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내 마음 아직 지지 않았네 // (…중략) // 1950년대 생 채송화 // 본적은 느티나무 두 그루 /마주보며 늙어가는 내 고향 마을 // 오빠 학비 보탠다고 / 코피 터지게 야근한다던 가발공장 미자 / 미싱을 돌리다 팔이 잘린 춘자 / 식모살이 가서는 이내 / 애 엄마가 되었다는 말순이 / (…중략) // 이따금 비명을 질러대는 매미 소리에 / 거북이처럼 납작 엎드려 / 고개를 내밀 줄 모르는 고향마을 // 어디에서 핀들 꽃이 아니랴 // 쩡쩡한 꽃으로 늙어가고 있겠지 // 내마음 아직 지지 않았네 //”(시집 <어디에서 핀들 꽃이 아니랴> 중 시 '채송화 1')

권희돈(74·사진·청주대 명예교수) 시인이 최근 시집 <어디에서 핀들 꽃이 아니랴>를 펴냈다. 시집으로는 1999년 발간한 <첫날>, 2002년 나온 <하늘눈썹>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지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하는 마음이 가득한 책이다.

1부 ‘외로움을 모르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2부 ‘그 함성 촛불 파도를 타고’, 3부 ‘나뭇가지 사이로 새의 날개처럼 자유로운’, 4부 ‘새는 바쁘다’, 5부 ‘칼을 잊은 마음이라야’, 6부 ‘멈추어서 바라보라’ 등 6부로 구성됐다. 책에 담긴 50여편의 시들은 국권 침탈과 전쟁, 분단, 산업화, 세월호, 촛불시위 등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겪으며 지쳐버린 이들을 보듬는다.

한재화 문학평론가는 "<어디에서 핀들 꽃이 아니랴>의 시편들은 삶의 껍질을 깨는 울림이 있고, 그 울림을 따뜻하게 감싸면서 삶의 부드러운 속살을 만진다"고 평했다.

시집이 주는 위로는 그가 ‘문학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 조금은 생소한 ‘문학테라피스트’는 문학치료사나 독서치료사와 흡사하지만 조금 더 폭넓은 방식을 지닌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문학을 통해 정신적인 상처를 극복하게 하고, 마음을 치유하며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충북지역출판·동네서점살리기협의회 ‘상생충BOOK(북)’은 이 책을 1~3월의 도서로 선정했다. 오는 20일 오후 3시 금천동 꿈꾸는 책방과 27일 오후 3시 용암동 홍문당 서적에 가면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충남 온양 출생인 권 시인은 서울교대를 졸업한 뒤 명지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부회장, 한국국어교육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소설의 빈자리 채워 읽기>, <한국 현대소설 속의 독자체험> 편저 <창고근처사람들>, <홍구범 전집>, 평론집 <비움과 채움의 상상력>, 에세이집 <구더기 점프하다>, <사람을 배우다> 등이 있다. 고두미, 128쪽, 9000원. 박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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