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곳에서 피는 꽃

꽃동네 사랑의연수원 교육관.
 

(동양일보) 주님, 달콤한 하루의 문을 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마신 술과 어제 만난 사람들과 어제 했던 많은 일들이 결코 삿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오늘 하루도 책을 읽고 길을 나서며 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매 순간이 앙가슴 뛰고 값진 결실로 이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주님, 새새틈틈 제 곁으로 다가와 몸과 마음을 뒤흔들며 유혹하는 붉은 악마의 기운을 느낍니다. 나태와 거짓과 욕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제게 지금보다 더 가혹한 채찍을 주십시오.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듬게 해 주세요. 가야할 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정의로운 일 앞에서 뒤돌아서는 일이 없도록, 나약한 거리의 이웃을 결코 외면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남은 시간, 햇살 가득한 한낮의 짧은 시간에 삶의 여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백을 통해 사랑이 깃들면 좋겠습니다. 삶의 향기 가득하도록 해 주십시오….

때로는 이 같은 나의 기도마저 사치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울컥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두리번거린다. 음성 꽃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와서도 그랬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무극천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많았다. 수십 년을 이 동네 저 동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밥만 얻어먹는 거지들의 움막이 있었다. 이곳에서 거지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최귀동 할아버지. 거지들과 함께 밥을 얻으러 다니고, 함께 움막에서 잠을 자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지만 최귀동 할아버지는 다른 거지들과 달랐다. 굶주린 거지들을 보듬고, 죽어가는 거지들을 온 몸으로 보살피며 사랑을 실천했다.

1976년 9월, 무극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와 할아버지가 만났다. 동네 사람들에 의해 다리 밑에서 쫓겨나 용담산 밑에 움막을 치고 생활할 때였다. 움막 안에는 얻어먹을 힘조차 없어 배고픔과 병마의 늪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18명 있었다. 오웅진 신부는 주머닛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 한 포대를 샀다. 손수 벽돌을 찍어 다섯 칸 부엌, 다섯 칸 건물에 이들을 입주시켰다.

음성꽃동네 본동. 꽃동네가 시작될 때 처음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음성꽃동네 본동. 꽃동네가 시작될 때 처음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거지가 아니었다. 무극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본 징용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실신하다시피 한 모습을 보고 놈들은 정신병으로 착각해 풀어주었다. 고국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은 아편 중독으로 죽고 가정은 파산되어 갈 곳이 없었다. 무극다리 밑에 거처를 정했다. 오갈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어 죽어가는 걸인들을 위해 40여 년 마을을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 나눠주었다.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음성 꽃동네의 출발은 이렇게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만남은 언제나 신비하다. 운명이다. 불멸이다. 그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인생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긴 여행이라는 것, 그 여행길에서 만나는 그 어떤 인연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웅진 신부와 최귀동 할아버지의 만남을 통해 음성 꽃동네가 탄생했다. 이곳에는 상처받은 수많은 생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모두가 거리의 거지였고 병자였다. 가족도 없고, 오갈 곳도 없으며,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머무를 곳이 있고, 먹을 밥이 있고,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그래서 최귀동 할아버지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고 했다. 나의 삶도 이와 뭐가 다를까.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다.

꽃동네에 가면 망태기와 깡통을 들고 있는 ‘거지 최귀동’ 동상이 있다. 평생을 거지와 함께 나눔과 배려를 실천했던 분의 뜻을 기념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 시설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복지정책이 한 발 앞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했던가. 몇 해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했다. 당신은 그곳에서 가장 낮은 의자에 앉았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정신과 가난한 자들의 삶이 숭고했기 때문이다.

음성에서는 매년 품바축제를 개최한다. 가난했던 그 시절의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조명하고 신명과 웃음을 선사해주는 축제다. 이 또한 거지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인류애와 박애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짧은 시간 꽃동네를 돌고 나오니 내 마음이 편치 않다. 라 그란데 벨레짜(La grande bellezza). 숭고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다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긴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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