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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치비화 <끝>
조선통치비화 <끝>
  • 박장미
  • 승인 2019.02.17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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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산업조사위원회



▷마츠무라 “위와 같이 대략적이나마 조선 산업개발의 방침 및 계획 요강이 결정되고 이를 구현할 준비가 갖추어지자 각 부문별로 예산 청구액이 늘어나 그것이 막대한 액수에 달했습니다. 당시는 상당한 액수의 경무비 및 교육비가 필요한 때였기에 식산비에 만족할만한 예산 안배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니시무라 국장은 조선 통치 수뇌부에서 일의 완급에 따라 적절히 배치해 주는 조치에 우선 순응해 주었습니다. 그는 각 국(局) 내의 예산을 둘러싼 치열한 요구와 경쟁을 가능한 한 억제하고, 이로써 예산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산업 제일주의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참고 기다렸던 것인데 이 점은 우리들 모두가 본받아야 할 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전국 곳곳에 평온을 되찾고 인심이 안정되자 산업 시설은 바로 통치의 중심점이 됐고, 당시 니시무라 국장 및 식산국에서 수립해 놓았던 산업 방침이 그대로 당국의 지침에 반영돼 해를 거듭할수록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용의주도한 니시무라 국장의 치밀한 준비력 덕분이었다고 생각되어 참으로 기뻐 마지않는 바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조선 산업 행정상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사업인 산미증식계획이 1920년에 수립되었고, 산미증식계획을 실시한 결과에 따라 1925년에는 다시 이것을 갱신 보강했습니다. 또 치산치수 사업, 철도망 계획, 도로 항만 개수사업, 누에고치 백만 석 생산계획, 공업 장려 시설, 광업개발 계획, 밭작물 증식 계획, 전력통제 계획, 공업장려 시설, 수출·무역장려 등등 사이토 통치 10년간에 걸쳐 시행되었던 식산흥업 시설은 그 시설 하나 하나가 거대한 방침의 실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시설은 조선의 경제력을 발전시켰고, 조선 산업에 대한 일본의 의존도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이는 2000만 민중의 행복이 산업 방침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했던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됩니다.”



●니시무라(西村) 국장으로부터 온 편지



▷미즈노 “병합 당시 조선의 산업은 지극히 유치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부임 즉시, 우리들은 오직 산업 시설에 중점을 두어야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우선 먼저 조선의 경제력을 신장시키고, 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적합한 인재라 생각되어 니시무라 야스키치군을 발탁하여 식산국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니시무라씨는 비장한 의기를 가지고 이 일을 맡았다고 생각됩니다. 1919년 예산 문제 때문에 출장 가 있는 저에게 니시무라씨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는데 편지 속에 니시무라씨의 굳은 결의가 보여 여기 소개하고자 합니다.”

‘새삼스럽게 말씀드릴 것도 없지만 이번 제게 맡겨주신 임무는 실제로 너무나도 막중한 것으로 불초한 제가 행여 일을 그르쳐 내외에 심려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점도 많지만,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중차대한 직무를 수행하도록 해 주신 각하의 깊은 배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상경하신 용건의 구체적인 내막도 단지 올해 뿐 아니라, 먼 장래까지 생각하시어 정부와 총독부 사이의 예산문제에 있어 막힌 물꼬를 트시기 위한 사려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려운 상경을 결심하신 것도 모두가 예산문제를 원활히 해결하시기 위한 결단으로 알고 있는바 오직 모든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않는 바입니다.

아는 것도 재주도 별로 없는 불초소생에게 이렇게 융숭한 대우를 해 주시니 참으로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초지일관 명을 받들어 구구한 일신의 명예나 호의호식, 이해득실 같은 것은 돌아보지 않고, 일신을 희생해서라도 어떻게든 분발하여 국가를 위해 난국을 바로 잡으시려는 각하의 대업을 받들어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만일 본인의 무능으로 인하여 기대에 어긋나는 바가 있다면, 부끄럽사오나 충정을 다할 것이니 부디 괘념치 마시고, 언제든지 지도 편달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옵니다.

소생이 관계(官界)에 들어온지 어언 30년 자신의 불초함도 잊고 스스로 “국가의 충직한 관리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사(公事) 이외의 다른 것은 일체 돌아보지 않았으며, 공명이달(功名利達) 또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가지 원하는 것은 항상 부임 초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여 청절(淸節)로 시종일관하려 했으며, 저의 모든 위안을 직무 중에서 찾고 직무를 통해 평안을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양이 부족하여 각하께 그다지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거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저 자신에 대해 분개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부디 수시로 질책과 훈계로 가르쳐 주시옵기를 바랄 뿐입니다.’



▷미즈노 “이 서한을 읽고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니시무라 국장은 참으로 열성 있는 사람으로 비상한 각오 하에서 식산국장직을 맡아주었고, 또한 온 정열을 다해 그 직을 수행해 주었던바, 그 점은 지금도 감사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1919년 부임 초는 만세소동의 직후여서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극심한 한해를 입었던 해였습니다. 특히 조선 서부지방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우선 선후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응급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하게 요구되었기 때문에 불안한 와중에서 재빨리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즉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 때문에 니시무라군은 부임하자마자 평양 진남포 등지로 출장을 가야했는데 그 때의 고심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민족 통치의 요체



▷미즈노 “마츠무라군이 말한 바대로 1919~1920년에는 조선인의 사상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고, 배일운동과 독립사상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선에 와 있는 일본인 실업가들은 도저히 이런 상태에서는 안심하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신경과민적인 발언을 일삼았고, 심지어는 자포자기에 빠진 사람조차 나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1920년 10월 12일 경성 공화당에서 전조선 실업인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대회 석상에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세상이 너무나 불안하다는 사실이 토로됐고, 이런 상태에서 일본 산업을 조선에 이식시키는 것이 지극히 곤란하다고 주장하는 등 참여자 모두가 비통하고 비관적인 연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도 직접 그 자리에 참여하여 일장연설을 한 바 있는데, 실업가들이 너무 성급하다는 것을 꾸짖고 자중해 줄 것을 희망하는 취지의 연설로, 그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양에서의 제국(帝國)의 지위는 조선을 병합함으로써 더욱 경고해졌습니다. 이 지위를 장차 영구히 보존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들 모두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저는 오랫동안 민간 부문에서 그 누구보다도 조선 개발을 위해 진력을 다해주었던 민간 기업가 제군들의 협조 및 원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대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모든 사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으로 모든 일이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제국의 이민족 통치는 조선이 처음입니다. 이민족 통치가 지극히 어렵고 중대한 일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인 만큼, 이 일을 맡은 우리들은 충분한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15년의 단 시간에 신민(新民)이 일본인과 똑같이 충량한 신민(臣民)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망상이며 허황된 지래 짐작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구주전쟁(歐洲戰爭)으로 인해 세계 사상계, 경제계를 비롯하여 기타 모든 방면에 혁신적인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이민족을 통치하고 있는 세계 각국 모두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여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어떠하며, 아일랜드는 어떻습니까? 이집트, 필리핀을 보십시오. 우리들이 조선이 악화되고 있다고 고충을 호소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다른 강대국들 쪽에서도 탄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장애를 깨부수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결코 성급해서는 안 되며 신경과민이어서도 안 됩니다.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 볼 줄 알며 소위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단정치니 문화정책이니 하고 말하지만, 조선을 통치하는데 있어 이러한 구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저 어떤 내각이라 하더라도 조선통치에 임하는 주의 및 방침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조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산업 방면에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조선의 산업개발은 단지 조선만을 발달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국(帝國)의 부원(富源)을 증대시키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산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교통기관의 설비가 필요한 법인데, 현재 조선 내에 견고한 도로가 만들어졌고, 기차 철로 또한 편리하게 개통되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단계가 아니고, 항만 설비도 현 상태로는 만족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이 외에도 수리, 관개 등 제반 산업방면에 크게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대명을 받고 조선에 부임한 이래, 우리들은 중앙정부와 누누이 교섭을 거듭했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보조금으로 경무· 산업· 교육 등 각 방면에 필요한 시설을 하여 조선인과 일본인의 복리를 증진시키고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불온한 행동을 하며 우리나라의 국권에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단연코 가차 없이 추상같은 위엄으로써 이를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을 오직 계엄으로만 억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국가를 위해, 가능한 한 대국적 견지에서 관찰하고 일을 추진해 갈 작정입니다. 부디 제군들께서도 이 취지를 받아들이시어 우리들과 책임을 나누고 고락을 같이 한다는 대결심과 대포부를 가지고 앞으로 더욱 국가를 위해 전력해 주실 것을 간절히 희망하는 바입니다.’



▷미즈노 “이렇게 하여 1919년, 1920년, 1921년은 어느 정도 불안한 상황에서 지냈습니다만 점차 조선이 안정을 회복해 갔기 때문에 산업 방침을 확립한 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 일을 착착 진행에 갔습니다. 다행이도 제가 재임 중에 광산, 농업, 어업 등에 대해 대체적인 방침이 결정되었는데, 한 마디로 니시무라 국장을 비롯한 식산 당국의 노력의 소산 바로 그 덕분이었습니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오늘날과 같이 조선 산업이 발전을 보게 된 것인데,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당시 담당자 제군들의 노고가 지대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



●조선통치비화 연재를 마치면서



2017년 4월 3일부터 월 2회 동양일보 지면에 ‘조선통치비화’를 2년간에 걸쳐 소개했다. 이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이 내용을 관심을 갖고 읽어 준 독자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 한다. 마침 3.1운동 100주년을 직전에 두고 연재를 끝내게 되어 더욱 보람이 있었다.

조선통치비화는 일본 제국주의가 3.1운동 이후 조선통치를 어떻게 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내각의 결정 내용, 즉 조선총독부 수뇌부를 전면적으로 개편해 1919년 9월 2일 해군대신 사이토마고토(齋藤 實)를 총독으로 삼고, 미즈노랜타로(水野連太郞) 정무총감과 그 담당국장들의 조선통치 3년간의 내용이 소상히 기록된 자료다.

각 분야별로도 관심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선 식민정책의 방법과 그 수탈 책략이 어디에 중점을 뒀고, 역점 사항은 무엇이었나도 파악할 수 있었던 귀중한 자료였다.

이 긴 장편의 역사적 사실을 2년에 걸쳐서, 그것도 지면 한 면 전체에 게재한 것은 매우 특이한 기획이라고 생각돼 동양일보 측에 감사의 말도 덧붙인다.

식민지시대의 역사, 즉 근·현대사를 전공한 나는 이와 관련 귀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자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다시 연재하고 싶다. 일본 현지의 재일동포들이 받아야 했던 대우와 식민지배의 실상을 기회가 되면 독자들에게 소상히 이야기하고 싶다.

독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으로 조선통치비화 연재를 마치게 됨을 거듭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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