯 예산 전문가로 승승장구해 온 이 국장도 충북 토박이로 한 때는 낯선 타지에서 처음 접해보는 업무를 맡으면서 외롭고 힘들 때 도 많았지만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고 무조건 실력을 키워야만 한다’는 생각에 밤낮 없이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또 특유의 순발력과 뚝심으로 많은 예산을 확보해 지역 우체국에 시설을 확충하고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등 조직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2009년 전주우편집중국에 소포·통상우편물구분기를 증설할 무렵 이 국장이 국산화를 제안, 당초 설치예정이었던 100억원 대의 유럽산 기계 가운데 95%가량을 국산 기계로 전환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1989년 충청체신청장(공로) 표창 △1990년 체신부장관(우편주문판매유공) 표창 △1999년 모범공무원(국무총리) △2005년 정보통신부장관(예산편성업무유공) 표창 △2009년 지식경제부장관(30년근속) 표창 △2010년 대통령(중앙제안채택)표창 등을 수상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핵심 중앙부서들을 거쳐 왔지만 40년 공직생활의 시작과 끝을 청주우체국에서 한다는 것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과거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성안동우체국(옛 청주우체국) 자리에 ‘청주우체국 기록관’을 세워 시민들에게 청주우체국과 우편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고, 중앙공원과 연계해 청주를 대표하는 지역명소로 발돋움하길 기대합니다.”

1898년 2월 개설된 청주 최초의 행정기관으로 올해로 설립 121주년을 맞는 청주우체국의 수장인 그는 300명의 구성원들과 함께 청주시 상당구와 청원구 15만6000세대의 우편·예금·보험 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청주우체국은 작년 12월말 현재 우편매출액 110억700만원, 예금수신고 4605억원, 정산초회 보험료 11억2900만원, 우편물접수 963만7000통, 우편물배달 2880만3000통에 달하는 등 사업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오래전부터 이 국장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자 목표가 하나 있다. 바로 지방청으로의 승격이다. 충북과 인구나 우편 규모가 비슷한 강원, 전북에도 이미 오래전 지방청이 설립됐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충북에만 지방청이 없어 예산,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는 등 상대적으로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충북에서도 2003~2005년 3년간 충북청을 추진했었지만 당시 도세가 약한 탓에 끝내 무산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년이 흐른 지금 도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주신다면 지방청 승격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봅니다.”

부리부리한 눈에 불같은 성격으로 밖에선 누구에게도 쉽게 굽힐 것 같지 않은 이 국장에게도 늘 미안함으로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앞만 보고 열심히 일만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가정에는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내는 물론 하나 뿐인 아들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졸업식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한 가지를 얻은 대신 다른 한 가지를 잃은 셈이죠. 앞으로 퇴직하면 가족에게 진 빚을 갚는데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가족으로 부인 전교식(61)씨와 아들 이효섭(34)씨가 있으며 취미는 테니스와 등산이다.  글·사진/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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