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철 전 부여군홍산면장

(동양일보) 어느 직장 어느 누구에게나 잊혀 지지 않는 선배가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도 오래 전 퇴임하신 선배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 이따금씩 직원들과 선배 얘기를 할 때면 이분들의 얘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곤 한다.

그 중의 한 분은 내가 복지부서에서 과 서무를 담당할 때 모셨던 Y과장님이다.

평소에도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부하 직원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던 분으로, 과장님께서는 우리들의 실수로 상사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을 때에도 얼굴색 한 번 바뀌는 일이 없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엔 아무도 알아차리질 못했었다.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직원들이 미안한 마음에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오히려 큰소리를 내는 것보다 몇 배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었다.

그 과장님의 평직원 시절 일화가 있다. 과장님께서는 사업부서에, 친구는 회계부서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공사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하자가 있어 감사에 지적을 받게 되었는데, 둘이서 서로 “내가 잘 못한 일이다”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감사관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그 감사관은 내무과장에게 찾아가 ‘내 잘못도 남에게 미루는 판인데 이런 아름다운 동료애가 어디 있겠느냐’며 간단한 주의 정도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도 역시 후배 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 과장님이셨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90년대 말 부여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업무의 실무자였던 나는 몇 개월을 사법기관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기나긴 날들의 조사가 끝나갈 무렵 수사관 한 분이 나에게 말했다, “돌아가면 과장님 잘 모시세요.”

알고 보니 J과장님께서 직원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당신 혼자서 책임을 지게 해 달라고 눈물로 하소연 하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과장님이나 우리 실무자들이 책임질만한 부정한 일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엉뚱하게도 지역 정치 싸움에 휘말린 사건이었지만, 과장님께서 위기의식을 갖고 부하직원들만이라도 살려 보겠다고 하신 말씀이라 생각하니 순간 찡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직생활을 해 오는 동안 가끔은 이분들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잡아 보곤 했다.

똑같은 상황에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그러나 아직도 쉽게 흥분하고 마는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 때문에 상처받는 동료들이 많은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현상 또한 마찬가지다.

분명 소시민의 눈으로 봐도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일들이 많은 것 같은데 누구 한 사람 “다 내 잘못이오”하는 이 없으니 그 선배님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새삼 그리워진다. 올 해엔 우리 모두가 “내 탓이오!” 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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