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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⑦
동양칼럼/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⑦
  • 동양일보
  • 승인 2019.01.2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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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퇴계가 지금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선유동에 9개월을 체류했으며 쌍곡에서도 노닐었다. 송강도 쌍곡에서 노닐었다. 최치원이 쌍곡에 머물다갔다. 율곡이 청주목사시절 충북 괴산군 사리면 화산리 오룡동에 다녀갔다. 김삿갓도 전국을 주유하다가 오룡동서당에서 시를 지었다. 2027년 9월 9일 중국 시진핑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탐방한다.

이중에 진실은 최치원이 쌍곡에 머물다갔다는 전설에 대한 기록이다. 정재응(鄭在應 1764~1822)의 『잠재집』,「차주선생심백록동운 6수」 중, 제3수 3~4구이다. “면사고운지, 쌍계명불와(緬思孤雲址, 雙溪名不訛)” 즉“고운선생의 유허지를 생각하니, 쌍계 그 명성이 어긋나지 않네.”나머지는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기록해놓으면 후인들이 그걸 보고 기록에 있다라고 한다는 사실은 진실이 된다.

다음은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신문 “우리 동네 숨겨진 이야기2. 괴산의 구곡” 에 실린 내용이다. “퇴계 이황이 송면 일원의 비경에 취해 아홉 달 가량 머물며 구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 이는 진실도 아니고 스토리텔링도 아니다. 오류와 허위다. 다음은 2018년 11월 16일 신문기사다. “동양화 같은 비경을 자랑하는 충북 괴산의 쌍곡구곡. 조선시대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풍류를 아는 수많은 문인이 이곳에서 노닐었다고 전해진다. 선유구곡은…조선 시대 유명한 학자인 퇴계 이황은 칠송정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선유구곡의 경치에 반해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구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는 없어지고 아름다운 산천만이 남아 있다.” 꿈속의 이야기 몽유소설수준이다. 퇴계를 팔아서 관광객들에게 선유동과 쌍곡을 팔고 싶은가. 애향심을 존중한다. 진실도 팔자.

위와 같이 된 연유는 1969년 김종륜이 집필한 『괴산군지』 463~464면에 있다. “이조초기에 거유 퇴계 이황이 칠송정에 있는 함평이씨가(咸平李氏家)를 심방차(尋訪次) 왔다가 근방의 산수가 절묘하고 풍광이 명미(明媚)함을 못내 사랑하여 소요두유(逍遙逗留)하기 9개월에 이르렀으며 이 가경은 가히 신선이 하강하여 노닐던 곳이라 하여 선유동문을 비롯하여 구곡의 이름을 지어 각자케 하였으나…”라고 했다. 김종륜은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위 내용을 검증없이 49년동안 인용했다.1994년 최기수, 『서울의 경(景)과 곡(曲)』,172면. 1997년 『괴산지명지』, 541~542면. 2005년 『문화유적분포지도-괴산군』,272면. 2009년 『청천면지』 198~199면. 그외 각종 향토지, 서책, 인터넷에 위의 내용을 문장만 약간 바꿔서 실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내용의 시비진위를 명판해야한다. 지금 웬만한 학술정보는 올라 있다. 다음 두 편의 논문에서 상론했다. 2001년 『중원문화논총』제5집,「괴산군 선유동의 전설적․선취적(仙趣的) 인물 이녕(李寧)의 가계와 생애」. 2002년 『중원문화논총』제6집, 「선유팔경의 ‘화양구곡․선유구곡’에로의 분화변천과정과 기타 관련문제」. 20년이 다 돼간다.

퇴계연보를 보자. “명종3년(1548년 48세) 1월 외직을 구하여 단양군수가 되다. 5월 구담(龜潭)을 유람하다. 11월 풍기군수가 되다.”“명종14년(1559년) 3월 배를 타고 귀향하는 도중 구담에서 이지번, 단양군수 황준량(黃俊良)과 함께 유람하다.” 퇴계는 단양군수를 재임했던 10개월간만 충북에 머물렀다. 선유동에 9개월을 머물렀다면 연보에 당연히 기술했다. 실존 인물의 성명을 사용하여 스토리텔링을 하면, 진실을 근거로 하지 않은 경우, 기만내지 허위라는 비판을 받는다.

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중용』에 “박학 심문 신사 명변 독행”을 강조했다. 창의적 학문은 식견(識見)이 좌우한다. 식견은 축적된 지식을 토대로 어떤 대상을 올바로 감식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박학다식해야 추리응용력이 향상되고 고도의 식견이 확립된다. 그러면 선악시비진위를 판별할 수 있고 창의융합교육학문도 저절로 된다.

율곡은 16세기에 이미 4차산업혁명시대 할일을 실행했다. 즉 그는 요즘 인터넷과 같은 영감인터넷과 용기(龍氣)지능을 활용하여 직접 가지 않고 전국적으로 통신하며 구곡(九曲)을 설정케 했다. 필자가 7번 째 글을 쓰는 이유이다.

퇴계는 단양군수시절엔 선유동과 쌍곡을 몰랐을 것이다. 선유동에 온 적이 없다. 정말? 진실이 아니면 역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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