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손 이상구 씨, '미국공사왕복수록' 등 8건 국립고궁박물관 기증

문화재청이 이상재 종손인 이상구(74) 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해 온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 '미국서간'(美國書簡) 등 옛 문헌과 사진 8건을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고 13일 밝혔다. 사진 왼쪽부터 '월남 이상재 장례식 백서' 표지, '미국공사왕복수록' 표지, '미국서간' 표지. 문화재청 제공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돼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1888년 미국에 간 충남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 선생이 간직한 외교활동 관련 문서들이 약 130년 만에 세상 빛을 보게 됐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미활동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자료여서 의미 있다.

이상재 선생 종손인 이상구(74)씨는 13일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해 온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 '미국서간'(美國書簡) 등 옛 문헌과 사진 8건을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

이상재 선생은 1881년 일본 신사유람단장을 맡은 박정양을 수행했고, 이후 미국행도 함께했다. 그는 1888년 1월 미국에 도착해 그해 11월 청의 압력으로 귀국했으나, 주미공사관 개설을 위해 힘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기증 유물은 대부분 이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은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로, 조선과 미국의 외교 현안을 비롯해 공사관 운영 상황과 공관원 활동상이 상세히 기록됐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에는 약소국 조선의 외교관이 경험한 어려움도 자세하게 기록됐다.

이상재 선생이 1887년 8월 7일부터 1889년 1월 4일까지 작성한 편지 38통을 묶은 미국서간을 보면 조선과 청이 겪은 갈등이 나타난다.

그는 1888년 1월 1일 서한에서 "중국공사가 예례 등사로 매번 트집을 잡아 정말 소위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처지"라고 곤혹스러워했다.

곤혹스러워 한 이유는 청이 조선의 외교관 미국 파견 조건으로 내건 '영약삼단' 때문이다. 영약삼단에는 조선공사가 미국에 도착하면 먼저 중국공사를 만나고, 중요한 일을 있을 때는 중국공사와 협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상재 선생은 1896년 독립협회를 조직해 부회장직을 맡고 1898년 만민공동회를 개최했으며, 1927년 신간회 초대 회장 역할을 수행하는 등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기 위해 앞장섰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서천 장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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