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이선영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장학사
이선영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장학사

 

(동양일보) 오늘로써 숙제를 모두 끝냈다. 나에게 주어진 이번 방학숙제는 담임 장학을 맡은 3개 학교의 겨울방학 컨설팅이다.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하겠다고 하면 학교는 부담스럽겠지만, 그건 장학사도 마찬가지이다. 혹여나 학교 일정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나 때문에 방학 중인 담당 선생님이 출근하는 것은 아닐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연락 없이 첫 번째 학교로 향했다. 교감선생님만 얼른 뵙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학교의 고요함을 깨고 싶지 않아 그토록 조히 교무실 문을 열었건만, 교무실은 이미 만원이었다. 테이블 한편에서는 내년도 학교계획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었고, 또 다른 자리에서는 어떤 공모사업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건강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두 번째 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담당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를 돌아보는 한 시간여 동안, 인근 지구대 경찰관과 교외 생활지도 계획을 협의하시는 생활담당 선생님, 방과후 프로그램 점검을 위해 출근하신 유치원 선생님, 내년도 교육과정 준비를 위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출근하신다는 연구부장님 등 많은 분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세 번째 학교에서는 터놓고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학동안 교사들 간의 끊임없는 토의 끝에 새 학년 교육과정에 대한 밑그림이 이미 그려진 뒤였다. 무엇보다도 내 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교육과정을 설명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이들이 바로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월의 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였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다 해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겨울 방학은 이제, 행복한 만남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관계를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 있었다.

느려도 괜찮다.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면 느리더라도 목표지점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한걸음씩 함께 걸어가면 더 오래 걸어갈 수도 있다. 학교마다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방향이 아이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향해 있으니 우리 아이들의 새 학년은 분명 더 즐거울 게다. 마지막 학교를 나오면서 꼼수 부리지 않고 숙제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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