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섭 중앙경찰학교 교무과장

이동섭 중앙경찰학교 교무과장

(동양일보)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취업, 집, 차, 연애, 결혼 등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기성세대가 만든 틀에 얽매어 구태여 힘들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 젊은이들의 행복 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일본의 기성세대는 이들을 일컬어 ‘사토리 세대’라 한다는데 사토리란 ‘달관 ⦁득도 ⦁깨달음’이란 뜻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요즘 ‘N포 세대’니 ‘욜로(YOLO) 족’이니 하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여 정부가 출산정책을 백방으로 모색 중이나 백약이 무효인 실정이다.

내게도 이런 풍조에 물든 아들과 딸이 있다. 아들은 결혼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딸은 그나마 다행으로 배필을 만나 얼마 전 혼례를 치르긴 했는데 애 낳을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부모가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라 아예 관여 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 전통과 허례허식을 탈피하여 약식으로 실속 있는 결혼식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오던 터에 딸애가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혼이란 것이 상대가 있는 것이라 우리 생각처럼 될지 내심 걱정이 앞섰는데 신랑 측도 흔쾌히 승낙하여 시골의 잔디밭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식이 부모 체면 세우는 행사가 아니라 결혼 당사자의 일이니 초청자도 알아서 하고 결혼준비며 결혼식 행사 진행도 알아서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고 방관자 입장에서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람들은 결혼식에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고 축의금도 일체 받지 않았다.

상대측은 친인척을 비롯하여 지인들을 초대하여 출장식 뷔페로 대접을 하였고 우리는 식장의 꽃장식과 음향시설만 맡아서 결혼식 비용이 총 150만원 들었다.

주례도 세우지 않고 양가의 부모가 결혼 당사자들에게 당부하는 메시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장장 2시간에 걸쳐 결혼식이 진행되었는데 딸애 친구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쾌하게 행사를 이끌어 가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고 손님으로 오신 분들도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들 하는 대로 예식장 빌려 부모 손님들 잔뜩 초청하여 부조금 받아 예식장비와 음식 값 치르고 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니 서운할 것도 없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고 무엇인가 평소 지론대로

해냈다는 뿌듯함 마저 들었다.

예식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좀 서운하겠지만 말이다.

결혼식을 다 끝내고 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더니 ‘어찌 그럴 수 있느냐, 서운하다’고들 하였지만 다들 속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요즘 결혼 풍속도는 전통을 지켜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애들 결혼을 빙자하여 부모들 체면 세우는 일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식장의 정해진 시간에 맞춰 쫓기듯이 예식을 치르고 도떼기시장 같은 식당에서 식권 받아 밥 먹고 오는 것이 진정으로 결혼을 축하하는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 결혼식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게 놔두는 것이 어떨까 싶다.

가까운 친지들만 초대하여 좀 더 알차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결혼식이

되도록 결혼식 내내 함께 하면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자리로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

그나저나 아들이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는 것 같긴 하나 혹여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부모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다.

어쩌겠는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아들아, 너희들 편한 대로 하거라. 괜히 우리가 방해가 되고 싶지도 않고 들러리 설 생각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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