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기해년 새해에 들자마자 씁쓰레하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지역 정·재계에서 이름이 꽤나 알려진 사람들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더욱 그렇다.

‘주인공’은 청주에 적을 둔 (주)도시개발(대표 김현배)과 신라종합건설(대표 이준용·이하 신라).

도시개발 김 대표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중앙회장을 역임한 것이 인연이 돼 1996년 당시 신한국당 비례대표로 14대 국회의원을 승계받았다. 청석학원 설립자인 김영근 옹의 손자로 현재 청주대총동문회장이며 바른미래당 김수민(비례대표) 의원의 아버지다.

대한민국 국회 역사상 첫 탄생한 부녀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딸 김 의원은 20대 국회에 입성한 의원 300명중 최연소(1986년생)이자 디자인 전문가다. 숙명여대 동아리 ‘브랜드호텔’을 벤처기업으로 만들어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브랜드호텔은 과자 허니버터칩과 이마트 자체상품 ‘노브랜드’ 디자인 제작 작업에도 참여해 유명세를 탔다.

신라종합건설 이 대표는 전형적인 기업가다. 극장사업과 건설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지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재력가로 알려져 있다. 충주 출신으로 골프장 운영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해 오고 있으며 지금도 소리소문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84년 청주에서 ‘신라타운’이라는 첫 임대아파트를 신축, 분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한때 정계에서, 재계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나름 성공적인 삶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인 둘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요즘 청주에선 단연 화제의 인물이 됐다.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인 이들의 법정 분쟁 소식이 동양일보 지면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이들의 갈등은 건축 공사비에서 비롯돼 법정으로 비화됐다. 신라는 도시개발이 청주산업단지에 시행한 아파트형공장인 ‘청주테크노S타워’ 신축 공사를 맡았다. 시행사(도시개발)와 시공사(신라)로 만난 것이다. S타워는 연면적 4만2819㎡에 지하1층 지상8층 2개동 규모로 2016년 5월 준공됐다.

실제 이 건물이 들어서기까지에는 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신라가 시공을 맡기 전 청주의 다른 D건설이 지하 터파기 공사를 했으나 공사비 문제로 도시개발과 법정분쟁을 벌였다. 패소한 D건설은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대표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당시 D건설 하도급 업체였던 D중기 등 4~5개 업체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공사비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비는 도시개발측에서 일부를 감액해 정산해 주기로 약속했었다고 D중기 대표 이모 씨는 주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제의 현장에 2차 시공사로 나선 신라는 2016년 5월 건물을 준공한 뒤 공사비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도시개발측이 역시 하자 등을 이유로 공사비 57억원 감액을 주장하자 신라는 총공사비 240억원중 받지 못한 97억원에 대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주법원은 원고 신라의 손을 들어 줬다. 재판부는 지난 10일 도시개발은 신라에게 84여억원(전체 청구금액의 85.5%)을 지급하고 지연이자(6%·14억원)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 후부터 갚을 때까지는 15%의 이자를 물리도록 했다. 소송 비용 역시 피고 85%, 원고 15%를 부담토록 했다.

1심에서 패한 도시개발측이 항소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자부담이 월 1억500만원이 되는 상황에서 확실하지 않은 재판을 질질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클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양심과 상식이 있는 자의 최소한의 도리다.

돈 앞에선 부모형제도, 친구도 없는 야박한 세상이라 하지만 한 현장에서 시공사가 자금난과 대표 사망으로 폐업하고 다른 시공사는 공사비 미지급에 맞서 법정분쟁을 벌여야 했다면 어딘가는 분명 문제가 있다.

조선 정조때 흉년이 들어 기아에 허덕이던 제주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으로 쌀을 사서 나눠준 거상 ‘김만덕’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우리 사회에서 남에게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마음의 상처를 주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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