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결혼해보니 어떻던가요, 가족 호칭이?”

한 여성 단체 채팅방에 ‘가족 내 성차별 호칭’에 대해 질문이 던져졌다.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서로 이름을 부르다가 결혼이란 울타리를 넘으면 ‘이상한 호칭’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에 대해 허심탄회 털어놓는 자리다.

“중학생 시동생에게 도련님이라 부르라는데 그 말이 입에 붙지 않았어요.”

“저는 시동생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남편은 우리 언니에게 ‘처형’이라 불러요.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맞아요. 처가 형제들을 처남 처제로 부르면, 남편 형제도 ‘부남(夫男)’ ‘부제(夫弟)’로 불러야하는 것 아닌가요?”

“친정에서는 남편을 ‘김 서방’으로 부르는데 시댁에서는 저를 ‘에미야’하고 부릅니다. ‘에미야’가 애낳은 사람 높여주는 말인가요?”

결혼 후 가족 내 호칭이 차별적이며 성별 비대칭적이라고 말들이 많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은 ‘국민생각함’을 통해 ‘일상 속 호칭 개선방안’ 설문조사를 실시, 총 8254건의 국민의견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의 93.6%가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라는 호칭을 바꾸자고 답했고, 남성 응답자도 절반이상인 56.8%가 ‘바꾸자’고 응답했다. ‘도련님·서방님·아가씨’라는 호칭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조사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60.7%가 ‘처남·처제’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부남·부제’를 꼽았으며, 54.0%는 ‘00씨’로 이름을 부르자고 했고, 16.0%는 ‘동생’ 또는 ‘동생분’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에는 ‘00씨’로 이름을 부르자는 응답이 53.3%로 가장 많았고, ‘부남·부제’는 40.1%, ‘동생·동생분’은 27.2% 순이었다.

또 시집·시가를 높여 부르는 ‘시댁’이라는 단어처럼 처가를 높이는 말로 ‘처댁’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 쓰자는 방안에 대해서도 여성의 91.8%, 남성의 67.5%가 각각 찬성했다.

가족 내 불평등한 호칭에 대한 갈등이 계속되자, 마침내 정부가 대안을 만들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호칭 양성평등을 담은 2019년 건강가정 기본계획(2016~2020) 시행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성별에 따라 남편과 아내 가족을 부르는 호칭이 다른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을 알아보는 설문조사가 시행될 예정이다.

설문은 가족 호칭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지와 선호하는 대안 호칭이 있는지를 묻게 된다.

‘시댁’과 ‘처가’라는 호칭에 문제가 있는지를 묻고, 대안으로 ‘시댁’과 ‘처댁’, ‘시가’와 ‘처가’ 등이 적절한지 의견을 구한다. 또 남편 동생을 ‘도련님’이나 ‘아가씨’로 높여 부르지만,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르는 것에 대해 똑같이 ‘○○씨’, ‘○○ 동생’으로 부르는 등 대안에 대한 선호도도 조사하며, 남편의 부모님은 아버님, 어머님으로 부르고 아내의 부모님은 장인어른, 장모님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개선할 필요가 있는지 조사한다. 대안으로는 똑같이 아버님, 어머님 등으로 부르는 방안도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여가부는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개최해 올해 상반기 안에 가족 호칭 개선 권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여가부는 권고안이 나와도 국민들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현실에 적합한 호칭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가부의 발표는 차별적 호칭 개선 작업에 첫걸음을 뗀 단계다. 토론회 공청회를 통해 새 호칭을 결정한다 해도 호칭 대안을 확산시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언어란 오랜 생활 속에서 습득되고 굳어진 문화이기 때문에 선언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바로 사용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호칭보다 가족 내 평등문화 조성이 우선일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