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주사위는 던져졌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하노이가 들썩거리고 있다. 전날(26일) 세계의 주목 속에 하노이에 입성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늘(27일) 저녁 만찬을 시작으로 이틀 공식 일정에 들어간다. 두 정상이 만찬을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가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한반도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한반도의 평화냐, 냉전이냐는 우리 손으로 결정지을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트럼프는 하노이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도 “매우 생산적인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을 보였다.

회담 결과에 앞서 이번 정상회담의 볼거리 중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열차 행군이다.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에서 중국 내륙을 관통해 베트남 동당역까지 3800㎞를 장장 66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이동한 것은 현대사에 남을 일이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만한 이벤트도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작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때는 중국 지도부 전용기를 이용했다.

평양에서 하노이까지는 2760㎞로 싱가포르(4700㎞)보다 훨씬 짧아 김 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1호를 이용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김위원장은 전용기도, 중국 항공기도 아닌 특별열차를 택했다.

중국이 한두시간도 아닌 2박3일 걸리는 긴 시간에 기찻길을 내 준 것은 중국이 은근슬쩍 자신의 역할론을 암시하고, 김 위원장은 내 뒤에 중국이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 했을 법 하다.

또 55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열차로 중국을 거쳐 베트남을 방문했던 발자취를 따라감으로써 정통성과 존재감을 대내외에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중·남부 주요 도시들을 돌아보며 개혁개방의 의지를 보여준 다중 포석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여러 해석 속에 비행기 대신 택한 열차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베트남에 입성한 특별열차의 공식 명칭은 ‘태양호’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이용하는 전용특별열차로 흔히 ‘1호 열차’로 불린다.

1호 열차는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김일성 전 주석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관은 다소 허름해 보이지만 ‘없는 것이 없는 열차’일 정도로 내부는 화려하다.

특히 차체 하부는 방탄판으로 돼 있고 유리도 방탄유리다. 인공위성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적외선 흡수코팅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최고 속도는 100㎞지만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60~70㎞ 이상은 달리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1호 열차는 고소공포증이 심했다는 아버지 김정일 전 위원장이 주로 애용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지방시찰은 물론 중국, 러시아 방문때 이용할 정도로 전용기 이상의 역할을 했다.

1호 열차를 타고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하노이에 도착했다. 지난 23일 오후 5시쯤 평양역을 출발한 지 68시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날 밤 도착해 사실상 공식일정에 돌입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해 그 배경에도 관심이다. 통상 최고 지도자가 외국을 방문할 때 현지 도착 후에야 짧게 소식을 전해 왔는데 이번엔 빠르게, 대대적으로 띄우는 ‘파격’을 이어가고 있다.

그 행간엔 회담의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담대한 결단이 배어 있지 않느냐는 성급한 추측이 나온다. 미국의 제재완화를 끌어내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그로서는 트럼프와 결판을 내야만 한다. 연말이면 미국이 대선국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김 위원장에겐 시간이 없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도 역시 김 위원장을 활용할 필요가 커졌다. 이번 회담은 김정은·트럼프 모두에게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미 정보당국이 북한은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상황에서 결국 관건은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나라의 보다 나은 장래를 원하고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에 있다.

양 정상은 최소 5차례 이상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서로가 통 큰 양보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나 그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선물을 안겨 주길 바란다. 한반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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