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설을 쇠고 나니 그냥 2월이 와버렸다.

엊그제가 새해 아침인 것 같았는데, 1월을 채 느끼기도 전에 훌쩍 2월이 지나가고 있다. ‘벌써?’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2월은 ‘벌써’라는 부사가 유독 잘 어울리는 달이다. 그래서 2월이면 오세영 시인의 시가 공감을 얻는가 보다.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후략)-오세영 ‘2월’

시인의 시처럼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의 아침은 왠지 을씨년스럽고 썸성그르다. 국어사전에 ‘썸성그르다’는 ‘썰렁하다’의 충청도 방언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아무래도 이런 아침의 느낌은 ‘썰렁하다’기보다는 ‘썸성그르다’가 제격이다. 충청도 사람들에게 ‘썸성그르다’는 ‘썰렁하다’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국어학자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영화 ‘말모이’에서 전국의 방언들이 더 사라지기 전에 사전에 담고자 애쓰던 눈물겨운 과정을 본 터라 사실 표준어 못지않게 사라져가는 방언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져서 요즘은 일부러 사투리를 써보곤 한다.

어쨌거나 2월의 아침은 그렇게 썸성그르다.

아직 봄이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이라고 하기엔 햇빛이 부드러운 어정쩡한 시기. 1년 중 다른 달에 비해 날짜 수까지 적어서 꽉 채우지 못한 2월은 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서성이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2월도 그랬다. 방학책을 받아들고 흥분이 되어 집으로 뛰어가던 겨울방학은 왜 그리 짧게 지나가는지, 훌쩍 다가온 개학날 아침, 전날 밤샘을 하면서도 다 마치지 못한 숙제더미를 끌어안고 학교를 가려면 늘 발걸음이 무거웠었다. 학교를 가서도 재미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교과서의 진도는 다 끝난 상태, 선생님들도 새 학교로 이동준비 하랴, 새 학기 준비 하랴, 장부정리 하랴, 아이들과 제대로 눈길을 맞추지도 못한 채 봄방학을 맞는다.

그러니까 불과 10여일만 등교하는 2월은 공부와는 상관없는 달, 그저 징검다리처럼 점찍고 건너가는 달처럼 초등학교를 지나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도 허랑허랑했다.

어른이 되었어도 2월은 모자란 달이었다. 입춘이네, 대보름이네, 밸런타인데이네 기분을 전환시키는 날들이 끼어있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족한 날짜는 씁쓸함을 줄 뿐이다. 월급을 타는 샐러리맨들에겐 일하는 날짜가 줄어드는 것이 잠깐의 기쁨이지만, 매출이 줄어드는 자영업자들의 고민은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러나 ‘벌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 2월에 시인은 꽃을 보라고 권유한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느냐고 한탄하지 말고, 벌써 꽃이 피었음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오세영 시 ‘2월’중.

그렇다. 2월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달이다. 딱딱한 땅이 부드러워지고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 흐르는 경계의 계절이다. 어쩌면 짧은 달이기에 더 이른 꽃을 보고 더 빠른 새싹을 볼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꽃맞이를 위해 2월은 대청소를 시작할 일이다. 겨우내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책장과 서랍장을 정리하고, 문틀에 쌓인 묵은 때를 지우고, 다가올 ‘벌써’를 기다릴 일이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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