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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2019 설 콩트 / 눈 맞은 날
[설특집] 2019 설 콩트 / 눈 맞은 날
  • 동양일보
  • 승인 2019.01.31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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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설이 낼 모래라 그런지 ‘설날’ 노래가 방송마다 등장한다.

이 ‘설날’ 노래를 듣다가 명석인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왜 설 전날을 ‘까치설날’이라 하는가? ‘까치추석’은 없지 않은가? 또 설 전 날을 ‘작은 설날’이라고도 하는데 ‘작은추석’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명석인 반 친구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그 친구는 별말을 많이 아는 애다.

“얼래, 너 희한한 놈이네. 난 고등학교 이학년 되도룩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는데 말여.”

“그래서 너도 모른다는 말여?”

“모르니까 그러제. 이따 학교 끝나구 집에 가서 니 엄마아버지한테 물어봐라!”

해서 명석인 집에 와서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글쎄다 모르겠다. 아버지한테 물어봐라!”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까치가 사람과 가깝게 한동네 살았던 사이니까 그런가? 그리구 해로운 벌레를 잡아먹는 이로운 새였구. 또 아침에 종달종달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길조라 해서 그런가? 여하튼 이렇게 사람과 가까운 사이니까 대접해서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 했나?”

“그렇게 치면 참새가 사람하구 더 가깝잖어요. 까치보다 숫자두 더 많구 그리구 사람이 사는 초가집 처마 속에다 알 낳구 살았다면서요?”

“그랬지. 근데 왜 ‘까치설날’ 이라구 했을까?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할아버지께 여쭈어 봐라! 내일 설 쇠러 시골집에 갈 거 아니냐.”

“할머니는 잘 모르실까 옛날 말 많이 아시던데요?”

“그래두 할아버진 전엔 선생님 아니셨냐.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그렇군요 참.”

그래서 명석인 이튿날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께 물었다.

“우리 장손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되니 의문 나는 것도 많구나.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하는 ‘설날’ 노래 첫줄의 ‘까치설날’이 의문난단 말이지? 그래 내 아는 대로 일러 주마.”

그러더니 할아버진 자리를 고쳐 앉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이 ‘설날’ 노래가 나오기 이전엔 ‘까치설날’ 이라는 말이 없었다. ‘아치설날’ 이라 했지. ‘아치’란, 옛 우리말로 ‘작다’라는 뜻이니까 ‘작은 설날’인데 이 날은 설 하루 전날인 섣달 그믐날(음력 12월 말일)을 말한다. 그런데 이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요? ‘아치’ 와 ‘까치’는 그 말의 뜻이 서로 엉뚱한데요?”

“소리가 비슷하지 않느냐. 실제로 아랫녘(남서쪽) 섬 지방에서는 조수 즉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게 가장 적을 때인 음력 22일을 ‘아치조금’이라 하는데, 경기도의 바다지방에서는 이 날을 ‘까치조금’이라 한다는 게야.”

“그래요?”

“내가 앞에서, 이 ‘설날’ 노래가 나오기 전에는 ‘아치설날’(작은 설날) 이라구 했지 ‘까치설날’이란 말은 없었다구 했지?”

“예”

“그건 말이다. 이 설날 노래의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한 분이 윤극영 선생인데, 이분은 원래 이북 출신 서울 분으로 이 노래를 1927년에 지었다는구나. 그때 가까운 경기도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라는 거지.”

“그럴 거 같은데요. 그런데 그럼 왜 이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날’ 이라 했어요?”

“그건, 이튿날인 정월 초하루가 설이니까 이보다 한 단계 작은 설이란 뜻이겠지.”

“한 단계 작으면 ‘작은 날’이라 하지 왜 ‘작은’ 에 ‘설’ 또는 ‘설날’ 이라 붙였나요. 같은 명절인데도 ‘작은 추석’이란 말은 없잖어요?”

“그건 말이다. 섣달그믐에 세배를 다녔기 때문이야. 세배란 원래 새해 즉 정월 초하룻날인 설에 하는 것 아니냐. 헌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날 ‘묵은세배’라고 해서, 한 해 동안 고생하시고 고맙다고 집집을 돌며 어르신들께 절을 올렸지 설날처럼. 까치설빔을 입고 말이야.”

“까치설빔요?”

“그래, 까치설날에 아이들이 까치저고리와 까치두루마기를 차려 입는 설빔이다. 이 옷들은 색동옷이라 해서 다섯 가지 색깔 즉 청색, 황색, 적색, 백색, 흑색 빛깔로, 저고리와 두루마기소매에 이어 대는 동강의 조각을 층이 지게 만든 어린이가 입는 옷이야. 색동저고리, 색동두루마기라고도 하지.”

“이 색동저고리 색동두루마기 는 까치설빔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까치설날에나 입는 것 아녜요. 근데 왜 색동저고리 같은 색동옷은 설날에 입는 옷의 대명사가 됐지요? 그게 이상하네요?”

“글쎄다. 그건 아마 이래서가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살든 못 살든 아낀다는 것이 몸에 배 있어서, 원은 설빔으로 장만한 것이지만 까치설에도 비록 묵은세배일지언정 세배를 해야 하니 헌 옷을 입고 할 수는 없고 설빔으로 해놓은 새 옷을 입고 하면 설에 하는 세배의 예행세배도 된다는 공통적인 생각에서 말이야. 그리구 있는 집에선 더러 까치설빔과 설빔을 따로 입히기는 했지.”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인제 많이 이해가 되네요. 고맙습니다, 인제 편히 쉬셔요.”

명석이가 일어나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며,

“얘, 네가 말한 그 설날 노래는 일절인데, 까치설날과 설날 그리고 몸치장 즉 머리에 댕기 들인다는 것과 설빔 즉 새로 사온 신발에 대해서 부른 것이다. 댕기 아냐 댕기? 지금은 여자애들이 그런 거 안 해서 잘 모를라. 여자들이 길게 땋은 머리끝에 드리는 가지각색의 끈이나 헝겊인데,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명절날 머리에 댕기드린 여자애들 참 멋들어졌지. 나 어릴 적 빨간 댕기드린 네 작은고모할머니 생각난다. 그리구 검정고무신 아냐. 지금은 그런 거 안 신어서 잘 모를라. 설빔으로는 옷과 신발이 대표적인데, 그때는 고무신이지 고무신, 흰 고무신과 검정고무신이 있었는데, 대개가 검정고무신이면 얼싸 좋다지 뭐. 근데 너 이 설날 노래 이절은 모르냐?”

“알아요. 불러볼게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 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그래 잘 부른다. 이 이절에는,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들은 노랑저고리를 많이 입었다는 얘기다, 실지로 그랬어. 네 할머니 처녀 때도 화사한 노랑저고리를 입었으니까.”

“아니 할아버지가 할머니 처녀 때 일을 어떻게 아셔요. 같은 한 동네 혼인 하셨나요?”

“아, 아, 아 아니다 아녀. 그놈 참 별르므걸 다 물어보네….”

할아버지는 잠시 당황하는 말투더니 금세 표정을 바꾸면서 얼른 말을 잇는다.

“그리구 어린 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었다는 게 여기두 나오지? 실지루 그랬어, 온 동네가 색동저고리 물결이었으니까. 어머니아버지들도 호화로운 옷으로 차려입으시곤 자식들이나 동네아이들의 세배를 받고는 흐뭇해 하셨구.”

여기서 다시 할아버진 명석일 쳐다보면서 묻는다.

“삼절두 아냐?”

“예”



우리 집뒤 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그래, 삼절두 아는구나. 그런데 너 널이라는 거 아냐?”

“그럼요 ‘널뛰다’ 할 때 널 말이잖아요. 전 실지룬 못 봤지만 사진으로 보고 얘긴 들었어요. 그거 여자들 놀이잖아요?”

“그렇지. 설날, 추석날, 단옷날 같은 때 여자들이 즐기던 놀이인데 특히 설날에 많이들 뛰었지. ‘널뛰다’하면 설날이 연상되니까. 그런데 말이다. 이 ‘널’이라는 건, 나무를 판판하게 킨 널빤지를 말하는데, 시골에선 흔히 ‘널판대기’ 라고 한다. 이 기다란 널판대기 가운데쯤에다 둘둘 말은 가마니나 짚단을 괴어 놓고 양 쪽에 한 사람씩 올라가서는 서로가 냅다 발을 구르면 한 쪽이 공중으로 휙 솟아오르는데 이런 행동을 번갈아 하는 놀이다. 헌데 말이다 공중에 솟은 사람이 너무 높이 올라가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수가 있고 또 이 솟구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널 길이보다 조금 긴 끈을 허리 높이보다 조금 높게 드리워서는 이걸 한 손으로 붙잡고 뛰기도 한단다. 평소 운동량이 부족했던 옛날 처녀들에게는 썩 좋은 체력단련 기회도 돼서 즐겼던 놀이야. 이러한 널을 뛸려고 뒤뜰에다 놓았다는 내용인데, 이건 앞마당이나 동네 공터에 차려놓는 일이 많았지. 그리구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은 설상의 음식을 먹고 호두와 잣 같은 햇과일도 먹으면서 갖다놓은 널을 뛰기도 하는 이러한 것들이 참 좋다는 것이지. 그렇지 좋구 말구지! 우리 같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다 겪어 본 장단이제.”

“참 재밌었겠네요. 근데 왜 그런 것들이 없어졌을까요?”

“그건 너희 같은 젊은 애들이 더 잘 알 텐데. 요새 새바람을 많이 찾지 않느냐 그 탓이 많제. 안 그러냐?”

“글쎄요. 여하튼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사라져가는 게 아쉬워요.”

“참 어른 같은 소릴 하는구나. 그건 그렇구, 너 이 노래 사절두 아느냐?”

“그럼은요. 불러볼 게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집 저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참 신통하구나. 사절까지 아는 애들 드물라. 애국가도 학교에서 다 사절까지 가르쳤겠지만 어디 다 그러냐 일절만으로 그치지. 요샌 사절까지 부르기로 해서 무슨 무슨 애국가를 불러야 할 행사 때는 다 불러야 하지만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로 대신하지 실지로 부르는 사람 몇 안 될라. 그런데 일 년에 한번 있는 설에나 방송을 타고 나오는 설날노래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내도 애들 가르칠 때는 사절까지 가르쳤고 나 역시 사절까지 배웠지만 지금에 와서는 일절만도 긴가민가한데 우리 장손이 참 대견하다.”

“너무 그러지 마셔요. 저도 나이 들고 설풍습도 점점 사라지면 더 할지 모르지요 뭐.”

“그래 네 말도 옳다. 근 그렇고 사절에서 알다시피 정말로 평소에는 그 무섭던 아버지도 설날엔 입가에 웃음기를 띄우면서 웬만한 잘못도 그냥 넘기는 순하기만 한 양반으로 바뀌고, 건듯하면 칭얼대기만 하던 동생도 먹을 것이 많고 즐겁기만 하니까 울지도 않고, 온 동네 집집에서는 윷놀이 하고 널뛰는 소리가 들리니, 이러한 설날이 참으로 좋기만 하다. 는 내용 아니냐. 정말 그렇지 그렇구 말구. 그때가 그립구나!”

“할아버지, 설날 하면 특별히 뭐 떠오르는 것 없으셔요?”

할아버진 그 소리를 듣자 입가에 잔주름을 모으고 나서 빙긋이 웃어 보이더니,

“있지!”

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해 설날은 눈이 푸실 푸실 내렸느니라. …”

그리고는 ‘아참, 내일 설 준비를 해야지.’ 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신다.

명석인 할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에서 조금 아까, ‘할머니와 한동네 혼인하셨어요?’ 했을 때,‘아, 아, 아 아니다 아녀. 그놈 참 별르므걸 다 물어보네….’ 하고 당황해 하던 장면을 발견했다.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하다 이튿날인 설날에 차례 상을 물리고 어른들께 세배를 마치고 나서 명석인 아버지의 옷소매를 잡고 나와서 건넌방으로 들어가 물었다.

“어저께 할아버지가, ‘그해 설날은 눈이 푸실 푸실 내렸느니라.’하고 는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 아빠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혹시 아셔요?”

그러자 아버진 쿡쿡 웃으며,

“알지. 그건 말이야 니 할머니한테 들은 얘긴데, 할아버지 총각 땐데 그해는 설에 눈이 푸실 푸실 내렸단다. 그래서 그 눈을 맞으면서 여기서 이십 리나 되는 고모할머니 시어른께 세배를 갔는데 그 동네 어귀에서 널뛰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았더니 울안에서 노랑저고리 입은 처녀가 솟아오르더라는 거야. 그래 그러는 걸 구경하다가 그 처녀와 눈이 마주쳤다는 거지. 그래서 요샛말로 서로 필이 통해서 결혼하게 된 거란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설에 하늘에서 눈이 내렸는데, 이 ‘눈 맞은 날’이 서로 ‘눈 맞은 날’이 돼서 두 분이 결혼하게 된 거라구요?”

“그렇지, 그렇지!”

두 부자지간이 한바탕 크게 웃어젖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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