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상 청주시강서2동주민센터 주무관

서두상 청주시강서2동주민센터 주무관

(동양일보) 직장에서 집까지는 자동차로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퇴근시간임을 감안하면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다. 2년 전만 해도 나를 왜 이리 먼 곳으로 보냈을까 하는 불만도 많았다. 게다가 출근 도중 사고까지 났었으니 오죽했겠는가.

어찌 됐든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 속에 예전의 불만들은 한없이 사소해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갓 돌이 넘은 늦둥이로 인해 내게는 퇴근 후에 당장 독박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로 인해 퇴근과 출근의 경계까지 모호해져 가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근길 40분 동안의 차 안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혼자지만 전혀 외롭지 않은, 하루 중 유일하게 나 홀로 남겨진 시간이다. 직장에서의 일과가 끝나고 내일 다시 볼 직원들과 어제와 똑같은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에, 겨울바람에 차갑게 식은 차에 들어서면 세상이 함박눈을 맞은 것처럼 환하다. 시동을 켜고 엔진이 가열되면 그제야 나의 비단길이 펼쳐진다.

편도 15㎞ 여정의 대부분은 제2차 외곽 순환도로에서 보낸다. 다들 뭐가 그리 급한지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는 차들로 도로는 늘 혼잡하다. 나는 주로 2차로를 차지하고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평범한 속도로 주행한다. 이 시간 동안에는 양보심이나 배려심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해져서 끼어드는 차량을 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눈앞에서 신호를 놓치는 경우에도 태연해진다.

이처럼 달뜬 마음으로 가로등 불의 인도 아래 천천히 집으로 가다 보면 텅 빈 조수석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잊혀가는 옛사랑에서부터 안부가 궁금한 동창들, 늘 연락을 해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지인들까지. 그중에 한둘에게는 꼭 전화를 건다, 물론 핸즈프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이 몇 마디 오가고 나면 곧 전화는 끊긴다. 대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철수 DJ의 늘 한결같은 목소리와 어디선가 들어봤을 팝송들이 차 안의 빈 적막을 채운다.

여기까지 한 30여 분을 달리면 지하차도가 보인다. 지하차도가 나오면 집에 거의 다 왔음을 알게 된다. 이제 곧 나의 비단길도 끝날 것이다. 좌회전 차선에 들어서서 깜빡이를 켠다. 깜박거리는 기계음 사이로 까먹지 말란 듯이 잊혔던 현실이 치고 들어온다.

잠시 후 나는 아이와 놀아주다 분유를 먹인 후 저녁 9시쯤 졸린 아이를 안고 어두운 방을 서성거릴 것이다. 아이가 잠들면 초등학생인 큰아들과 같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같이 잠들 거란 걸 안다.

아파트에 도착해 시동을 끄고 집으로 향한다. 내 비단길은 이처럼 짧게 끝났지만 우리 가족의 비단길은 내가 집에 들어가서야 시작되는 걸 알기에 발걸음이 꼭 무겁지만은 않다. 현관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른다. 문틈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는 우리의 비단길을 찾아서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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