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선 청주시차량등록사업소 주무관

최은선 청주시차량등록사업소 주무관

(동양일보) 나에게 금쪽같은 딸아이는 지금 그 또래들이 마땅히 누리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그 울타리를 벗어난 아이는 심각한 문제아일 것이라는 편견이 내게도 존재했기에, 아이의 일탈은 나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딸은 초등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모범생이 아니었다. 공부에 재능을 보이지 않았고 산만해 수업 시간에도 교실을 활보하던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성실하게 공부하기 시작했고 성적은 수직 상승했다. 학교생활 전반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전교 학생회장까지 원만하게 수행해냈다. 예체능에도 두루 다양한 재능을 보였고 끼가 많은 데다 중학교 때 리더십 경험까지 갖춘 아이는 그야말로 요즘 입시의 대세인 ‘학종’에 적합한 인재라고 믿었다. 그런 딸에게 거는 나의 기대감도 컸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스스로 고등학교 내신과목을 예습했지만 기대했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아이는 스트레스에 불안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계속 잠을 줄이는 방법으로 공부 양을 늘렸다.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라며 하소연하는 아이에게 “세상에 노력해도 안 되는 아이는 없다”라고 달래며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편안하게 장기 레이스를 펼쳐볼 것을 권유했지만 기말고사 땐 더욱 성적이 하락했고, 수행평가 점수를 합산한 성적은 더더욱 처참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본 결과 불안․우울 지수가 상당히 높게 나왔다.

고등학교 1학기를 마치고 아이는 “낮은 한 학기 성적을 만회해 학종으로 좋은 대학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며 남들과 똑같은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평소 생각을 머릿속으로는 되새겼지만 그것이 내 아이 얘기가 되고 보니 마냥 쿨하게 수긍하긴 어려웠다.

결국 딸을 믿어주기로 했다. 학교를 그만둔 지 1년 만인 지난해 8월 검정고시를 치렀고 올해 우수한 수능 성적으로 대학에 가겠다며 아침 7시면 독서실을 향해 나선다.

울타리 밖에서 생활해서일까? 아이는 여느 또래들과 달리 때론 매우 속 깊고, 때론 매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부모의 당연한 경제적 지원도 고마워하고 여러 권의 책을 사는 것조차 미안해할 때도 있다. 정규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지 않은 아이가 초등학교 교사란 꿈을 갖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이 단 하나만은 아닐 것이라 믿어 보기로 했다. 안되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는 여유를 가지면서 말이다.

다만 아이에게 이런 조언만을 자주 해주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가 돼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산만한 아이가 있다면 딱 네 어릴 때 모습이라 생각하고 품어 주어라. 열 번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울부짖었던 너의 과거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인내해라. 너의 굴곡진 성장과정을 통해 뭔가 부족한 아이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 돼라.”

남과 다른 길을 걷는 학교 밖 내 아이에게 ‘할 수 있다’라는 말 한마디로 하루하루를 응원해줄 뿐이다. 학교 밖으로 나간 내 아이의 현 모습이 곧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학교 밖 아이들도 꿈을 꾸는 세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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