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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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지난 12일 오후 3시. 미국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을 집무실에서 만난 민주당 소속의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회의 중간쯤에 낸시는 지난 해 6월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 “(북한) 비핵화에 대한 문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어리둥절해 하던 문 의장이 “재작년의 전쟁 분위기가 대화로 전환되고 군사적 긴장도 완화되었다”고 하자 낸시는 “트럼프? 그가 아니었다면 전쟁이 날 것이란 이야기냐”며 문 의장을 쏘아 보았다. 이 순간에 문 의장 뒤에 배석하고 있던 필자는 거의 기절할 뻔 했다. 친절함을 잃지는 않았지만 문 의장 일행이 조금이라도 트럼프를 옹호하면 낸시가 반박하는 이 날 오후는 “끔찍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재작년에 트럼프가 미사일 발사로 도발하는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를 외치며 군사적 압박을 천명하자 “대화로 해결하라”고 외치던 바로 그 민주당이 이제는 트럼프가 대화를 하니까 반대로 조롱하고 나섰다. 문 의장이 인내심 있게 한반도에서 평화의 절박성을 역설하자 “내가 틀리고 당신이 맞길 바란다”며 낸시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일어서 나가는 낸시를 문 의장은 거의 붙들어 앉히다시피 제지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방문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듯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참으로 애처로운 광경이었다.



국내정치에 외교의 원칙과 일관성이 함몰되는 걸 일컬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라고 한다. 문 의장이 방문한 때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단적인 대치로 연방정부가 셧다운(Shut Down)이라는 비상사태에 돌입한 와중이었다. 지난 달 12일에 <뉴욕타임스>는 ‘브렉시트와 미국의 셧다운: 혼돈의 두 정부(Brexit and the U.S. Shutdown: Two Governments in Paralysis)’ 기사에서 극단과 분열로 치닫는 미국과 영국을 진단했다. 기사는 ‘단순 다수대표제(first-past-the post)’와 ‘승자 독식(winner-take-all)’ 선거로 만들어진 양당구도의 정치제도가 미국과 영국에서의 극단의 정치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통합과 협치에 실패한 미국의 국내정치의 한복판에서 한국 외교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위험성이 문 의장의 미국 의회 방문을 통해 드러났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다. 2001년 3월에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면전에서 ‘디스맨’(this man, 이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회고록에서 김 전 대통령은 그 순간을 “매우 불쾌했다”고 썼다. 이후로 부시는 클린턴 정부가 이룩한 북한에 대한 대화와 협력의 성과를 부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북한의 정권교체와 체제붕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강경책으로 나아갔다. 한국 정부는 졸지에 외톨이가 되었다. 지금 미국의 민주당은 일명 ‘트럼프 허리케인’ 이후 미국을 그 이전으로 복원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언제든 트럼프가 벌려놓은 한반도 평화의 판도 걷어찰 수 있다는 암시다. 그 중간이 존재하지 않는 극단적 정치의 꼭짓점에서 현기증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는 어떤가. 미국의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답습하면서 거대 양당의 소모적 정쟁까지 덤으로 수입했다. 두 거대정당이 국회를 마비시키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동안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비핵화의 포괄적 로드맵이 합의되지 않으면 한반도는 실패의 공간으로 전락할 것이고, 트럼프의 몰락을 고대하던 미국의 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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