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욱 충주시의회 사무국장

백인욱  충주시의회 사무국장
백인욱 충주시의회 사무국장

 

(동양일보)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 다시 맞이한 설날, 나는 간단하게 제수를 마련해 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푸근한 날씨에 공원묘지는 성묘객들로 붐볐다.

나는 아버지께 술을 한잔 올리고 나서 큰절을 올렸다.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딜 즈음, 아버지께서는 “청렴했던 율곡 이이는 관직을 마친 후 대장간을 직접 운영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면서 ‘명선결기(鳴蟬潔飢)’라는 고사성어를 알려 주셨다.

‘매미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더러운 것은 먹지 않고 깨끗한 아침이슬만 먹고 산다’는 뜻이다. 나는 그 말을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두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충주시내로 가려면 남한강을 나룻배로 건넌 뒤 마즈막재를 넘어야 했던 오지(奧地) 중 오지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일요일 오후였다. 나룻배를 띄울 수 없다는 소식에 나는 “내일 시험이 있어 오늘 꼭 나가야 한다”며 엉엉 울었다.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일선에 뛰어든 중에, 나를 충주시내로 유학 보내 준 부모님 생각에 한층 더 서글펐다. 그런 내 모습이 적잖이 안타까우셨는지 아버지는 나룻배가 있는 마을로 가 뱃사공을 설득해 동네사람 세 명과 함께 배를 한수면 방향 포탄마을까지 끌어올린 뒤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넜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언제나 조용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찾아 움직이셨다.

자신이 했던 일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하지 못한 일을 부끄럽게 여기셨다.

‘명선결기’란 말도 겉으로 보이는 체면이 아닌, 스스로의 마음에 합한 후련한 삶을 원했던 당신의 인생이 담긴 말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설 명절 연휴기간에 구제역 방역으로 고생하는 직원 격려차 중앙탑면 방향 거점소독소로 향했다.

중앙탑면은 아버지 고향이다. 2013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개최되면서 탄금대~북충주IC간 국지도가 조기 개통되고, 기업도시가 들어서면서 천지가 개벽한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지금 중앙탑을 보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하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충주신도시를 지날 때 충주기업도시(주)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2007년 서울사무소 근무 당시 분당에서 함께 있던 직원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국 기업도시 중 최초로 충주시가 자본금 400억 원을 확보한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날의 감동도 ‘명선결기’의 마음 덕분이었다.

당장의 그럴싸한 모습보다 뿌리부터 굳건하게 선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충주시민 전체의 마음이 그 날의 결실을 맺은 힘이었다. 충주는 앞으로도 그저 배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으로 배를 채울지 진중하게 고민하는 매미처럼 국가산업단지 예정지 선정, 국가혁신클러스터 지정, 수소차 생산기지화 등으로 올바르게 발전해갈 것이다.

그 길을 닦는 한 사람으로서 나 또한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자고 다시금 다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현관문을 들어서자 ‘명선결기’ 액자가 반가이 나를 맞아 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