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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우리 가족의 가장(家長)은 누구인가?
동양칼럼/ 우리 가족의 가장(家長)은 누구인가?
  • 동양일보
  • 승인 2019.02.0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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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동양일보) 설 연휴의 막바지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를 뒤돌아 보면, 설날은 ‘설빔’이라는 새 옷과 새 신발을 얻는 날이었고, 약과, 식혜, 강정, 다식 등 특별한 설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날이었다. 설날 모이는 친지가 족히 30명은 넘었고,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챙겨주는 정이 있었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마을 어르신들께 세배를 다니는 것도 큰 재미였다. 요즘에는 세배의 대가로 세뱃돈을 받는 것이 일상화 되었지만, 당시만 하여도 다과 또는 과일을 받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어쩌다 부잣집 어르신께서 주시는 세뱃돈을 받으러 더 열심히 세배를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설 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우선 ‘설빔’의 추억이 사라졌다. 약과, 식혜, 다식 등 전통 다과가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않다. 제사상에 올랐다 내려오기만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지 오래다. 제사에 참여하는 가족도 단출해졌고, 더 이상 이웃 어르신들께 세배를 다니지도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명절 때마다 언론에서는 가족 간에 서로 묻지 말아야 할 말로 결혼, 취업 등을 권고한다. 설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매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다는 얘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이러한 설 풍습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이러한 변화를 “전통 붕괴”, “가족 해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대체로 ”권위주의 해체“, ”열린 가족“을 통해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권위주의가 청산되고 있으니 가족문화에서도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배겨날 재간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점점 개인화, 분절화 되고 있다. 가장(家長)의 권위는 사라졌고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취급 받는다.

그럼 가정에서 가장(家長)을 몰아낸 그 자리에 누가 앉았을까? 새로운 가장(家長)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장(市場)이다. 오랜 세월 가족문화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수행하였던 가장(家長), 전통, 관습의 자리에서 이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돈’이다. 이를 두고 어떤 학자는 ‘가정의 상품화 현상’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각 가정에서 설날 빚었던 약과, 식혜, 다식과 같은 다과를 지금은 시장에서 사온다. 관습과 문화는 사라졌다. 오랜 세월 가정이 맡아왔던 육아 및 노인부양기능은 어떠한가? 이들도 시장에서 사고판다. 산후조리원, 영육아원, 어린이집, 요양원 등이 그것이다. 좋든 싫든 이와 같이 돈으로 떼우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시장이 가정경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경제의 새 주인인 시장(市場)은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별로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단순히 시장경제 논리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설 명절의 특유한 음식문화나 놀이문화가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아니다. 시장 실패의 파열음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사교육 시장이 그렇다. 자식의 성공을 위한 부모의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나서지만 해결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시장의 육아와 노인부양기능은 또 어떠한가? 육아시설의 부족으로 맞벌이 부부의 애를 태우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복지예산은 정부의 재정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시장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얼핏 보기에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시장경제의 우수성이 엿보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합리적 개인’이 반드시 ‘합리적 사회’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과 ‘구성의 오류’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들 이론에 의하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사회는 얼마든지 비합리적인 결과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왜? 시장은 나무 하나 하나는 보지만 숲 전체를 보는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리고 그 실패를 구원하기 위해 보통 정부가 구원투수로 등판한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규제와 강제를 동반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시장과 공동체의 자율성을 떨어뜨린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구원투수를 정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용도 폐기된 가족·지역·사회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땅에 떨어진 가장(家長)의 권위를 바로 세워 가족 공동체를 확립하여 시장실패를 보완하게 하는 것이다. 가정은 사회 구성의 근간이 되는 조직이기에 그렇다. 『신뢰』라는 저서에서 후쿠야마 교수가 건전한 가정이 신뢰 사회의 근간이라는 지적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설 연휴 마지막 날에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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