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첫 승전의 주인공

(동양일보 엄재천 기자) 충북북부보훈지청은 우리고장 2월의 호국인물로 음성 출신 김재옥(사진) 교사를 선정했다.

김재옥 선생은 1931년 3월12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1946년 상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49년에는 음성여자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5월에는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 달 뒤인 6월20일 충주 동락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부임한지 5일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자 김재옥 선생은 학교에 머물게 됐다.

7월 북한군의 남하로 연합군이 파견되었지만 전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7월5일에는 음성군 무극리까지 점령하고 충주방면으로 진출하던 북한군은 7월6일 동락초에 이르러 무기와 탱크를 학교 교정에 집결해 놓았다.

당시 국군은 지연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단장인 김종오 대령이 북한군 제15사단이 장호원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국군 6사단 7연대는 음성북쪽에서 매복을 하게 됐다.

김재옥 선생은 북한군에게 “국군은 이미 철수했다”라는 말을 전해 이들을 안심 시킨 뒤 혼자 틈을 타 학교에서 4㎞나 떨어져 있는 국군의 매복지를 직접 찾아가 적의 동태를 상세히 알렸다.

국군은 당시 300여명뿐이었고 북한군은 장갑차, 곡사포, 차량 등과 보병 2000여명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경계태세를 푼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에 공격을 가했다.

오후 5시 기습공격을 실시한 국군으로 인해 북한군은 크게 놀랐다. 북한군이 반격을 가하기도 전에 이곳에서 철수했던 국군 6사단 7연대 3대대가 돌아오면서 협공을 벌여 북한군을 포위하고 큰 승리를 거두게 됐다. 그 결과 국군은 북한군 1개 연대를 섬멸했다. 여기서 노획한 물자는 소련이 개입했다는 증거품으로 유엔이 보내졌고 유엔군 파병을 결의에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인정해 2012년 10월 국군의 날에 보국훈장을 추서해 그의 공훈을 기렸다.

한편 동락초등학교는 김재옥 선생의 호국 충성심을 기리고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0년 7월 김재옥 교사 기념관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음성 엄재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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