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 해마다 2월이 되면 대학은 졸업 준비로 분주해진다.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졸업 사정 작업도 실시해야 하고 학생들의 4년간 대학생활을 마무리할 졸업식도 섭섭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여러 해 동안 정들었던 학생들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될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학교 선생으로서의 자그마한 보람도 느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가 졸업하는 학생들을 마냥 축복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현실이 차갑기만 하다.

졸업(卒業)이라는 단어의 문자상의 뜻은 주어진 과업(業)을 마쳤다는(卒) 것이다. 졸(卒)이란 글자는 하인 또는 군인 중에서 가장 낮은 계급을 의미한다. 장기판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있는 것이 졸인데 졸은 그저 묵묵히 한 칸씩 움직이다가 장기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희생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을 졸(卒)로 보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그래서 졸이란 글자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인식된다. 졸업이란를 지금의 교육 환경에 비추어 보면 주어진 교육과정을 지시대로 마쳤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졸업을 영어로 graduation이라고 알고 있다. graduation의 어원인 gradus는 라틴어로 단계(step)을 뜻한다. 대학에서의 학위를 뜻하는 degree, 진보하다는 뜻의 progress란 말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다. 더스틴 호프만이 대표작인 ‘졸업(The graduate)’(1967)이란 영화 때문에 graduation이 졸업으로 각인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정확하게 해석하면 졸업생이며 미국에서의 졸업은 commencement라고 부른다. commencement는 우리말로 ‘졸업식’ 또는 ‘학위 수여식’이라 번역된다. 그런데 이 단어의 또 다른 뜻은 ‘시작’이다. 즉, 영미권에서 말하는 졸업의 의미는 긴 학업을 마치고 사회인으로 새롭게 시작을 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Stay foolish, Stay hungry’라는 연설도 스탠포드 대학교의 학위 수여식에서 나온 것이다. 매년 졸업 시즌이 되면 특정 대학에서의 졸업 연설이 화재가 되는 미국인지라 그만큼 미국인들이 졸업식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이 진정한 졸업일진데 정작 우리 대학의 졸업은 마냥 축복받는 시작이 아니다. 2018년 12월 교육부가 발표한 2017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 조사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등을 포함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수는 약 57만4천명이고 그 중 취업자는 약 33만8천명으로 집계되어 취업 대상자만을 기준으로 할 때 취업률은 66.2%를 나타내었다. 계열별 취업률은 인문계열이 56.0%, 공학계열 70.1%, 의약계열이 82.8%로 나타났다. 이 통계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고등기관 졸업자 10명 중 4명은 졸업과 동시에 스스로 건사할 직업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에서의 졸업 연설은 졸업생들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군이 되어야 하고 늘 꿈을 쫓아가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장의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졸업생들의 입장에서 이 같은 졸업 연설들이 귀에 들어올리는 만무하다.

우리에게는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2015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우리가 보통 들어왔던 연설과는 사뭇 다른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연설에서 꿈을 뒤쫓아 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며 졸업생 여러분들이 현실을 뒤쫓기를 바란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을 했다. 현실이 꿈의 ‘가난한 사촌’이 아닌 졸업생들이 하는 것에 따라 사람들이 실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믿으라고 했다. 우리 졸업생들이 졸업 이후에 처할 녹녹치 않은 상황에 대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절감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스스로를 믿고 주눅 들지 말고 당차게 시작해보라는 것이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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