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섭 충북도농업기술원장·교육학박사

송용섭  충북도농업기술원장·교육학박사
송용섭 충북도농업기술원장·교육학박사

 

(동양일보) 여느 때와 같이 오늘도 이른 새벽 와우산을 오르며 하루를 연다. 생수 한통과 스마트폰을 넣는 것이 고작이지만 여분의 옷을 넣어 두툼한 배낭을 짊어져야 산에 오르는 제 맛이 난다. 그래야 오르는 발걸음이 더 힘차게 느껴지고 혹시라도 내리막길에 미끄러져 뒤로 넘어져도 배낭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때도 있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한발 한발 내딛으며 오늘 하루 펼쳐질 일과를 떠올리며 사색한다. 하루 중에 이 고요한 새벽 산행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 자신만의 시간이다. 나 자신과 직접 조우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어릴 적 동네 어르신들은 우암산을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렀고, 모교인 초등학교 교가(校歌)도 “와우봉 남쪽기슭 아늑한 터에”로 시작된다. 그런 초등학생 시절 방과 후면 책가방을 툇마루위에 팽개치고는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자주 뛰어 놀던 곳이기에 와우산은 지금도 눈을 감고 오를 지경이다. 또래 아이들은 이 산을 오르며 다다르는 봉우리마다 1봉, 2봉, 3봉이라 이름 지었고 그 봉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소의 꼬리에서 시작하여 잔등을 타고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와우산은 어릴 적 누워 편이 잠들던 내 어머니의 잔등처럼 늘 넉넉하고 포근하다.

오래된 산행의 습관은 지금의 나를 지켜주었고 아직도 보듬어 주고 있다. 산은 살면서 때로는 힘들거나 지치어 좌절감이 밀려와도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 주는 말없는 상담가이자 주치의이다. 어둠이 걷히기 전 이른 새벽 353고지의 와우산 정상에 올라 밝게 빛나는 별들과 달 그리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시내 야경을 바라보면 어느새 모든 걱정의 늪은 새롭게 펼쳐질 하루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나는 산을 완전 방전된 적색 빛의 나를 초록빛으로 변화시켜 주는 충전기에 곧 잘 비유하곤 한다.

와우산은 이제 나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이다. 불과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이 산을 친구들과 함께 오르셨던 아버지는 늘 와우산을 종합병원이라고 부르셨다. 갖가지 질병을 지닌 많은 시민들이 쉼 없이 오르내리며 건강을 되찾거나 유지하도록 돌봐주는 대학병원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산행은 독서와 같다. 아무리 성급해도 단숨에 오르거나 읽을 수는 없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색할 수 없고 정독만 못할 것이다. 좀 더 여유 있게 걷고 행간의 의미를 구하는 산행과 독서이어야 나를 다스리는 내 것이 될 수 있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의 한 분인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은 야언(野言)에서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을 이르기를 “첫째,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둘째는 문을 열어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셋째로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 나서기”라 하였다. 나는 내 가장 가까이 있는 가장 오래된 벗 와우산을 소걸음(牛步)으로 오르내림으로써 마음을 다스려 나갈 것이다. 그 것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되새김질해 줄 뿐 아니라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내게 가져 다 주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산행은 삶의 예지를 주는 독서와 다를 바 없다.

아주 오랜 동안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공직생활 할 때도 나는 고향에 머무를 때면 언제나 와우산과 상당산성을 찾아 삶의 활력을 가득 채워가곤 했다. 이제 26년 만에 환향하여 내 고향의 농업과 농촌 발전을 위해 소임을 다하면서 언제든지 와우산을 오르고 책을 벗 삼는 산행과 독서, 봉직의 삼락(三樂)을 즐길 수 있으니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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