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알파고가 유럽바둑챔피언 판후이와 이세돌 9단, 중국의 커제 9단을 차례로 이겼을 때, 인공지능(AI)에 대해 두렵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으로 자위했다.

그런데 엊그제 미국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비영리 인공지능(AI) 연구기관 ‘오픈 AI’가 새로 개발한 ‘글짓기 인공지능’의 실력이 공개됐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한 두 개 예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살아 돌아와 다시 한 번 대통령이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오픈AI 연구원이 인공지능(AI)에게 이 문장을 제시하자 AI는 곧바로 “저는 모든 국민이 목소리를 낼 때 미국이 다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연설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레골라스와 김리가 무기를 들고 함성을 지르며 오크 족을 향해 진격한다’는 내용의 프롬프트를 입력하자, AI는 ‘오크들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심지어 엘론드 마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로 시작되는 약 2000자 분량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새로운 문장이었다.

놀라운 것은 특정 문장을 넣으면, AI가 주제를 잊지 않고 그에 알맞게 이어지는 문장을 논리적 순서에 맞게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가짜 뉴스도 진실처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오늘 신시내티에서 통제된 핵물질을 실은 열차가 도난당했다. 이것의 행방은 알 수 없다.’ 란 문장에 AI는 다음처럼 써내려갔다.

‘이번 사건은 코빙턴과 애슐랜드역 사이에서 운행되는 도심 열차 노선에서 발생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오하이오 뉴스에 보낸 이메일에서 연방철도청과 협력해 탈취범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톰 힉스 미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핵물질 탈취 사건은 공공 및 환경 보건, 우리의 노동력, 그리고 미국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탈취범을 찾아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탈취당한 핵물질이 신시내티 대학 원자력 연구팀인 트라이앵글 파크 연구소의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당장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에너지부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 사건은 에너지부 자체 핵물질 안전 및 보안팀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힉스 장관은 “국민과 환경, 그리고 국가가 비축한 핵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진실을 밝히고 나쁜 선례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구성이다. 인간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이 AI의 이름은 GPT-2.

그런데 개발자들은 GPT-2의 글쓰기 실력이 너무 뛰어나 ‘악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원천 기술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문득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구절이 떠오른다. 1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해온 호모사피엔스는 과학혁명으로 사이보그를 탄생시키고 생명의 법칙을 바꿀 것이라며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의 뇌를 휴대용 하드드라이브에 백업해서 노트북 검퓨터에서 실행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의 노트북은 사피엔스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일까? 아니면 다른 누구일까?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마음을 창조한다면 어떨까? 컴퓨터 코드로 구성된 그 마음이 자아의식 의식 기억을 다 갖추고 있다면? 이 이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그것은 인격체일까? 그것을 지우면 살인죄일까? 머지않아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운 상상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의 부상이 인류에 좋은 일일지 나쁜 일 일지 아직 판단할 수는 없지만 AI의 발전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AI 개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때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