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 논설위원/유원대 교수

(동양일보) 지역개발 정책의 오랜 논쟁중의 하나가 장소의 번영이냐, 사람의 번영이냐는 문제이다. 이 논쟁은 낙후지역에 각종 정책과 사업을 추진할 때, 그 목표와 수단을 장소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살고 있는 사람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낙후지역이나 쇠퇴 지역 등 특정한 장소에 초점을 맞추어 지역개발을 도모하는 정책은 장소 번영정책이며, 특정 계층에 대한 보조금이나 교육지원 등 사람에 초점을 두는 정책은 사람 번영정책이다.

미국에서의 사례를 중심으로 장소의 번영과 사람의 번영이라는 두 접근방식의 차이를 제시한 바 있는 강현수교수의 주장을 일부 소개한다. 1960년대 미국인 학자 루이스 위닉은 그간 대부분의 지역개발정책이 장소의 번영을 지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장소를 기반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왔으나,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이 정부혜택을 더 받게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1980년 대통령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장소지원 정책을 비판하고 주민들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장소의 번영 대신 사람의 번영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정부 정책의 궁극 목표는 당연히 사람의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의 번영이 궁극적 목적인데 장소의 번영이 꼭 사람의 번영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낙후지역 주민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장소에 기반을 둔 정책 지원을 시행하나, 장소에 투자된 자원이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빈곤 지역에도 부유계층이 있고, 잘 사는 지역에도 저소득층 사람이 거주한다. 결과적으로 장소 번영정책은 빈곤 지역에 사는 부유계층을 돕게 된다.

지역에 일자리 창출하는 정책의 결과 새로운 고용이 창출된다 하더라도, 혜택을 보는 자는 지역 내 기존 숙련 취업자이거나, 외부인일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지역만을 지원함으로써 더 살기 좋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을 낙후 지역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낙후지역의 빈곤 사람들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에 비해 상당히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결과적으로 장소 기반정책은 형평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장소 번영 지지자들의 반론도 있다. 사람 번영정책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선호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서민 주택임대료 지원제도는 빈곤 동네의 주민들을 주거환경이 더 낳은 지역으로 이주시키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임대료를 지원한다고 해도 빈곤한 사람이 생활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벗어나 부유한 지역으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부자 동네에서의 장소 기반 생활환경이나 공공서비스 수준이 높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한다. 결국 저소득층 주민들이 집중되어 거주하는 지역에서 빈곤 지역을 쉽게 벗어날 수 없어서 장소 지원정책이 여전히 필요하다.

낙후 지역을 포기하고 그곳 주민들의 이주를 촉진하는 정책은 거주지 선택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장소와 지역사회의 가치는 강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개인별 빈곤수준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면, 사람을 지원하는 정책보다 장소를 지원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또한 장소와 사람은 분리될 수가 없으며, 장소와 사람 사이를 분리하는 것은 장소와 사람을 상품화시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소의 번영과 사람의 번영을 구분하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도 잃고 장소도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장소 기반 정책을 비판하여 사람의 번영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논리를 실제로는 한 장소를 몰락시키면서 다른 장소를 성장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수행되어 왔던 국토균형발전 정책, 도시재개발정책 등은 대부분 장소 번영정책들로써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장소와 사람의 번영을 동시에 촉진시킬 수 있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장소를 지원하는 정책과 사람을 지원하는 정책이 결합되는, 사람과 장소의 통합정책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장소 번영정책에 입각하여 낙후지역에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주민들의 생활환경과 문화 복지, 역량강화를 동시적으로 개선해 가는 통합적 정책이어야 한다. 지역개발 정책은 장소 번영뿐만 아니라 거주하는 주민을 위한 고용창출, 사회적 자본 확충, 공동체 육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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