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북풍(北風).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같은 사전적 의미의 북풍보다는 대선 ·총선 등 중요한 정치 행사를 앞두고 의도했든, 안했든 북한 변수가 표심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북풍으로 여긴다. 북한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북풍사건’으로,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는 바람이다.

이런 북풍이 약발을 다했는지 이젠 ‘신북풍’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발표되자 같은 날(27일) 열릴 전당대회가 망치게 생겼다며 자유한국당이 발끈하며 음모론을 제기한 게 신북풍이다.

바람이라는 것은 한 방향으로만 부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이리저리 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북풍은 보수진영에 유리하면 북풍, 진보진영에 유리하면 신북풍이라고 서로 우겨댄다.

북풍의 위력은 한반도가 처한 현실 때문에 강했다.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겪은 우리로선 북한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상대였다. 특히 6.25를 경험한 세대들은 더 했다.

비록 6.25를 경험하진 않았어도 60대에 접어든 세대들도 어렸을 적 학교에서 ‘북한사람들은 머리에 뿔난 사람’으로 배워 한동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남북은 무력으로 강경 대치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주민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다. 북한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남한도 이에 질세라 정권 유지 수단으로 북한을 이용했다. 선거를 앞두고선 더 노골적이었다.

대표적 북풍으로는 1987년 대선 전날의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 씨 국내 압송, 1992년 대선 직전의 ‘남조선노동당’ 사건 발표다. 이 두 사건은 당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김영삼 후보의 당선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1997년 대선 때의 총풍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들 병역 비리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휘청거리자 청와대 측이 중국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총격 등 무력시위를 벌여 달라고 요청했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게 요지다. 대북 공작원 흑금성을 다룬 영화 ’공작‘이 그래서 나왔다. 2000년엔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사실을 발표하자 한나라당이 총선용 북풍이라며 역공했다.

누가 뭐라 해도 북풍은 자유한국당 전신인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에서 재미를 톡톡히 본 북한 변수다.

지난해 총선 전날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쓰나미가 덮쳐 참패했다는 한국당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도 전당대회 효과를 없애려는 고도의 술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내년 총선 신북풍 음모론까지 거론했다.

한국당 입장에선 1, 2차 북미정상회담이 공교롭게도 자신의 정치행사와 두번이나 겹치니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항변할 만도 하다.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특히 보수정당으로서 친미(親美)를 자부해온 한국당이었으니 그 실망감,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들여다 보자. 지난해 지방선거는 국정농단이 있어 북미정상회담이 아니어도 결과는 뻔했다. 그런데도 참패 원인을 북미정상회담으로 돌리는 것은 한반도 평화 여정에 딴죽을 거는 거다.

전당대회와 겹친 2차 북미정상회담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1월 미 대선 재선을 위해 회담을 이용하려 한다는 분석은 가능해도 한국당 전당대회를 겨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한국의 야당 정치 행사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도 않을 뿐 더러 한국당이 미국 대통령 견제를 받을 만큼의 몸집도 아니다. 만약에 한국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국내 정치 개입이 아닐 수 없어 피해자인 한국당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 테이블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엄중한 의제가 올라 간다. 그 성과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신북풍 주장은 평화를 원치 않는다는 고백이고 정치적 이해 득실에 매몰된 냉전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꿈꾸며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 일본 아베 총리가 그런 의혹을 제기한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일본 여당 자민당도 아닌 한국당이 그런다면 ’몽니‘로 밖에 볼 수 없다. 북미정상회담 같은 신북풍은 사시사철 불어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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