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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29) 충주 중앙탑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29) 충주 중앙탑
  • 동양일보
  • 승인 2019.02.21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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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향한 중원의 기개… 강물되어 신선처럼 흐르다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동양일보) 강물은 낮고 깊으며 느리되 푸른 기운 가득하다. 하늘은 높고 청명하되 햇살과 바람이 낭창낭창 노래한다. 대지는 봄이 오려는지 흙 내음 가득하고 소나무 숲도 삼삼하다. 그곳에 천년의 탑이 있다. 대지를 품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으니 인간의 얄팍한 마음으로 그 기개를 어찌 알 수 있을까.

중앙탑 계단을 오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매 순간이 해탈이다. 앙가슴 뛴다. 억겁의 시간, 오래되고 낡은 그 날의 상처가 내게로 와 꽃비를 흩날린다. 마음에도 중심이 있고 나라에도 중심이 있으며 사랑에도 중심이 있다. 중심에서 시작된 중원의 정신과 기개와 꿈, 이 모든 것이 여기에서 시작돼 한 곳으로 흘러간다. 다시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국보 제6호 중앙탑은 말 그대로 중앙에 있는 탑이다. 한국의 중앙이고 세계의 중앙이다.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신라석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우리나라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이라고 부른다. 공식 명칭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다. 언제 만들어졌을까. 누구였을까. 수많은 땅 중에서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지만 대체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10여 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층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m로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는 느낌이 강하다. 이 때문에 안정감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진다. 국가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영토의 끝과 끝에서 보폭이 같은 사람을 동시에 출발시켜 만나게 된 곳을 중앙으로 여기고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는 설도 있다.

탑 안에서 구리거울 2점과 목제칠함, 은제사리함이 나왔다. 기단부에서는 청동함이 발견되었다. 귀했으니 이곳에 보관했던 것이다. 국운의 기운을 담고 백성들의 염원을 담았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오래 번창하고 융성하며 행복한 나라를 꿈꾸면서 이 탑을 만들지 않았을까.

청명(晴明)일에 마시는 술이 청명주다. 이 술을 마시면 하늘이 맑아진다는 뜻일까, 아니면 하늘이 맑은 날에 마신다는 뜻일까. 중앙탑 인근에서 김해김씨 집안의 가양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술맛은 물맛과 정성이 좌우한다. 달천강과 창골에서 흐르는 물맛은 이 일대에서 으뜸이다. 순 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누룩을 만들어 저온에서 100일간 발효 숙성시켜 빚는다. 그 맛은 달고 향기롭고 깊다.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더니 목젖을 축이고 굳게 잠겼던 가슴을 연다. 술 한 잔에 심쿵거리니 삶은 신비다.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 가는 사람은 이곳에 들러 청명주를 마셨다. 그래야 과거에서 급제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죽을 쑤고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문경새재를 많이 이용했다. 과객이 충주에서 청명주를 마시면 문경새재에 이르러서야 취기가 가신다는 말까지 생겼다. 순 찹쌀로 술을 빚어서 끈기가 있고 후유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오래둘수록 향미가 좋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노을”을 노래한 옛 시인이 떠오른다.

이 때문일까. 중앙탑 옆에 리쿼리움 술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충주호가 한 눈에 들어오니 명당 중의 명당이다. 한국의 전통주에서부터 세계 각국의 술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자연의 풍경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낮고 느리게 전시관을 꾸몄다. 한 바퀴 돌아 나와서 충주호 풍경과 함께 즐기는 술 맛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이곳의 백미는 와인이다. 하늘의 은혜를 입고 땅의 기운을 받고 사람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더해질 때 와인은 고귀한 향과 맛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보았다”며 와인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다. 태고적 원시림의 과일나무 웅덩이에서 시작된 인류 최초의 술, 와인은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그 이야기가 박물관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중앙탑과 술박물관 옆에는 충주박물관이 있다. 중원문화의 자존심이다.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남북의 요충지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고 겨룬 곳이다. 박물관 주변에 역사적 숭고미가 깃든 유물들이 나그네를 반긴다. 율능리 석불입상, 유학사지 삼층석탑 등 100여 개의 석물만으로도 중앙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곡진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충주의 명현들, 충주의 독립운동가 등 충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충주의 근대문화도 담았다. ‘그때 그 시절’이다. 아련하고 애틋한 삶의 흔적들,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이 담겨있다. 그토록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이 한유롭다. 풍경 속에서 또 다른 풍경을 본다.

충주호 풍경.
충주호 풍경.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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